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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들..


BY hjnjh 2001-12-06

방한칸에서 세간살이도 없이 생활하던 한달정도 된 어느날.. 낯선 사람들이 집을 보러왔다며 기웃거렸다. 이사 들올때 이미 집을 내어놓았단 소리는 들은 상태였지만.. 이렇게 한마디 말도없이 새사람을 들인다는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뭔가 주인집에선 내게 섭섭한 것이 있었나보다. 이것 저것 배려를 많이 해준 넉넉한 주인집 아주머니였지만.. 이렇게 한순간 섭섭한 마음이 드는걸 보면 사람마음이 참 간사 하긴 한 모양이다. 그 길로..다른말없이 아이들 없는틈에..남편과 이미 익숙해진 집 찾아 나서기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가곡리 언덕위에 지어지고 있던 우리집은 은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철골구조물이었다가..다시 나무로..다시 하얗게.. 뒷산 일본잎갈나무를 배경으로 신기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스틸하우스가 없었기 때문에, 가까이 사는사람들에겐 그러한 건축상황은 처음 벌어지는 신기한 변화였던것 같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가는 길에서..그렇게 우리집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무작정 골목길로 들어선 곳에 나온 작은 빌라촌..거기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었는지..사람이 어떤 극한상황(?)에 들게되면 참 용감해지는 모양이다. 빌라앞에 있는 작은 슈퍼에 들어가서 무작정..혹시 집 나온것이 없냐구 물어봤다. 딱! 한달만 살면 된다고..짐도 없고..사람만 들어와서 딱 한달.. 정말 신기했던것은 슈퍼에 있던 두사람, 시누와 올케사이라는 무척이나 닮은 두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듯, 그집..하더니..이쪽 저쪽 몇군데 전화를 하고서는 떡! 하니 빌라 한집을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생면부지의 두사람..그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이세상에 그렇게 많다는것을 정말 온몸으로 실감했다. 보답도 제대로 못하고..후후. 그렇게 우리집 입주 한달을 앞두고 다시 살게된 운수2리의 한 빌라.. 사람이 정말 얼마나 풍요로울수 있는지 체험한 집이었다. 이사하는 날 공사장 야방아저씨 한분이 또 이사를 도와주시러 오셨다. 이사래봐야..티비 책상 이불 냉장고 그리고 지난 주인이 계속 써도 좋다고 허락받은 주방도구들..그리고 컴퓨터. 더군다나 그동안 동냥빨래에서 벗어나게 해준 세탁기!! 한달동안 컨테이너에서 잠자던 세탁기는 다시 우리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만세!! 이사때 마다..비가 내려서 이사가는 마음을 조금은 스산하게했던 날씨..그 날은 정말 날씨마저 좋았다. 이사할때마다 도와주곤 했던 야방아저씨는 `다행히 집이 있었네요.. 우리 사모님 고생 그만 하시게..'라는 말로 걸레질 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말이..얼마나 가슴에 와서 맺히는지..^^;; 시공 소장님도..조금만 참으시면..열흘만 더 참으시면..약속이 이루어 질꺼라 다짐을 했지만..난 그냥 그날은 참 행복했다. 사람이 인간적으로 산다는거 어쩌면 참 사치스런 말인지도 모르겠다. 마음껏 샤워 할수있고..세탁기 매일 돌려 아이들 옷 깨끗이 입히고.. 부족하지만..식기 갖추어..밥먹인다는 것.. 오히려 우리를 밀어내준..전 집 주인이..고맙게 까지 느껴졌다. 방한칸에서의 그..가난했던 마음..어느새..독채 빌라로 옮기면서.. 한껏 부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들! 방에서..여전히 구박을 받으면서..밤을 밝히고 있고 거실에선 남편이 혼자 아이들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티비를 본다. 그때서야 연결된 전화..이제서야 들오게 된..이곳. 이사가지 말고..그냥 여그서..살았으면 좋겠다..농담까지 여유있게 했다. 갑자기..청소공간이 넓어져서..한달동안 방한칸에 길들여진..걸레질이.. 21평 공간에서..헥헥 대었다. 그나저나..이사하면..청소..내 그거 책임 못진다..남편에게 공언했더니. 아이들고 자신이 청소를 분담하겠다고 했다. 보일러도 따뜻이 잘 돌아가고 날씨가 제법 겨울로 들어섰는데 이렇게 따뜻한 빌라에서 지내게 된것이 정말로 다행스러웠다. 화장실의 전등에 문제가 생겨 불을 켤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문제도 돼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를 추운겨울을 보내게하기 위해 누군가 준비해준 은혜인지.. 그런데.. 98년부터 남편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통신사의 인터넷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통에..더군다나 남들 다들 모뎀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을때 나는 아이에스디엔이라는 고속 인터넷망을 사용하고 있었다. 평촌살때 인터넷상을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녔다. 