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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온 글(호주제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BY 선인장 2001-08-17

화제의 인물




[핫이슈! 호주제] 현행 호주제로 고통받는
이혼가정·재혼가정 피해사례

"성(姓) 바꾸기 위해 자식 사망신고해 전과자 된 엄마의 한맺힌 사연을 아시나요 ?"
최근 호주제 폐지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이는 무조건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고,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며, 호주 승계도 남성이 우선한다는 법 조항은 남녀평등에 위배되며, 특히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에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복순씨(42)는 94년 두 딸을 데리고 재혼했다. 사망한 전남편 병수발로 생긴 감당하기 힘든 빚과 남겨진 두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막막했던 그녀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아버지 밑에서 키우고 싶어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아이들의 성과 새아버지의 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 강씨와 남편 설씨는 결국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들을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하고, 새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딸은 설씨 성을 가진 아이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설씨가 사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씨는 ‘공문서위조’가 드러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전과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딸의 성을 새아버지의 성과 같도록 하려다 전과자가 된 강씨의 사연은 결코 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가정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인데, 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의 성을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호주제 때문.

호주제란 민법에 근거, 한 가(家)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편제하도록 하는 제도. 요즘 이 호주제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여성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단체에서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는 작년 9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위헌소송 원고인단을 모집, 11월에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그 결과 지난 3월말 서울지법 서부지원과 북부지원이 “민법상 호주제 관련조항(778조, 781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다. 이 결정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여성단체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곽배희)에서는 지난 7월4일, 전국 28개 도시에서 호주제의 문제점을 알리고, 폐지를 촉구하는 ‘호주제 바로알기 운동’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지은희)도 지난 7월1일 대학로에서 방송인 백지연씨와 ‘옷로비사건’ 특별검사로 활약했던 최병모 변호사를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호주제 폐지 홍보행사를 여는 등 호주제 폐지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호주제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을 때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는 이혼가정, 편모가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1천만 가정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천만 여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남자 소유물로만 존재해야 하죠?”

“호주제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호주제를 처음 만든 일본에서조차 폐지했죠. 물론 우리나라도 89년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호주제 관련조항이 거의 폐지되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호주제를 폐지하라고 하느냐 하면 아무리 법적으로 99%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 하더라고 호주제가 있는 한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만난 배선희씨(31)는 6년 전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 그는 보통 여성이 느끼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결혼식 때도 신랑과 동시입장을 했어요. 결혼은 동등한 남녀가 만나는 것인데 왜 아버지가 남편에게 나를 인계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그 정도만 해도 제가 동등한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죠.”

배씨는 결혼 후 호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호적에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묘한 굴욕감이란 걸 느꼈다고 한다. 여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 남자에서 저 남자에게 옮겨지는 소유물로 취급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이를 낳으면서부터였다고.

“병원에서는 분명 ‘배선희의 자’이던 아이가 퇴원을 하면서부터 남편인 지씨 집안의 소유가 되더라고요. 분명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피를 똑같이 반반씩 받아 태어났는데 일방적으로 한쪽 성만 따라야 한다는 것에 억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빼앗겼다는 생각도 들고….”

더욱더 기가 막힌 건 만약 남편이 사망하면 호주제에 의해 네살 된 아들이 집안의 주인인 호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나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가 네살 된 아이의 소유물이 되는 셈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며 길렀는데 왜 아이에 대한 권리는 남자만이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호주제 폐지는 그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해 달라는 거예요.”

배씨의 이야기가 남녀평등을 바라는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앞에서 예로 든 강씨처럼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여성이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경우 호주제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호주제 위헌소송 원고인단에 참여한 김상희씨(33·경기도 안산)는 누구보다도 호주제로 인한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그는 결혼 2년 만에 남편과 헤어진 후 혼자 아이를 키우다 99년 재혼했다.

“아이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는 친아빠보다 더 좋은 새아빠가 필요해’라고. 그래서 아이를 위해 재혼을 결심했고,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이는 아이에게 너무너무 잘해줘요.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가 놀아달라면 새벽 1시까지도 놀아주고….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새 아빠라는 걸 주위 사람들이 몰라요.”

