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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 조용히 해^^


BY fof2gift 2001-11-08

나의 고향은 춘천이다.

춘천 시내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들어가야 하며 두시간에 한대꼴로 버스가 다닌다. 겨울에 눈이라도 많이 오는 날에는 첫차는 오지 않는다. 문화시설(?)이라고는 동네 어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구멍 가게 하나가 전부이다.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귀가 어두우셔서 물건을 구입하고도 직접 계산을 하고 얼마를 냈으니 얼마를 거슬러 주시면 된다고 큰 소리로 똑똑하게 말씀을 드려야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다.

엄마는 가끔씩 파란 시장 바구니를 들고 읍내에 가셨다. 아침에 나가시면 보통은 오후가 되어야 돌아오시곤 했는데 늘 가구 한쪽의 귀퉁이에는 찐빵이 있었다. 검은 비닐 봉지 안에서 약간은 모양이 찌그러진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얀 찐빵에서는 여분의 따뜻함이 배어 나왔고 그것을 먹는 일은 아침에 나가신 엄마를 오후가 될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이자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

어쩌다가 끓여먹는 라면, 계란 후라이, 어묵 볶음, 소세지 전 등은 별미 중의 별미였고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우리 동네에도 부식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울 건너 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 간혹 말다툼하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오는 우리 마을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오는 부식차는 인기만점이었다. 동네까 떠나갈듯이 뽕짝이 울려 퍼지고 트럭 소리가 나면 아줌마들은 양푼이나 이남박을 하나씩 들고 트럭 근처로 모여 들었다. 계란을 비롯하여 어묵, 국수, 미역, 생선 등 없는게 없었다. 엄마도 부엌에서 저녁을 짓다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양푼을 찾아들고 서둘러서 나가시곤 했다. 그 날 저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삼년전 결혼과 동시에 나의 서울 생활을 시작되었다.

그 곳에서 태어나 이십년을 넘게 줄곧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객지 생활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서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인파와 구름마져 쉬었다 가는 높디 높은 빌당숲, 몇 차선인지도 모를 넓은 길을 하루 종일 질주하는 차량들...은 답답함에 숨막힐 듯 다가왔고 현기증마져 나게 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익숙해지기까지 이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지난해 봄 엄마는 막내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다며 처음으로 오빠와 함께 서울에 오셨었다. 점심 식사 후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갔다 오겠다고 하자 엄마는 답답하시다며 함께 갈 것을 제안하셨다.

공판장엘 가니 마침 세일중이었다.

평소에도 늘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던 그곳은 더욱더 북적거렷고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각 코너마다 판촉전이 치열했고 순간 세일 등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아줌마들의 치열한 구입 쟁탈저이 이루어지고 있어 도깨비 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것 저것 고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워, 조용히 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수라장 같던 매장 안은 순간적으로 조용- 고요- 적막! 침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와 엄마에게 꽂혀 있었다. 아뿔싸~ 우리 엄마였구나... 난 얼굴이 달아 오라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곧이어 여기저기서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엄마에게 작고 낮은 목소리로,

" 엄마, 그렇다고 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요? "

말씀드렸으나 듣지 못하였는지 계속해서 진열되어 있는 물건 구경에 여념이 없으셨다. 잠시 후 소란스러움과 북적거림, 판촉전의 치열한 마이크 소리는 계속 되었고 귀를 쩌렁쩌렁 울릴듯한 음악 소리도 이어졌다. 그런데 또다시,

" 시끄럽다구... 조용히 해..."

엄마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셨던 것이다. 난 더이상 그곳에 있을수 없어 성급하게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엄마는 밖에 나오자 이제야 살 것 같다며 푸른 하늘을 향해 박장대소 하시는 것이었다. 나의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되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공판장 세일이 시작되었다. 일년도 지난 일이지만 세일중이라는 문구를 볼때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나 슬며서 웃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