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유치환
가을이 접어드니 어디선지
아이들은 꽃씨를 받아 모으기를 하였다.
봉숭아 금선화 맨드래미 나팔꽃
밤에 복습도 다마치고
제각기 잠잘 채비를하고 자리에 들어가서도
또들 꽃씨를 두고 이야기___
우리 집에도 꽃 심을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느덧 밤도 깊어
엄마가 이불을 고쳐 덮어줄 때에는
이 가난한 어린 꽃들은 제각기
고운 꽃밭을 안고 곤히 잠들어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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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 천양희
나뭇잎들이 아무것도 보고있지 않은 날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소리 가을이 늦었다고 투덜댑니다 숲은 또 다른 것들을 품었는지 만삭의 배를 내밀고 일찍 씨 떨군 나무들의 열매가 붉습니다 붉은 것들이 타는 속을 부추깁니다. 한살이를 끝낸 벌레들이 땅 끝으로 숨는 때, 나는 스스로 붉게 타는 나무들의 속이 궁금해집니다 맘속이 뿌리 속보다 깊어지고 하루하루의 길이 사람의 길이라서 산끝이 올려다보입니다. 산길오르고서야 평지에도 바람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아냅니다 마을 지붕에선 풀들이 철 늦은 꽃을 피우기도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의 목소리가 제 그림자보다 깊어지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들의 앞날이 위태롭고 지금 바위들은 괴로움 곁에서 묵묵합니다 나는 천지에다 호소하는 마음으로 하늘 언저리를 기웃거립니다 저 같은 죄인도 구원할수 있나요?물가의 은빛 갈대들이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골짜기는 깊어서 제 몸속에 오래 감추고 이 길 그치고 나면 가을 더욱 붉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