하지만 아이의 성이 아빠와 다르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재혼후 남편은 큰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딸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가 한번 갔다오더니 가지 않겠대요. 성이 다르다고 사촌들이 따돌리니까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 없을 때만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는 재혼한 가정이면 누구나 한번은 동네 아이들이 “너희 아빠 새아빠라며? 아빠하고 성이 틀리다며?” 하고 놀리는 바람에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엔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게 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고, 스스로 주눅이 들어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그저 단순히 놀린 아이들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반문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인 아빠란 이유로 평생 아이의 성을 규정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아이는 정말 자신을 아껴줄 아빠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어야 해요.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더한 고통을 겪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김씨는 딸아이 때문에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를 갖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동생과 아이의 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재혼가정 아이들의 고통은 말도 못해

김씨 부부는 아이의 성을 새아빠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호적법상 불가능했다. 남편은 “내가 성을 바꿔서라도 딸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도 했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이를 사망신고한 후 새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키거나,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뒤 입양하는 식으로 자녀의 성을 바꾸는 불법·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성씨 문제뿐 아니라 아이를 법적인 자녀로 인정받는 것도 현 호주제에서는 요원하다. 김씨의 딸은 지금 법적으로 동거인일 뿐, 가족이 아니다. 처음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동사무소 직원과 싸운 끝에 자식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여전히 호주라는 이름으로 친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아이는 지금 친아버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더욱 두려워요. 아이가 나중에 주민등록등본을 보며 친아버지에 대해 ‘나를 버린 사람’이라며 증오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전 아이가 그런 감정을 갖는 것도 싫어요. 그냥 구김살 없이 자랐으면 좋겠는데, 이 호주제도란 게 아이에게 그런 악한 마음을 키워주는 법이더라고요.”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자신과 같은 가정에서는 큰 굴레가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딸아이에 대한 친권도 없는 상태. 그러다보니 애가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큰일이다. 김씨는 법정대리인(친권자)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아이 이름으로 된 적금을 해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때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법정대리인인 친권자(친아버지)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그 외에도 아이의 여권을 만들거나 각종 서류를 만들 때도 일일이 호주인 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분명 아이는 우리가 키우는데 모든 권리는 아이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 있어요. 우린 허깨비인 셈이죠.”

99년 이혼후 혼자 10세와 7세 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홍정선씨(37·경기도 부천) 역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들 호적이 전남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전 친권만 있으면 아이들이 제 호적 밑으로 오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양육비도 필요없으니 친권만 달라고 했죠. 그렇게 합의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구청 호적과에 갔어요. 그런데 구청 직원 말이 제 호적 밑으로 애들이 못 온다는 거예요.”

홍씨는 그때 남편의 득의만만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웃음의 의미는 ‘잘나봤자 넌 여자다. 암만 그래봤자 호적이 너에게 갈 것 같냐, 네가 키워도 이 애들은 내 자식이다’ 하는 비웃음이었어요.”



입양한 양자는 가족으로 친자식은 동거인이 되는 게 호주제

그래서 남편에게 호주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네가 결혼하면 양아버지에게 호주권을 넘기겠다”고 했다. 재혼을 하면 친부와 양부가 만나 동의해서 입양을 통해 호적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재혼 안한 엄마는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없는데, 양아버지는 입양을 통해서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요? 더 웃기는 것은 여자가 단독 호주일 때 양자를 입적시킬 수 있지만 정작 친자식은 안 된대요. 혈연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만든 호주제라면서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

그는 출생상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호적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굳이 호주가 누구인지 주민등록등본에까지 밝혀 ‘이 집은 사별가정이구나’, ‘이 집은 이혼가정이구나’ 하는 것을 공개할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피해를 겪고 고통을 당한다면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제가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엔 아빠가 다 책임지니까 호주제란 게 설득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이혼하면 엄마가 키우는 경우가 더 많아졌잖아요. 생활이 바뀌면 전통도 바뀌어야죠.”

