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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삶이 '패배자의 삶'이라고?


BY eunjussam 2002-01-22

아줌마의 삶이 '패배자의 삶'이라고?


지난번에 쓴 이야기에 어떤 분이 '전업주부의 삶은 패배자의 삶'이라는 혹독한 비난을 써 놓으셨더군요. 어느 정도의 비판을 예감하고는 있었지만 이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무슨 자의식이 강해서거나 자기계발의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노래말처럼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엄마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기 전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친구 하나 없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요즘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말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는' 기억인지 아니면 어른들이 하도 이야기를 해주셔서 '경험한 것으로 알게 된' 기억인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 한 토막이 있습니다.

커다란 대문 앞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 앞으로 하얀 신작로가 마을 뒷산을 에둘러 돌아가고 이따금씩 뽀얀 먼지를 날리며 군용트럭이 지나갑니다. 아이가 벌떡 일어나 먼지 속에 사라지는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짐칸에 앉은 누군가가 손을 흔든 것도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 제 자리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그렇게 매일 그 자리에 앉아 엄마를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눈물이 찔끔찔끔 난 것도 같습니다.

그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외로웠던'기억을 붙들고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대학시절 처음 술을 배운 이후로 술만 먹으면 그 기억이 눈물을 짜내곤 해서 울보로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때 결심한 것이 '내 아이는 외롭지 않게 키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업주부가 된 지 3년이 되어갑니다. 두 돌이 되어가는 딸에게는 24시간 비상대기중이어야 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림질하는 일에 하루의 삼분의 일을 씁니다. '궁둥이 붙일 사이 없이' 움직여야 겨우 현상유지가 가능합니다. 딸아이는 쏟아놓고 부수는데 남다른 재주를 부리고 요즘은 새로이 가위질을 배워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싹둑 싹둑' 오리고 잘라놓아 금세 방안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니 도무지 바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전에 직업이란 '날마다 종사하고 있는 업무,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이 걸로 봐서 전업주부는 정말이지 손색없는 '직업'입니다. 그야말로 휴일도 없이 일년 삼백육십오 일 '종사하고 있는 업무'이며 나와 내 가족이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 잘 받는 가정부'라든가 '패배자의 삶'이란 비난을 듣는 것은 '성과 없는, 남들 다하는, 잘 해야 현상유지인' 일만 하기 때문이라거나 '직접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사회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자기계발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줌마'라는 사회적 집단을 종종 지탄의 대상으로 만드는 주범은 '집안 일의 폐쇄성'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그러니 전업주부의 삶을 패배자의 삶에서 건져올리는(?) 것이 당장의 취직에 있다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아줌마들이 스스로 사회적 연대와 자기계발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원할 때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보육 탁아시설, 다양한 시간제 일거리)이 구축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와 다르게 산다고 무턱대고 '대우 잘 받는 가정부'니 '패배자의 삶'이니 하며 비난해대지 않는 예의를 갖추기를 바랍니다.

2002/01/22 오전 3:53:36
ⓒ 2002 OhmyNews

이글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에서 퍼온글임을 밝힘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