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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끔찍한 일...


BY 세상에나 2001-08-26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퍼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부 김민구기자입니다.

오늘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본지 지면에 실리지 못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상도 못할 아주 좋지 않은 내용의 사건이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점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미성년자나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더 이상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주 말 서울 구로경찰서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평범한 인상의 시골 "노인(?)"이

한 명 잡혀왔습니다.

이 노인은 폭행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태였습니다. 나이 50에 변변한

일자리조차 없는 이 노인은 생활보호대상자로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부인과는 94년 이혼하고 방 2칸짜리 무허가 건물에서 5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큰딸만 나이가 23살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 아이들입니다. 큰딸은 3살 때 친부모가 시내버스에 버린 것을 양녀로 입양해

길렀다고 합니다.

어린 자녀들은 경찰이 노인을 체포하려 할 때 "우리 아버지를 어디로 데려가냐"며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울면서 매달리는 이 아이들을 억지로 떼어내, 인근 고아원에 맡긴 후에야

노인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 가난한 노인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흥분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이 노인의 가정에는 경찰도 깜짝 놀란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노인의 호적에는 큰딸만 입양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나머지 4명의 아이들은 노인의

친자식으로 등재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적에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전혀 기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모친 불명". 네명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가

누군지는 경찰 조사에서 금방 밝혀졌습니다.

4명의 아이들 중 3명은 노인의 맏딸이 낳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노인은 입양한 딸이 6살나던 해부터 강제로 성관계를 갖기 시작해 딸이 16살되던

해부터는 아예 "마누라로 삼아" 3명의 애를 낳아가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인은 딸이 반항을 하면 두들겨 패거나 방에 자물쇠를 채워 감금한 채

밥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2번의 낙태수술을 받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경찰이 밝힌 노인의 혐의입니다.

1) 81년 전남 A시 시내버스에 부모로부터 버려져 있던 3살짜리 여아를 입양해

키우다가 그녀가 6살이 되던 84년 자신의 집 안방에서 처음 간음하고,

그 이후 주 2~3회 계속 간음하다가 피해자가 성장해 도망치려 하자 도망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임신케 하여, 2회의 낙태 수술을 받게 하고, 95년과 97년, 98년에 각각

아이를 출산케 했음.

2) 90년 피해자가 12살되던 해부터 95년 9월 첫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피해자가

상습적인 강간과 폭행을 참지 못해 도망가려하자 수차례 피해자를 안방에 감금한 후

24시간동안 밥을 주지 않음.

3) 99년 11월 중순, 피해자가 노인의 여자 문제로 대들자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여러차례 때리고 길이 1m짜리 각목을 가져와 머리 등 온몸을 여러차례 때려 얼굴과

머리 등이 심하게 부어 오르고 멍이 들게 했음.

경찰은 성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3번째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놀랄만한 사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노인의 막내딸은 98년 노인이 조카딸(당시12살)을 강제로 임신시켜 출산한 아이로

밝혀졌습니다.

조카딸은 노인의 친형이 입양해 기르던 아이로, 노인은 평소 조카딸에게 옷 등을

사주며 꾀어 자신의 집에 자주 찾아오도록 했다고 합니다.

98년 9월 노인은 자신의 집에서 잠들어 있던 그녀를 강간해 임신을 시켰습니다.

이후 노인은 조카딸과 한 집에 살면서 2000년 10월 집을 나갈 때까지 주 1~2회씩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조카딸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 노인의 집에는 노인과 맏딸,

조카딸 그리고 4명의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경찰은 노인의 행위에 대해 맏딸에 대해서는 단순 폭행, 조카딸에 대해서는 "강간"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유치장에 있는 노인을 만나러

찾아갔습니다. 노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부분의 혐의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의 죄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경찰에 고발하려면 진작할 것이지 애를 셋씩이나 낳고서 뒤늦게 무슨 짓이냐" "동네

사람들도 친딸이 아닌 것을 다 안다. 친딸이 아닌데 데리고 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자기들이 집에 있고 싶으면 있고, 어떤 놈과 눈맞으면 나가고 했지 내가

강제로 붙들어 둔 것 없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꾸 물건이 없어진다고 하길래 방안에 가둬둔 것뿐이다.

질투가 나니까 생트집을 잡는다"

저는 노인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 분노조차 느낄 수 없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분노보다는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었는지 우리사회의

허술한 입양아 관리 체계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노인은 "본처와의 사이에 아기가 없는 것을 알고는 당시 동사무소에서 아이를

입양하라고 권했다"고 했습니다.

노인의 형이 입양한 "조카딸"은 이웃에 살던 할머니가 죽기 직전 형에게 손녀딸을

맡겼다고 합니다.

노인의 "양녀"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한쪽 귀가 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노인과의 관계를 의심한 노인의 본처가 홧김에 그녀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다가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이름조차 한글로 간신히 쓸 수 있을 정도로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입니다.

저는 "최소한 학교만 제대로 다녔어도..."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학교만 제대로 다녔어도 본인 스스로 자각하고, 학교 선생님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뒤돌아서는 제 등뒤에 "당시는 먹고 살기 바빴던 80년대가 아니었냐.

그런데까지 신경쓸 틈이 있었겠냐"는 한 형사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2001년 8월, 대한민국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金旻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