물론 호주제의 폐지를 곧 가족의 해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호적도 그대로 존재하고, 가정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지 호주가 꼭 남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성이 될 수 있게 하고, 자녀의 성씨도 상황에 따라 엄마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89년까지 장남은 호적에서 분가를 할 수 없었다가 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분가를 안해요. 정말 필요한 사람들만 하죠. 마찬가지로 호주제를 폐지하거나 개정해도 대부분 호주는 아버지가 될 겁니다.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것이고요. 그걸 따르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걸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선택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여성단체가 제기하는 현행 호주제도의 문제 조항

여성단체들은 호주제를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배·종속 관계에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격권을 침해하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아내와 어머니의 지위를 남편과 아버지보다 하위에 위치하게 하는 남녀차별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조항은 다음과 같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새 호적을 편제할 때, 남편이 호주가 되고 여성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826조 3항)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정하고 있다 (민법 제984조)


자녀는 출생하면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하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어머니 쪽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 781조).


여성이 혼인외 자녀를 입적시킬 때는 전남편과 현재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내의 동의가 필요치 않다 (민법 제784조).







작가 공지영이 말하는 “성 다른 내 두 아이 상처”

나는 내 아들이 어린애일 때 재혼했다. 하지만 법률상 지금의 아빠와 아이는 그저 동거인 관계일 뿐이다. 아이는 아빠 직장의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고 세금공제 대상에도 제외돼 있다. 혹시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될까봐 병원에서는 통사정을 해서 아이의 성을 빼고 부르게 했으며,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통장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다.

나는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을 속여왔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유치원 동창이 전혀 없는 멀고 낯선 학교에 낯선 본래의 이름으로 입학시켰다. 성이 바뀌었다는 놀림이나 피하게 하려는 궁여지책이다.

그리고 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통학시키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혼할 때 아이의 양육자이자 친권자로 법원에서 승인받았지만 아이의 여권 하나 만드는 일에도 호주인 전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것이 법이 보장하는 양육권과 친권의 현실이다.

지금 이 아이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다. 성이 다른 동생에게 이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이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며 제 친부모를 원망하고 비뚤어질 무렵, 청소년 문제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같은 처지에 있는 한 친구는 이민을 준비중이다.

이혼한 여성들은 호주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편견 및 시선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전쟁터 같은 가정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렇다. 나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맡을 생각이 없는 친부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자숙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방법이 없음을 알고 공문서를 위조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다시 해볼까도 생각했다. 감옥에 갇힌다 해도 해결만 된다면, 아니 아이가 진실을 이해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상처를 유보해 줄 수만 있다면…. 이것이 죄라면 나를 감옥에 보내라.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 이미 이웃의 시선에 주눅 든 아이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덧입히지 말라. 그리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와 그 엄마를 기꺼이 부양하는 착한 새아빠들에게도 더는 고통을 주지 말라.

우리는 충분히 괴롭다. 호주제를 지지하는 어른들이냐, 자라나는 아이들이냐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혹시 내 아이가 다시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 글은 공지영씨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로 본인과 중앙일보의 허락을 얻어 다시 싣습니다)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김성남, 김형우 기자

■ 기사 입력시간 : 2001.8.10



















[핫이슈! 호주제] 현행 호주제로 고통받는 가정의 피해사례

"성(姓) 바꾸기 위해 자식 사망신고해 전과자 된 엄마의 한맺힌 사연을 아시나요 ?"
최근 호주제 폐지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이는 무조건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고,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며, 호주 승계도 남성이 우선한다는 법 조항은 남녀평등에 위배되며, 특히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에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복순씨(42)는 94년 두 딸을 데리고 재혼했다. 사망한 전남편 병수발로 생긴 감당하기 힘든 빚과 남겨진 두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막막했던 그녀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아버지 밑에서 키우고 싶어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아이들의 성과 새아버지의 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 강씨와 남편 설씨는 결국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들을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하고, 새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딸은 설씨 성을 가진 아이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설씨가 사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씨는 ‘공문서위조’가 드러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전과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딸의 성을 새아버지의 성과 같도록 하려다 전과자가 된 강씨의 사연은 결코 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가정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인데, 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의 성을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호주제 때문.