같은 도우미들도 내가 검색해 내는 정보의 양에 혀를 내두르곤 했었는데.. 이렇게 내가 버벅대고 있는 사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일(?) 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도우미는 그렇다 치고, 홈페이지..이 홈페이지가 어떤 홈페이지인가.. 97년..그야말로 뭔가에 미치길 좋아하는 남편이 몇달을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매달려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터넷이란 것이 채 일반에 보급되기도 전에,,인터넷의 위력을 감지한 남편은..그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길 원했다. 그렇게 만들어낸것이 "경진이의 인터넷 별장"이란 홈페이지였다. 그 당시만해도 어린이 사이트들이 전무했던 때라..남편은 그렇게 멋지고 훌륭한 정보들을 아이들을 위해 쓰고자 밤낮없이 매달려..정보를 모으고 또 모으고..아이들 사진을 스캔하고 딸아이 그림을 스캔하고..그렇게 만든것이 `경진이네 별장'이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게 되자 그 나머지 작업을 남편은 내게 위탁했었다. 그전..남편이 컴퓨터에 매달려.. 새벽 4시 이후엔 잠을 자지 않는 상황이 몇달인가 계속되는걸 보면서..난 컴퓨터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절대 난 컴퓨터 같은 건 손에도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 몇번이었던가.. 남편에게 잔뜩 심통을 부리며..내가 좋냐..컴퓨터가 좋냐.. 컴퓨터랑 살아라..살아..말도 안돼는 엄포를 몇번이나 놓았던가.. 그런내가..그 홈페이지를 위탁받아..정말 우습게도 열심히 매달렸었다. 일주일에 한번 업데이트 되는 자료들..금주의 추천사이트..남편은 정말 용의도 주도하게 초등학교 교과서를 사들이고..일년동안의 교육과정을 분석해 두었는데.. 난 그 일주일 단위로 분석된 교육과정에 맞게 학년별로 검색을 해서 적당한 사이트를 홈페이지에 등록해 주는작업을 했었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 검색하는 법만 간단히 배운 나의 컴퓨터 검색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었고. 급기야. 어린이 사이트로서 거의 효시라 할 수 있었던 `경진이네 별장'은 서서히 매스컴도 타게되고..방문객수가 하루에도 300명이 넘어서게 되는 사이트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통씩오는 메일에 일일이 답장해주는 별장지기 아줌마 노릇도 열심히 했었고. 그리고 ICC에서 주최하는 주부 인터넷 한마당에서의 대상수상에 99년 4월엔가 정보통신부 장관상까지 받았었다. 그런 홈페이지..나름대로 사회적 의무감 까지 갖게 했던 그 홈페이지를 제대로 관리 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업데이트가 몇주 누락되는 사이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한번도 메일 보내적은 없지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무슨일 있는건 아니냐고..또는 2년간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는데..제발 나쁜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메일들.. 그 사이 참 시간을 많이도 버렸단 생각을 했지만..뭔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줬던 그런 메일들이었다. 한데..지형적으로 열악한 이곳..광통신망이 좌악좌악 깔려들어가도..모뎀으로 버벅거려야 하는 상황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거기다 2000년 부터 불어대던 국가적 인터넷 바람..그리고 드디어 교육사이트에 돈을 쏟아 부어대는 기업들.. 나는 차츰 김이 새기(?) 시작했고..모뎀은 계속 나를 괴롭혔고 거기다. 얼떨결에 떠맡은 모통신사의 동호회 운영진직은 그런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더이상 세상에 줄것이 없었던 `경진이네 인터넷 별장'은 문을 닫았지만..지금 생각해도..참..그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한편으론 무척 미안한마음도 있고.. 사실 인터넷에 대한 자신감때문에 이렇게 시골로 내려올 용기를 가지게 되었던 것은 부인 할 수없었다. 어디서든 정보는 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생각밖으로 열악한 통신환경, 특히 산이 많은 이곳에선 전국이 광통신망이 깔려대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 열악하기만 하다. 사실..여러가지 문화적 혜택이 적은 농촌이나 소외된 지역에 더 이러한 통신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말이다. 백방으로 알아보곤 했지만 번번히..거기까진 못들어간단 통신사들의 말들을 들으며..여태껏..만 2년이 지난 오늘까지.. 꿋꿋하게 모뎀을 쓰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별빛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