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휴스턴은 어느 곳 하나 울퉁불퉁한 곳이 없는 편편한 땅이었다.
주로 워싱턴에서 살았던 아줌마는 처음부터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휴스턴에 도착했다.
물론 나중에는 3월 말 부터 5월 초 까지 이어지는 들꽃들의 잔치에 넋을 잃고 서부 영화의 본 고장인 텍사스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줌마는 처음 미국에 갈 때와는 달라서 영어에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벌써 세 번 째 미국행이었던 것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 대화 쯤은 다는 못 알아 들어도 눈치까지 섞으면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제법 여러가지 미국 생활의 요령도 터득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은 있기 마련이었다.
미국은 아무래도 집들이 크기 때문에 가구들도 자연 필요한 것이 많았다.
한국에선 응접실 가구가 한 세트면 되었지만 리빙 룸과 훼밀리 룸이 분리된 미국에선 쇼파도 최소한 두 세트가 필요했다.
응접 세트를 사기로 마음 먹은 아줌마는 신문에 끼워져 오는 광고지에 관심을 갖고 살폈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드는 광고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물품 보관 창고에 맡겼다 찾아가지 않는 물건 중 가구 종류를 판다는 광고였다.
그런 물건 중에 싸고 쓸만한 물건이 제법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아줌마는 그 곳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남편이 쉬는 날 둘이서 그 곳을 가 보기로 하였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싸고 좋은 가구를 살 욕심에 그 곳을 찾아갔다.
워싱턴 부근과 달리 휴스턴은 웬지 산만하고 밋밋해서 가는 도중에 별 볼거리도 없었다.
매장을 둘러보고 아줌마는 실망했다.
광고와 달리 싸구려 물건들만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행여나 싶어 값도 물어보고, 광고에 나온 그런 물건들은 없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그런 물건들은 가끔 나올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물건들을 권하였다.
값도 비싸고 질도 떨어지는 물건들을...
아줌마는 속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인종적 편견을 싫어하는 아줌마지만 가게 안에 온통 아랍계로 보이는 사람들만 일하고 있는 것도 경계심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 쪽 사람들이 거짓말도 잘 하고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아줌마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끈질지게 달라붙어 물건을 소개하는 것도 싫었다.
다른 미국 가게에서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아랍 액센트가 강해서 영어가 서툰 아줌마는 알아 듣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 것 저 것 물어본 터라 매정하게 떨치지 못해 어물쩡 거리던 아줌마를 남편이 쿡쿡찌르며 가자고 하였다.
그 사람은 돌아서는 아줌마를 끝까지 따라 붙었다.
아줌마는 성가시기도 했지만 열심히 설명하는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줌마는 다음에 다시 들리겠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가게를 빠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아줌마를 끝까지 따라 붙었던 그 사람이 강한 아랍 액센트로 무슨 말인가를 했다.
아줌마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다년 간의 미국생활 경험으로 그저 의례적인 인사중의 하나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아줌마도 의례적인 인사를 하였다.
사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에게 길게 설명하도록 한 것이 미안해서 '땡큐!'를 잊지 않고 곁드려서...
사실 물건이 마음에 들지도 않으면서 그 설명을 듣고 있기가 고역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줌마는 동방예의지국의 예절 바른 아줌마로서 '땡큐!'에 인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가게에서 몇 발자국 멀어진 후 남편이 물었다.
"제일 마지막에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 지 알아?"
"아니? 그저 의례적인 인사를 했겠지. 그런데 왜?"
"욕 같았어, 너희 같은 병신들은 미국에 살 자격이 없다는 뜻의..."
"뭐라고? 그럼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거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땡큐'라고 했으니 얼마나 신나고 재미 있었겠어?"
"사실 나도 듣는 순간에는 멍했는데 지금에야 그 뜻이 이해가 되어서..."
남편이라고 별 수 있으리오, 그 또한 뒤 늦게 배운 영어에 한계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다시 되돌아가 따지는 것은 더욱 창피한 일이라 아줌마 속으로만 열내고 말았지만 그 날 이후로 굳게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 누구든 아줌마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할 때 결코 '땡큐'하지 않기로...
대신에 'You too!'하기로...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상대방에게 그대로 갚아주기 위해서...
그렇게 결심을 했어도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기분을 지워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잘 난 아줌마가 어쩌다가 이런 망신을 계속 당하고 살아야 하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