호주제란 민법에 근거, 한 가(家)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편제하도록 하는 제도. 요즘 이 호주제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여성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단체에서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는 작년 9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위헌소송 원고인단을 모집, 11월에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그 결과 지난 3월말 서울지법 서부지원과 북부지원이 “민법상 호주제 관련조항(778조, 781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다. 이 결정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여성단체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곽배희)에서는 지난 7월4일, 전국 28개 도시에서 호주제의 문제점을 알리고, 폐지를 촉구하는 ‘호주제 바로알기 운동’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지은희)도 지난 7월1일 대학로에서 방송인 백지연씨와 ‘옷로비사건’ 특별검사로 활약했던 최병모 변호사를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호주제 폐지 홍보행사를 여는 등 호주제 폐지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호주제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을 때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는 이혼가정, 편모가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1천만 가정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천만 여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남자 소유물로만 존재해야 하죠?”

“호주제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호주제를 처음 만든 일본에서조차 폐지했죠. 물론 우리나라도 89년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호주제 관련조항이 거의 폐지되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호주제를 폐지하라고 하느냐 하면 아무리 법적으로 99%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 하더라고 호주제가 있는 한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만난 배선희씨(31)는 6년 전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 그는 보통 여성이 느끼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결혼식 때도 신랑과 동시입장을 했어요. 결혼은 동등한 남녀가 만나는 것인데 왜 아버지가 남편에게 나를 인계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그 정도만 해도 제가 동등한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죠.”

배씨는 결혼 후 호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호적에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묘한 굴욕감이란 걸 느꼈다고 한다. 여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 남자에서 저 남자에게 옮겨지는 소유물로 취급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이를 낳으면서부터였다고.

“병원에서는 분명 ‘배선희의 자’이던 아이가 퇴원을 하면서부터 남편인 지씨 집안의 소유가 되더라고요. 분명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피를 똑같이 반반씩 받아 태어났는데 일방적으로 한쪽 성만 따라야 한다는 것에 억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빼앗겼다는 생각도 들고….”

더욱더 기가 막힌 건 만약 남편이 사망하면 호주제에 의해 네살 된 아들이 집안의 주인인 호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나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가 네살 된 아이의 소유물이 되는 셈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며 길렀는데 왜 아이에 대한 권리는 남자만이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호주제 폐지는 그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해 달라는 거예요.”

배씨의 이야기가 남녀평등을 바라는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앞에서 예로 든 강씨처럼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여성이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경우 호주제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호주제 위헌소송 원고인단에 참여한 김상희씨(33·경기도 안산)는 누구보다도 호주제로 인한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그는 결혼 2년 만에 남편과 헤어진 후 혼자 아이를 키우다 99년 재혼했다.

“아이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는 친아빠보다 더 좋은 새아빠가 필요해’라고. 그래서 아이를 위해 재혼을 결심했고,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이는 아이에게 너무너무 잘해줘요.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가 놀아달라면 새벽 1시까지도 놀아주고….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새 아빠라는 걸 주위 사람들이 몰라요.”

하지만 아이의 성이 아빠와 다르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재혼후 남편은 큰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딸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가 한번 갔다오더니 가지 않겠대요. 성이 다르다고 사촌들이 따돌리니까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 없을 때만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는 재혼한 가정이면 누구나 한번은 동네 아이들이 “너희 아빠 새아빠라며? 아빠하고 성이 틀리다며?” 하고 놀리는 바람에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엔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게 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고, 스스로 주눅이 들어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그저 단순히 놀린 아이들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반문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인 아빠란 이유로 평생 아이의 성을 규정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아이는 정말 자신을 아껴줄 아빠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어야 해요.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더한 고통을 겪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김씨는 딸아이 때문에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를 갖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동생과 아이의 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재혼가정 아이들의 고통은 말도 못해

