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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난 아줌마가 미국에 가서...[5]


BY ns05030414 2001-11-24

미국에 간 아줌마는 하루 종일 네살, 다섯 살, 아이 둘 하고 집안에 갇혀 살았다.
가끔 용기를 내어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보기도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라 한국처럼 엄마가 아이들 키우면서 한가하게 놀이터에 나와 놀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았다.
영어를 못하는 아줌마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웬지 섬뜩해서 싫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넓은 땅에 사람들이 적게 살아, 그야말로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어 보기는 좋았지만 불편할 때도 많았다.
제일 가까운 슈퍼도, 맥도널드도, 남편이 자동차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대중 교통 수단이 발달한 나라도 아니어서 이용할 버스도 없었다.
불평할 처지도 아니었다.
해외여행자유화 조치가 취해지기 전이었으니 미국 구경하는 게 쉽지 않던 시절이었고, 미국에서 살게 된 것만도 아줌마에겐 행운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가용 타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남편이 자가용 운전하는 것도 신기하고 남편이 잘 나 보였던 것이다.
남편이라고 아줌마 발 노릇만 해 주는 것은 아니니 아줌마는 발 없는 사람이 되어 집안에 갇혀 살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 티비를 보는 시간이 많았다.
열심히 봐도 알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없었다.
거기에 눈치도 둔한 편이었던 아줌마는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인 지, 영화를 하고 있는 것인 지 구분을 못할 때도 많았다.
영화 한 편을 하는데 중간 중간 무슨 광고를 그리 많이 하는 지...
티비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건성으로 켜 놓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건성으로 티비를 켜 놓고 심심해 하던 아줌마, 귀가 번쩍 뜨였다.
'코리어'라는 말이 들린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보다고 생각한 아줌마는 티비에 관심을 갖고 보았다.
외국에 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코리어'라는 말이 그렇게 반갑게 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치가 없는 아줌마라곤 하지만 그 것이 한국과 연관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이리저리 연관성을 맞춰봐도 티비의 화면과 한국은 연관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한 아줌마, 다시 티비에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였다.
티비는 하루종일 '코리어'라는 말을 수 없이 많이 아줌마 귀에 들려주었다.
그 때 마다 아줌마는 행여나, 혹시나 하고 티비를 들여다 보았지만 도무지 한국과는 상관 없는 것들만 방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에 지친 남편이 돌아왔다.
아줌마는 남편에게 한국과 아무 연관도 없는 방송을 하면서 '코리어'라는 말을 한다고 티비를 일러바쳤다.
도무지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이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둘 다 눈만 꿈벅꿈벅하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티비에서 '코리어'라는 말을 또 했다.
물론 한국과는 전혀 상관 없는 화면을 보여 주면서...
아줌마는 신이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여보, 지금 또 했잖아요! '코리어'라고..."
남편은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영어를 못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는 것 아니요?"
남편에게 꿀릴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영어 이야기만 나오면 주눅이 드는 아줌마, 눈만 멀뚱거리고 남편을 바라 보았다.
"지금 말한 것은 korea가 아니고 career란 말이오."
창피해서 쥐구멍을 찾고 싶은 아줌마, 그래도 그냥 당하고 싶지만은 않아서 한 마디 했다.
"어디 두고 보자, 십년 후에 당신이 지금 날 무시한 것 처럼 당신을 무시해 줄테니..."
두고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다지만 아줌마는 '놈'이 아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그렇잖아도 부끄러운 아줌마를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리 깔아뭉갤 수가 있단 말인가?
아줌마는 이 순간 자신이 영원히 여자이길 바랬다.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할 수 있는...

"영어, 내가 너를 한 번 정복해 보리라... 대한 민국의 잘 난 아줌마가 너를 한 번 정복해 보리라."

그러나 이 잘 난 아줌마가 영어로 인해 망신 당하는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