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좌우지간]안보를 걱정함
요즘 조선일보가 맛이 갔다. "2020 미래로 가자" 어쩌구 하면서 결정적으로 맛이 갔다. 사건의 단초는 이러하다. 최근 중앙일보에서 '예산 1% 대북 지원' 등 획기적인 제안으로 사회적 아젠다를 만들어내자, 조선일보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다. 듣자 하니 돈 싸들고 교수들 찾아 다니며 중앙일보에서 한 것과 비슷한 것 좀 만들어 내 달라고 조르고 다닌단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2020 미래로 가자"라는 시리즈.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부랴부랴 만들어낸 기획이지만 제법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모병제 도입의 필요성'이다. 대단한 발상이다. 진보진영에서도 감히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모병제' 아니던가.
조선일보가 똥줄이 타긴 타는 모양이다. 안보의 첨병 조선일보에서 '모병제'를 얘기하다니, 정말 인간은 일단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 보수주의자도 살아남으려면 진보적 요구를 내걸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앙일보의 예산 1% 대북지원 제안에 이어 진보진영은 이번에도 한 방 먹었다. 왜 우리는 진작 모병제를 얘기하지 못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의 생존 본능을 배워야 한다. 보라, 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진보적 요구까지도 과감하게 내거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가? 우리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반성해야 할 것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여, 벌써 잊었는가? 휴전선 북쪽에는 호시탐탐 적화를 노리는 붉은 공산도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들의 화력이 발전하는 수도서울의 중심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게다가 '군대를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 이것이 조선일보의 지론이 아니던가? 조선일보여, 이제와서 전 국민을 짐승으로 만들 작정인가? 다른 모든 이가 모병제를 얘기해도 조선일보만은 '징병제'를 고수해야 한다.
아무리 신문사의 생존이 급해도 제 한 몸 살기 위해 이렇게 안보를 내팽겨쳐도 된단 말인가? 믿었던 조선일보마저 급진주의 사상에 맛이 가버린 이 밤, 민주노동당은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휴우, 이제 조국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쪽팔리게 좌파가 지켜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