김씨 부부는 아이의 성을 새아빠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호적법상 불가능했다. 남편은 “내가 성을 바꿔서라도 딸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도 했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이를 사망신고한 후 새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키거나,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뒤 입양하는 식으로 자녀의 성을 바꾸는 불법·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성씨 문제뿐 아니라 아이를 법적인 자녀로 인정받는 것도 현 호주제에서는 요원하다. 김씨의 딸은 지금 법적으로 동거인일 뿐, 가족이 아니다. 처음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동사무소 직원과 싸운 끝에 자식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여전히 호주라는 이름으로 친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아이는 지금 친아버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더욱 두려워요. 아이가 나중에 주민등록등본을 보며 친아버지에 대해 ‘나를 버린 사람’이라며 증오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전 아이가 그런 감정을 갖는 것도 싫어요. 그냥 구김살 없이 자랐으면 좋겠는데, 이 호주제도란 게 아이에게 그런 악한 마음을 키워주는 법이더라고요.”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자신과 같은 가정에서는 큰 굴레가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딸아이에 대한 친권도 없는 상태. 그러다보니 애가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큰일이다. 김씨는 법정대리인(친권자)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아이 이름으로 된 적금을 해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때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법정대리인인 친권자(친아버지)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그 외에도 아이의 여권을 만들거나 각종 서류를 만들 때도 일일이 호주인 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분명 아이는 우리가 키우는데 모든 권리는 아이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 있어요. 우린 허깨비인 셈이죠.”

99년 이혼후 혼자 10세와 7세 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홍정선씨(37·경기도 부천) 역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들 호적이 전남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전 친권만 있으면 아이들이 제 호적 밑으로 오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양육비도 필요없으니 친권만 달라고 했죠. 그렇게 합의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구청 호적과에 갔어요. 그런데 구청 직원 말이 제 호적 밑으로 애들이 못 온다는 거예요.”

홍씨는 그때 남편의 득의만만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웃음의 의미는 ‘잘나봤자 넌 여자다. 암만 그래봤자 호적이 너에게 갈 것 같냐, 네가 키워도 이 애들은 내 자식이다’ 하는 비웃음이었어요.”



입양한 양자는 가족으로 친자식은 동거인이 되는 게 호주제

그래서 남편에게 호주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네가 결혼하면 양아버지에게 호주권을 넘기겠다”고 했다. 재혼을 하면 친부와 양부가 만나 동의해서 입양을 통해 호적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재혼 안한 엄마는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없는데, 양아버지는 입양을 통해서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요? 더 웃기는 것은 여자가 단독 호주일 때 양자를 입적시킬 수 있지만 정작 친자식은 안 된대요. 혈연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만든 호주제라면서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

그는 출생상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호적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굳이 호주가 누구인지 주민등록등본에까지 밝혀 ‘이 집은 사별가정이구나’, ‘이 집은 이혼가정이구나’ 하는 것을 공개할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피해를 겪고 고통을 당한다면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제가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엔 아빠가 다 책임지니까 호주제란 게 설득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이혼하면 엄마가 키우는 경우가 더 많아졌잖아요. 생활이 바뀌면 전통도 바뀌어야죠.”

물론 호주제의 폐지를 곧 가족의 해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호적도 그대로 존재하고, 가정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지 호주가 꼭 남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성이 될 수 있게 하고, 자녀의 성씨도 상황에 따라 엄마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89년까지 장남은 호적에서 분가를 할 수 없었다가 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분가를 안해요. 정말 필요한 사람들만 하죠. 마찬가지로 호주제를 폐지하거나 개정해도 대부분 호주는 아버지가 될 겁니다.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것이고요. 그걸 따르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걸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선택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여성단체가 제기하는 현행 호주제도의 문제 조항

여성단체들은 호주제를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배·종속 관계에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격권을 침해하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아내와 어머니의 지위를 남편과 아버지보다 하위에 위치하게 하는 남녀차별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조항은 다음과 같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새 호적을 편제할 때, 남편이 호주가 되고 여성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826조 3항)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정하고 있다 (민법 제984조)


자녀는 출생하면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하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어머니 쪽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 781조).


여성이 혼인외 자녀를 입적시킬 때는 전남편과 현재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내의 동의가 필요치 않다 (민법 제784조).

********* 작가 공지영이 말하는 “성 다른 내 두 아이 상처”

나는 내 아들이 어린애일 때 재혼했다. 하지만 법률상 지금의 아빠와 아이는 그저 동거인 관계일 뿐이다. 아이는 아빠 직장의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고 세금공제 대상에도 제외돼 있다. 혹시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될까봐 병원에서는 통사정을 해서 아이의 성을 빼고 부르게 했으며,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통장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다.

나는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을 속여왔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유치원 동창이 전혀 없는 멀고 낯선 학교에 낯선 본래의 이름으로 입학시켰다. 성이 바뀌었다는 놀림이나 피하게 하려는 궁여지책이다.

