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백범 김구 선생 살해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이승만, 친일파,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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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九선생 암살 안두희는 美방첩대 요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시해사건의 주범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 정보원이자 정식 요원이었으며, 우익청년 단체였던 백의사 특공대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미 국립공문서 보존기록관리청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3일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했다.
편찬위측은 해외사료 이전사업의 일환으로 미국에 파견한 방선주 박사와 정병준 박사가 미국 정부측에 수년 전부터 비밀해제를 요구해 열람하게 된 「김구:암살에 관한 배후 정보(Kim Koo:Background Information Concerning Assassination)」란 제하의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RG 319, Entry 85A, 1949년6월29일 작성)에 이같은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 따르면 48년 말까지 CIC요원으로 한국에 근무했던 미 육군 소령이 이후 미 본토로 귀환, 미 1군 정보과장으로 근무중 1949년 김구 선생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이 문서를 작성했으며, 이 문서는 신뢰도면에서 A, B, C, D, F(각 1, 2, 3, 4등급으로 세분)등급 중 A2등급을 받아 신뢰도가 높다는 미군 자체평가가 붙어있다고 편찬위측은 말했다.
편찬위측은 “이 문서에 김구 선생 시해사건 당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빠져있어 미 방첩대가 시해사건의 배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성자는 한국 근무 당시 안두희를 잘 알고 있었고, 안씨가 CIC를 위한 정보원으로 일하다 나중에 정식 요원이 됐다고 기록했다”고 말했다.
또 42년 결성된 최대 우익 청년단체였던 ‘백의사’의 단장 염동진 앞에서 안두희가 ‘죽음으로써 활동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김구 선생이 염동진과도 잘 아는 사이라는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고 편찬위측은 말했다. 이 문서에는 김구 선생이 남북 연석회의에 다녀온 후 연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며 ‘큰 나무인데 공산주의라는 벌레가 꼬이고 있다’는 백의사측의 비판적 발언이 기록돼 있어 김구 선생이 이념투쟁 과정에서 우익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편찬위는 말했다.
이밖에 편찬위는 “이 문서에는 1948년 여순사건 진압부대였던 한국 4연대가 여순반란자들과 관련돼 있었으며, 이승만 정부와 북 정권과도 다른 파시스트적인 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정부의 수반으로 김구 선생을 옹립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미국측의 여순사건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두희는 지난 96년 10월 23일 인천시 중구 신흥동 동영아파트 502호 자신의 집에 침입한 버스운전사 박기서(53·97년 3년형 확정 후 복권)씨가 휘두른 방망이에 머리를 맞고 살해됐다. 당시 안두희는 79세였다.
( 최원석기자 yuwhan29@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