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지도
룸메이트(Roommate)인 숀(Sean)은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Starcraft) 같은 컴퓨터 오락에서부터 체스, 오목, 오델로, 모나폴리(Monopoly), 리스크(Risk), 젱가(Zenga) 등등 수많은 게임들을 즐겼다. 심지어는 한국에 2년동안 머무르는 동안 배웠다는 '고스톱'도 칠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종종 저녁식사 후에는 게임판이 벌어지곤 했다. 룸메이트인 숀(Sean)과 라이언(Ryan)과 나를 비롯해서, 옆방에 사는 모(Mo), 아래층에 사는 에밀리(Emily)등이 모여서 게임을 했다.
그중에 흥미로웠던 게임은 '리스크(The Risk)'라는 게임이었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군사를 이동시켜서 대륙을 침략하고 나라를 빼앗는 주사위 게임이었다. 전형적인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세계관이 나타나 있는 게임. 게임은 2명에서 6명까지 함께 겨룰 수 있는데, 최후의 1인이 세계 전체를 지배할때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근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세 시대에 '한국(Korea)'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있는 자리에는 중국 대륙 일부로 널게 펼쳐져 있는 '몽골(Mongol)'이라는 나라가 위치하고 있었다. 근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옆에 '일본(Japan)'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한 술 더떠서 '동해'는 '일본해(Sea of Japan)'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숀, 이 게임에 왜 한국이 없는거야? 기분나쁜데. 저거봐. 역사가 150년도 안된 캐나다도 멀쩡이 있고, 한국보다 역사가 짧은 일본도 저기 저렇게 위치해 있는데, 한국은 어디간거야? 나 기분나빠서 이 게임 안할래."
"진정해.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한국은 5천년도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인데 말이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구.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깐. 기분나쁘면 조그맣게 '한국(Korea)'라고 그려넣고 시작하지 뭐."
친구들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 이미 모여든 상태였기 때문에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시작했다. 5명이서 게임을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나의 제국'과 유럽을 거점으로 한 '숀의 제국'만이 남아서 맞붙게 되었다. 한국이 게임의 중세지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세계를 전부 손아귀에 넣은 후에 '대한 합중국(The united of Korea)'이라는 제국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었다. 피할 수 없는 결전이었다.
"숀..우리 둘만 남았는데, 우리 이만 화해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건 어떨까? 너도 이미 세계의 절반을 가졌잖아."
"큭큭.. 그럼 게임이 성립이 안되잖아. 어서 결판을 내자."
현재를 지배한자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한자 미래를 지배한다
'대한 합중국(The United of Korea)'을 세우겠다는 나의 야심찬 계획은 결국 숀(Sean)의 막강한 군사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패배감에 고개를 한동안 숙이고 있다가 비굴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니, 숀(Sean)은 도도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이 게임은 나에게 있어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를 지배한자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한자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 이 말처럼 이 게임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 있을까.
지금 현재에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게임 속의 '중세시대의 지도' 속으로 돌아가 다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바탕 세계전쟁을 벌이게 되는 이 게임. 이 게임 속에는 세계사의 과거,현재, 미래가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중세시대의 산물인 '제국주의'는 그 기반이 군사력에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으로 바뀌었을 뿐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어쩌면 한국과 같은 약소국은 그들의 눈에는 하나의 들러리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중세시대에 한국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있었든, 없었든 그들은 관심이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한국이 있던 없던, 어짜피 우리들끼리의 싸움인데. '
일본의 왜곡역사교과서
일본은 확실히 강하다. 역사는 힘있는자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라고 할때, 일본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과거의 역사를 미화하고 왜곡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해서 그러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서서히 그들의 의도대로 역사는 다시 쓰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캐나다와 미국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일본인 친구들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듯 했다. 종군 위안부의 존재도 생체실험의 마루타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일본인 친구는 동경대를 졸업했다는 다까오 뿐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몇몇 깨어있는 일부 지식인들만 제대로 알고 있을 뿐이야. 그것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말이야."
일본 역사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 항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스스로가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의 힘이 강해지면 우리의 목소리도 그만큼 힘을 얻을테니까. 언젠가 그런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가 나중에 강대국이 되어서 우리의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지도에서는 중국과 일본까지 차지한 한국이 등장하고,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의 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 볼멘소리로 항의하는 그런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