그리고 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통학시키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혼할 때 아이의 양육자이자 친권자로 법원에서 승인받았지만 아이의 여권 하나 만드는 일에도 호주인 전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것이 법이 보장하는 양육권과 친권의 현실이다.

지금 이 아이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다. 성이 다른 동생에게 이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이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며 제 친부모를 원망하고 비뚤어질 무렵, 청소년 문제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같은 처지에 있는 한 친구는 이민을 준비중이다.

이혼한 여성들은 호주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편견 및 시선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전쟁터 같은 가정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렇다. 나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맡을 생각이 없는 친부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자숙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방법이 없음을 알고 공문서를 위조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다시 해볼까도 생각했다. 감옥에 갇힌다 해도 해결만 된다면, 아니 아이가 진실을 이해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상처를 유보해 줄 수만 있다면…. 이것이 죄라면 나를 감옥에 보내라.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 이미 이웃의 시선에 주눅 든 아이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덧입히지 말라. 그리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와 그 엄마를 기꺼이 부양하는 착한 새아빠들에게도 더는 고통을 주지 말라.

우리는 충분히 괴롭다. 호주제를 지지하는 어른들이냐, 자라나는 아이들이냐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혹시 내 아이가 다시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 글은 공지영씨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로 본인과 중앙일보의 허락을 얻어 다시 싣습니다)






























[핫이슈! 호주제] 현행 호주제로 고통받는
이혼가정·재혼가정 피해사례

"성(姓) 바꾸기 위해 자식 사망신고해 전과자 된 엄마의 한맺힌 사연을 아시나요 ?"
최근 호주제 폐지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이는 무조건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고,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며, 호주 승계도 남성이 우선한다는 법 조항은 남녀평등에 위배되며, 특히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에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복순씨(42)는 94년 두 딸을 데리고 재혼했다. 사망한 전남편 병수발로 생긴 감당하기 힘든 빚과 남겨진 두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막막했던 그녀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아버지 밑에서 키우고 싶어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아이들의 성과 새아버지의 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 강씨와 남편 설씨는 결국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들을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하고, 새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딸은 설씨 성을 가진 아이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설씨가 사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씨는 ‘공문서위조’가 드러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전과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딸의 성을 새아버지의 성과 같도록 하려다 전과자가 된 강씨의 사연은 결코 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가정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인데, 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의 성을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호주제 때문.

호주제란 민법에 근거, 한 가(家)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편제하도록 하는 제도. 요즘 이 호주제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여성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단체에서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는 작년 9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위헌소송 원고인단을 모집, 11월에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그 결과 지난 3월말 서울지법 서부지원과 북부지원이 “민법상 호주제 관련조항(778조, 781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다. 이 결정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여성단체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곽배희)에서는 지난 7월4일, 전국 28개 도시에서 호주제의 문제점을 알리고, 폐지를 촉구하는 ‘호주제 바로알기 운동’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지은희)도 지난 7월1일 대학로에서 방송인 백지연씨와 ‘옷로비사건’ 특별검사로 활약했던 최병모 변호사를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호주제 폐지 홍보행사를 여는 등 호주제 폐지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호주제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을 때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는 이혼가정, 편모가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1천만 가정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천만 여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남자 소유물로만 존재해야 하죠?”

“호주제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호주제를 처음 만든 일본에서조차 폐지했죠. 물론 우리나라도 89년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호주제 관련조항이 거의 폐지되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호주제를 폐지하라고 하느냐 하면 아무리 법적으로 99%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 하더라고 호주제가 있는 한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만난 배선희씨(31)는 6년 전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 그는 보통 여성이 느끼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결혼식 때도 신랑과 동시입장을 했어요. 결혼은 동등한 남녀가 만나는 것인데 왜 아버지가 남편에게 나를 인계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그 정도만 해도 제가 동등한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죠.”

배씨는 결혼 후 호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호적에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묘한 굴욕감이란 걸 느꼈다고 한다. 여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 남자에서 저 남자에게 옮겨지는 소유물로 취급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이를 낳으면서부터였다고.

