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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휴교에 반대하며 나는 꼭 학교에 올 이유가 있다.


BY elina882002 2002-05-16

해마다 이 날 전후로 너무도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의 이유로 스승의 날을 없애자. 옮기자. 또 선물을 해야하느냐 하는 지겹고도 반복적인 논의를 지켜보면서 나는 또 다른 생각도 해본다.
이제 교직 17년째.
소위 엄마들이 말하는 40초반의 부장교사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이다. 아마 학부모들은 내 프로필만 보고도 하루를 말하래도 다 못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을만한 위치이다.
어제도 우리 반 아이들은 (6학년) 새벽에 와서 장식도 하고 500원씩 내서 저희들 간식도 사고 준비를 했다.
이제 이 경력쯤 되면 귀찮아도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고 때로는 져줄 것, 기다려 주면 해결될일, 그리고 절대로 안되는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여유도 생긴다.
어제(스승의 날) 있었던 일만 말해보고자 한다.
약간은 소란하지만 작은 행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두시간은 즐겁게 공부하고 한시간은 스승의 날 의미와 하고 싶은 말도 나누고 마지막 한 시간은 교실 대청소도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스피커에서 두시에 선생님들은 귀가하셔도 좋다는 방송이 나왔지만 매년 별다른 약속도 없이 헤어진 아이들이지만 반드시 오는 아이들이 있기에 이 비속에 한 명이라도 헛걸음칠까봐 나는 언제나 기다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교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교에 있지 않고 집에서 쉬면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집에서 손님으로 맞이하란 말인가? 도대체 학교에서 못 만나는 스승의 날은 무슨 의미가 있나?
아이들이 삶에 힘들어도 언제든 약속도 없어도 이 날은 가면 선생님을 만날수 있다는 믿음을 깨버리고 싶지 않았다. 세시 삼십분쯤 집에서 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 지금 고2, 17명이 집에 와있다고 ..
아이들과 통화하니 내 핸드폰이 물에 젖어 고장나서 고칠동안 아들아이것 가지고 온데다 학교로 전화하니 보조원이 선생님들 모두 퇴근하셨다고 하니 이 놈들이 오는 도중에 내려서 다시 우리 집에 와서 기다릴 수 밖에..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발 들일 틈이 없고 올해도 아이들은 꽃 과 빵 그리고 내 아이들 과자도 사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좀 이르지만 인근에 식당에 갔다. 한창 공부에 시달리는지 작년보다 얼굴빛이 안 좋은 아이도 여럿 보였다.
6학년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중 서너 놈은 인문계를 못갔지만 작년에 선생님죄송해요하며 친구들과 찾아왔고 올해도 공부하느라 힘든 인문계 친구들에게 위로도 하며 자기는 어떤 전공을 위해 이런 준비도 한다며 제법 심지 깊은 말도 한다.
그래 얘들아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번 시험이 있고 그 때마다 새롭게 한 마디를 그어서 도전하면 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아이들과 이야기 한다.
인문계 공부의 힘든점은 잘하는 아이든 못하는 아이든 그 시절은 마찬가지다. 또 실업계의 진로와 애로를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도록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 주머니생각을 하며 고기를 한사코 안먹어도 된다지만 크는 아이들에게 뭐든 먹이고픈 마음이 든다. 실컷 수육도 먹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볼링장에 갔다. 게임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을 저 만치 날려보았다.
조금후 아이들과 그 아래에 있는 노래방에 데리고 갔다. 선생님이 보호자니 오늘은 실컷 불러야지 하면서 180. 175가 넘은 큰 놈들이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은 신세대의 노래를 열심히 부른다. 가만 저녀석은 음악시간마다 노래를 싫어하고 음정 박자도 정확하지 못했는 데 김경호의 어려운 노래를 너무 잘한다. 한 녀석은 애처로운 발라드를 너무나 감정있게 불러 눈물이 날뻔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크는 구나.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이 어느새 인생도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후에 내 아들 (중2)과 그 친구녀석들 둘이 도착했다. 형들과 누나들에게 인사를 하고 같이 어울렸다. 여덟시 쯤에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내년은 고 3 이니 쉬어라하니 온다고 한다. 그래 우린 언제나 만나면서 아이들과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이제 내 나이쯤 되면 고사리 손에서 내미는 손수건, 작은 선물 등등을 고맙게 받지만 그 선배들에게는 나는 이 날을 위해서 넉넉한 돈을 준비한다. 지금 맡고 있는 이 아이들도 지금은 어리지만 나중에 나에게 매년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 때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해 줄것이다. 내가 받은 선물의 수십배로 말이다.
어떤 날은 대학 간놈들 그리고 군에서 막 나온 놈들이 한 선생님에게 6학년을 보냈다는 그 공통점 하나로 같이 어울리기도 하며 아주 애 먹이는 놈일수록 후배들에게 잘하라고 한다. .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무면서 집에 돌아오니 골목에 다섯놈이 비를 흠뻑 맞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3년전 5학년을 맡았던 아이들. 아 작년에도 집에 왔다가 내가 없어 딸아이에게 유리로 된 장식품을 건네주고 갔던 그 개구쟁이들이 두 시간째 우산을 쓰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데리고 들어가니 발이 젖고 냄새가 난다며 안으로 들어오길 미안해 했다. 저런 다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과 같은 나이라 서로 악수를 하며 아이들과 중학교 생활도 이야기 하고 늦어서 탕수육과 피자를 시켜 주었다. 이 녀석들은 그 당시 너무 애를 먹여 사실은 꿈에도 나왔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이야기 하니 저희들은 그 때 선생님이 오해 하신 것도 있다며 한대 맞은 일을 들먹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 어머니께서 너무하셨네요,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기억이 잘 안나지만 오해한 것은 사과하고 아이들은 저희들 스스로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했다고 고백하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열시가 돠어 아이들을 보내고 청소를 하니 잠이 밀려왔다. 그래 내일 다시 시작하는 것야. 나는 17년동안 스승의 날 받은 편지를 투명 비닐에 같이 넣어둔다. 가끔 삼사년씩 혹은 팔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서로 연락하여 만나러 올때 그 편지를 보면 팔년이 어제일 같다. 그 아이들에게 그 때 대묻지 않은 순수한 시절에 선생님께 쓴 각오를 담은 편지를 보여주면 쑥스러워하면서 너무도 좋아한다. 그 당시에 아이들이 집에 왔을 대는 이층 전세집에 살고 시부모를 모셨던 터라 아주 옹색한 살림살이였다.
이제 세월은 흐르고 나도 자리가 잡혔다.
나는 스승의 날에 1년중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장 많은 지출을 한다. 아이들이 많을 때는 이십여명에게 밥을 먹이면 때로를 수십만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기쁨인것을 미안해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부자라고...너희들이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근사하게 선생님에게 대접하라고 한다.
너무도 가난한 시절에 공부만이 희망이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고 열심히 살았고 그 댓가로 나는 이제 아주 넉넉하다. 지금도 내 반 아이들에게 말한다. 기어들어가는 집에서 살았고 여름에는 온 몸이 흠뻑 젖는 스레트 집에서 공부했지만 교사가 되어 사랑하는 제자들을 이렇게 많이 두고 또 월급도 열심히 저축하여 이제는 넓은 집에 아이들도 건강하고 내 남편도 어려운 시절을 서로 노력하여 지점장이 되어 아주 윤택하다. 부모님이 낳아주신것만해도 눈물나게 고맙고 일할 수 잇는 직장도 너무 감사하고 나를 선생님이라 믿고 따라주는 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같이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작은 선물하나지만 또는 편지하나지만 그 속에 든 마음을 생각하려 애를 쓴다. 아이들이 정성껏 주는 것은 대부분 반이 없는 선생님, 행정실 직원, 그리고 보조원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교실에 두기도 한다. 어제도 우리 반은 미숫가루 간것, 사진 넣는 장식품, 그리고 목욕용품등 사실 작은 1-2만원대다. 잘사는 동네는 과한 선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기 초에 자주 어머니, 아버지들과 대화하여 이 동네 어머니들은 과한 것은 하지 않고 또 할 여력이 없다. 서로 부담이 안 가는 정도다. 가끔씩 6학년이라도 매일 6교시 수업을 하다보면 사탕 하나 하드 하나가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 이 나이의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는 6학년이라 제일 힘들지만 속은 어린애다. 나는 자주 야무진 여학생들에게 삼사만원을 주면서 사탕과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한다. 이놈들은 선생님돈을 절약하려고 제법 깎아서 사오고 많이 못 나누어주게 하려고 눈을 번뜩이며 감시도 한다.
애들아. 너희들이 있어 내가 있는 걸...
내 작은 딸 아이도 6학년이다.

