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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친정부모님


BY 나의복숭 2002-04-01

친정을 다녀왔습니다.
늘 그리움과 아릿함이 공존하는 친정가는길은
언제나 즐겁고 신바람이 났었지요.
무겁게 가지고 가는 보따리는 주름진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반찬꺼리와 군것질로 가득찼었고
자랑스러이 보따리를 풀어놓을때의 내 기분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행복 바로 그 자체였답니다.

근데...
어느날부터 제 보따리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은 그렇습니다.
내일 당장 때꺼리가 없어도 부모님앞에선
잘먹고 잘산다는 호기를 부리고싶은거...
환경이 바뀌어 힘들게 살게 됐지만
부모님앞에서 내색하기 싫었습니다..
자존심이기보담은 8순 넘은 부모님 떠날길에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는게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부모님이 편찮으시다 연락받고
그래도 이것 저것 아버지 좋아하시는 간식꺼리를
준비 했습니다.
질은 옛날에 비해 형편없지만 그래도 보따리는
제법 부풀었지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제 보따리를 보고
옛날처럼 벌떡 일어나실줄 생각하면서...

기력이 쇠잔하신후부터 짐승도 다 처분하셔서
마당엔 전처럼 꿀꿀 거리는 돼지도 없었고
발길에 걷어차이는 개도 없었고
제 안생긴 얼굴보고 후닥닥 도망가는 토종닭도 없었습니다.
집이 너무나 조용하고 얼씨년스러워서 울고 싶었지요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신 바람에 아프단 내색조차
못하고 억지로 움직이시는 어머니.
딸이 왔어도 옛날처럼 반겨주시지도 못하는 아버지.
말없이 팔을 내미는 그 손은 뼈만 앙상하셨고
퀭한 눈은 얼마나 가슴을 아리게 하든지....

팔순이 넘어셨는지도 한참이 됐기에
다들 지금 돌아가셔도 호상이라고들 하지만
제게 있어선 절대 호상이 아닙니다.
전 착한 딸도 못되었고
언제나 부모님이 내 옆에 계시리라 생각하며
늘 효도는 천천히 해도 되리라 미루기만 했고
부모님한테 모든걸 언제나 받기만했습니다.
철이 들어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릴려 하니까
마음밖에 없었고 제가 너무 가난해져 있었습니다.
왜 풍요로웁고 효도 할수 있을때는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
제 가슴을 치고 싶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힘없이 누워계시는 방안에는
제 오라버니의 젊은 시절 찍은 사진이
물끄럼히 두분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신후 그리도 보고 싶어하신 아들.
그 아들의 젊은시절 사진을 언제나 제일 잘 보이는곳에
걸어놓고선 오가며 '내 아들'이라며 쳐다보든 우리 부모님.
그 아들을 좀 있으면 만날수 있단 생각에
밤 잠을 설칠때도 있단 소리를 듣고서
살아있는 딸은 어쩌라고...소리치며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헉헉 거리며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은 너무도 곱게 파란색으로 물드려있었고
대나무 사이사이로 엿보이는 아랫동네의 풍경은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근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울고 싶을때는 울어야 해.
주위를 둘러봐도 내 우는걸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때부터 꺼억 꺼억 소리내어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밉기 시작했고
늙그막에 날 고생시키는 내 남편도 밉기 시작했고
내 깊은 맘을 몰라주는 내 아들. 딸들도 밉고
나를 두고 갈려는 내 부모님도 밉고 모두 다 미웠습니다.
꺼억 꺼억 우는 울음은 드디어 큰 오열로 변했습니다.
자존심도 팽개 치고 싶었고 당연히 팽개쳤습니다.

나 고달퍼.
나 힘들어.
니들 다 너무해.
나 씩씩한척 하지만 사실은 무지 나약해.
누구에겐가 마구 고함지르며
막걸리가 있으면 꿀꺽꿀꺽 소리내어 마시고 싶었습니다.

잘난척 하는 큰딸이 미웠습니다.
옛날 우리가 자랄때의 장녀들은 부모가 힘들어하면
공순이 차순이 하면서 동생들 뒷바라지 해주고
부모 모셨는데 내 장녀는 뭐가 그리도 잘났는지
맨날 그넘의 공부 공부...이러고 있습니다.
공부만 하면 답니까?
석사 따고 박사 따면 뭐 합니까?
지들 인생은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부모가 힘들면 모든거 다 팽개치고 공장에 들어가
돈봉투 안겨주는 뒷집 영자가 더 이뻐보이고
더 성공한 아이같이 보입니다.
엉...엉......

부모님이 또 원망 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엄마 아부지
조금 더 살아주면 안돼?
나 인제 철 들었어.
종가집 맏며느리라고 언제나 죽은 조상이 우선였고
제사다 뭐다 해서 친정 엄마 아부지는 2순위였지만.
나 인제부터 살아있는 엄마 아부지 1순위 할꺼야.
나 잘살때까지 진짜로 조금만 기다려 줘
나 이렇게 사는거 보고 가면 엄마 아부지 저승가서도
내 걱정 하느라 잠도 못잘꺼잖아?
그러니 제발 나 다시 옛날처럼 사는거 보고
편안하게 눈감어줘.
내가 엄마 아부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나 나이만 먹었지
엄마 아부지 돌아가시면 한이 맺쳐서 못살아.
정말 못살아.

꺼이 꺼이~
큰소리로 울고 나니 속이 조금 시원해졌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소리내어 울어본적이 언제 였든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없었습니다.
힘들때도....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때도
그냥 숨 죽여서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지
지금처럼 큰소리로 울지는 않았습니다.
인생 참 덧 없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울 엄마 아부지 처럼 저렇게 누워서
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고 내 자식들 쳐다보며
떠날 준비를 하겠지요.

'너 어딜 그리 다녀 오니?'
냇가에 얼굴 씻고 들어오니 아주 쬐그만 할머니 한분이
조그만 소리로 묻습니다.
지금은 내 어머니지만
바로 미래의 내 모습입니다.
'응. 나물 뜯을까 싶어서....'
'힘드는데 뭣하러 뜯나? 있는데로 먹지. 얼른 들어오너라'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잡았습니다.
다시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올라 했습니다.
'엄마. 다들 미워서 욕하고 왔지'
'아이구 뭐가 밉냐? 눈감으면 그뿐인데...'
'엄마. 내 잘 사는거 봐야해...'
'그래...'
세상 만사가 제 맘데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굴에 로션 찍어바르고 머리 빗고...
나는 다시 평소의 내 얼굴로 돌아옵니다.
위선과 되도 안한 자존심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내 얼굴.
산에서 울든 내 얼굴이 훨씬 아름다웠을껀데...

아픈 부모님 뒤로하고
다시 내 생활 터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아무런 일도 없었듯이 일상사를 보내고 있지요.
산다는건 이런걸까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내힘으로는 어쩔수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