“병원에서는 분명 ‘배선희의 자’이던 아이가 퇴원을 하면서부터 남편인 지씨 집안의 소유가 되더라고요. 분명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피를 똑같이 반반씩 받아 태어났는데 일방적으로 한쪽 성만 따라야 한다는 것에 억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빼앗겼다는 생각도 들고….”

더욱더 기가 막힌 건 만약 남편이 사망하면 호주제에 의해 네살 된 아들이 집안의 주인인 호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나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가 네살 된 아이의 소유물이 되는 셈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여자는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며 길렀는데 왜 아이에 대한 권리는 남자만이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호주제 폐지는 그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해 달라는 거예요.”

배씨의 이야기가 남녀평등을 바라는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앞에서 예로 든 강씨처럼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여성이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경우 호주제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호주제 위헌소송 원고인단에 참여한 김상희씨(33·경기도 안산)는 누구보다도 호주제로 인한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그는 결혼 2년 만에 남편과 헤어진 후 혼자 아이를 키우다 99년 재혼했다.

“아이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는 친아빠보다 더 좋은 새아빠가 필요해’라고. 그래서 아이를 위해 재혼을 결심했고,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이는 아이에게 너무너무 잘해줘요.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가 놀아달라면 새벽 1시까지도 놀아주고….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새 아빠라는 걸 주위 사람들이 몰라요.”

하지만 아이의 성이 아빠와 다르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재혼후 남편은 큰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딸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가 한번 갔다오더니 가지 않겠대요. 성이 다르다고 사촌들이 따돌리니까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 없을 때만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는 재혼한 가정이면 누구나 한번은 동네 아이들이 “너희 아빠 새아빠라며? 아빠하고 성이 틀리다며?” 하고 놀리는 바람에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엔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게 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고, 스스로 주눅이 들어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그저 단순히 놀린 아이들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반문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인 아빠란 이유로 평생 아이의 성을 규정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아이는 정말 자신을 아껴줄 아빠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어야 해요.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더한 고통을 겪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김씨는 딸아이 때문에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를 갖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동생과 아이의 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재혼가정 아이들의 고통은 말도 못해

김씨 부부는 아이의 성을 새아빠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호적법상 불가능했다. 남편은 “내가 성을 바꿔서라도 딸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도 했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이를 사망신고한 후 새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키거나,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뒤 입양하는 식으로 자녀의 성을 바꾸는 불법·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성씨 문제뿐 아니라 아이를 법적인 자녀로 인정받는 것도 현 호주제에서는 요원하다. 김씨의 딸은 지금 법적으로 동거인일 뿐, 가족이 아니다. 처음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동사무소 직원과 싸운 끝에 자식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여전히 호주라는 이름으로 친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아이는 지금 친아버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더욱 두려워요. 아이가 나중에 주민등록등본을 보며 친아버지에 대해 ‘나를 버린 사람’이라며 증오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전 아이가 그런 감정을 갖는 것도 싫어요. 그냥 구김살 없이 자랐으면 좋겠는데, 이 호주제도란 게 아이에게 그런 악한 마음을 키워주는 법이더라고요.”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자신과 같은 가정에서는 큰 굴레가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딸아이에 대한 친권도 없는 상태. 그러다보니 애가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큰일이다. 김씨는 법정대리인(친권자)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아이 이름으로 된 적금을 해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때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법정대리인인 친권자(친아버지)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그 외에도 아이의 여권을 만들거나 각종 서류를 만들 때도 일일이 호주인 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분명 아이는 우리가 키우는데 모든 권리는 아이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 있어요. 우린 허깨비인 셈이죠.”

99년 이혼후 혼자 10세와 7세 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홍정선씨(37·경기도 부천) 역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들 호적이 전남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전 친권만 있으면 아이들이 제 호적 밑으로 오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양육비도 필요없으니 친권만 달라고 했죠. 그렇게 합의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구청 호적과에 갔어요. 그런데 구청 직원 말이 제 호적 밑으로 애들이 못 온다는 거예요.”

홍씨는 그때 남편의 득의만만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웃음의 의미는 ‘잘나봤자 넌 여자다. 암만 그래봤자 호적이 너에게 갈 것 같냐, 네가 키워도 이 애들은 내 자식이다’ 하는 비웃음이었어요.”