아이는 전교 회장에 입후보하여 부회장이 되었고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자리가 그 자리라고 생각하며 많이 성장하였다.
딸 아이와 선생님은 딸 아이 말로 눈만 보면 선생님 마음을 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시고 오면 딸 아이는 녹차를 타서 얼른 정수기의 더운 물을 붓고 갖다드린다고 한다.
그 소리도 얼마전 우연히 알았다. 아이는 그냥 하고 싶다고 한다. 스승의 날도 앞두고 또 여름방학에 가족들과 중국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해서 남편 셔츠를 사러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마음으로 색상이 좋은 셔츠를 두 벌을 사서 남편에게 주고 선생님께 보냈다. 딸 아이가 나중에 보고 점잖은 제 선생님에게 태진아 셔츠를 드렸다고 성화다. 우리 선생님은 더 고상하신 색깔을 입으셔야 한다며 눈도 흘긴다. 딸은 정성껏 편지를 쓰고 며칠전부터 색종이 접기와 수채화를 혼합하여 그림을 그려 작은 액자를 만들어 선생님께 드렸다. 나는 내 후배이지만 반 아이 모두에게 사랑을 골고루 주시는 선생님께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 반 어머니들의 작은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은 것라고 나는 믿는 다. 어버이날 많은 주부들이 선물을 해야하나 넘어가나로 많은 말을 하지만 우리 집 네 며느리들은 모두 각자 정성껏 한다. 누가 무엇을 했느냐는 묻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사는 형편이 다르고 마음이 서로 다른데 왜 꼭 맞추어야하는 가,?
어려운 자식과 잘 사는 자식 차별하는 부모는 없다. 나도 어버이날 내게 선물한 애틋한 딸 아이나 포옹으로 때우는 듬직한 아들놈이나 다 똑같다. 내가 이러니 너도 이래라 하기보다는 내 마음은 이렇게 너는 이렇게 할 수도 있다. 하는 마음도 가져보고 물론 그 근저에 아이를 대상으로 흉한 모습을 보이시는 선생님은 단연코 반성하고 또 과하게 선물하고 내가 이랬으니 내 아이는 다른 대접을 바라는 어머니의 이기심은 서로 없어져야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냥 두서 없이 내 마음을 적어보았고 그 전에 언젠가 이 코너에서 누가 자신이 이 땅의 선생님이라면 아주 부끄러워할것이라는 너무 억지스런 주장에 아주 노여웠고 말을 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임이 자랑스럽고 즐겁다.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것이고 내일도 즐겁게 출근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