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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BY 책한권 2002-04-25


뒤뜰 안 정갈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장독대, 그리고 그 위에 줄지어 앉은 독개그릇들의 차림새나 그 언저리에서 풍기는 장내음만 가지고도 그 주부의 살림 솜씨나 그 집안 가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말하자면 장독대는 마치 뒤뜰 안에 자리잡은 그 집안 가도를 보이는 보임새 같은 것이기도 해서 예전부터 한국의 주부들은 이 장독치레를 자랑삼아 와다. 따라서 무의식중에 잘생긴 한국의 독개그릇들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이에 대한 심미안이 스스로 길러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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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창 정갈한 책상에 앉아 종이 소리를 부스럭이며 한나절 차향을 즐긴다든가, 거울 처럼 얼굴이 비치는 밀화빛 장판방 백통 화롯가에서 서리찬 밤에 바느질하는 아내의 얼굴을 즐긴다든가 하는 아늑하고도 따스한 온돌방의 서정은 한국적인 멋 중에서도 참맛이 아닌가한다. 이러한 온돌방의 존재는 단지 민족이 지녀온 서정의 아름다움으로서 뿐만 아니라. 벌써 우리들 개개인이 신체생리를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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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히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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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순우

1916년 4월 27일 개성 출생. 본명은 희순.
1935년 송도고등보통학교졸업.
1943년 개성부립박물관 입사.
1945년 서울 박물관으로 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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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16일 성북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유족으로눈 딸 수정 씨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