입양한 양자는 가족으로 친자식은 동거인이 되는 게 호주제

그래서 남편에게 호주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네가 결혼하면 양아버지에게 호주권을 넘기겠다”고 했다. 재혼을 하면 친부와 양부가 만나 동의해서 입양을 통해 호적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재혼 안한 엄마는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없는데, 양아버지는 입양을 통해서 아이들의 호주가 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요? 더 웃기는 것은 여자가 단독 호주일 때 양자를 입적시킬 수 있지만 정작 친자식은 안 된대요. 혈연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만든 호주제라면서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

그는 출생상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호적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굳이 호주가 누구인지 주민등록등본에까지 밝혀 ‘이 집은 사별가정이구나’, ‘이 집은 이혼가정이구나’ 하는 것을 공개할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피해를 겪고 고통을 당한다면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제가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엔 아빠가 다 책임지니까 호주제란 게 설득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이혼하면 엄마가 키우는 경우가 더 많아졌잖아요. 생활이 바뀌면 전통도 바뀌어야죠.”

물론 호주제의 폐지를 곧 가족의 해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호적도 그대로 존재하고, 가정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지 호주가 꼭 남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성이 될 수 있게 하고, 자녀의 성씨도 상황에 따라 엄마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89년까지 장남은 호적에서 분가를 할 수 없었다가 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분가를 안해요. 정말 필요한 사람들만 하죠. 마찬가지로 호주제를 폐지하거나 개정해도 대부분 호주는 아버지가 될 겁니다.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것이고요. 그걸 따르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걸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선택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여성단체가 제기하는 현행 호주제도의 문제 조항

여성단체들은 호주제를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배·종속 관계에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격권을 침해하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아내와 어머니의 지위를 남편과 아버지보다 하위에 위치하게 하는 남녀차별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조항은 다음과 같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새 호적을 편제할 때, 남편이 호주가 되고 여성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826조 3항)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정하고 있다 (민법 제984조)


자녀는 출생하면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하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어머니 쪽의 호적에 입적한다 (민법 제 781조).


여성이 혼인외 자녀를 입적시킬 때는 전남편과 현재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내의 동의가 필요치 않다 (민법 제784조).







작가 공지영이 말하는 “성 다른 내 두 아이 상처”

나는 내 아들이 어린애일 때 재혼했다. 하지만 법률상 지금의 아빠와 아이는 그저 동거인 관계일 뿐이다. 아이는 아빠 직장의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고 세금공제 대상에도 제외돼 있다. 혹시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될까봐 병원에서는 통사정을 해서 아이의 성을 빼고 부르게 했으며,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통장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다.

나는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을 속여왔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유치원 동창이 전혀 없는 멀고 낯선 학교에 낯선 본래의 이름으로 입학시켰다. 성이 바뀌었다는 놀림이나 피하게 하려는 궁여지책이다.

그리고 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통학시키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혼할 때 아이의 양육자이자 친권자로 법원에서 승인받았지만 아이의 여권 하나 만드는 일에도 호주인 전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것이 법이 보장하는 양육권과 친권의 현실이다.

지금 이 아이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다. 성이 다른 동생에게 이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이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며 제 친부모를 원망하고 비뚤어질 무렵, 청소년 문제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같은 처지에 있는 한 친구는 이민을 준비중이다.

이혼한 여성들은 호주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편견 및 시선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전쟁터 같은 가정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렇다. 나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맡을 생각이 없는 친부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자숙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방법이 없음을 알고 공문서를 위조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다시 해볼까도 생각했다. 감옥에 갇힌다 해도 해결만 된다면, 아니 아이가 진실을 이해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상처를 유보해 줄 수만 있다면…. 이것이 죄라면 나를 감옥에 보내라.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 이미 이웃의 시선에 주눅 든 아이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덧입히지 말라. 그리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와 그 엄마를 기꺼이 부양하는 착한 새아빠들에게도 더는 고통을 주지 말라.

우리는 충분히 괴롭다. 호주제를 지지하는 어른들이냐, 자라나는 아이들이냐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혹시 내 아이가 다시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 글은 공지영씨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로 본인과 중앙일보의 허락을 얻어 다시 싣습니다)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김성남, 김형우 기자

■ 기사 입력시간 : 20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