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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탐색기 (펌)


BY 그렘린 2002-05-21




“만약에, 만약에 말이에요. 앞으로 우리가 평생 대화와 섹스 둘 중에 하나밖에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언젠가 남편에게 이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면 대답이 쉽게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섹스와 대화. 달리 표현하면 몸을 섞는 일과 마음을 섞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의 성생활을 조사한 결과를 보니, 30대 부부의 한 달 성관계 횟수가 평균 열다섯 번이 넘는다고 나와 있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우리는 ‘미국 사람 따라가려면’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어떨까? 확신하건대, 우리의 대화 시간은 어느 조사 결과보다도 월등히 앞설 거라고 자신한다. 평소에도 둘이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지만, 미국에서는 각자 학교에 가는 시간 외에는 ‘지겹도록’ 붙어 있었으니 하루 종일 수다 떠는 일이 일상사였다. 그때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서 서로 바빠지면 허전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간지러운 걱정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대화를 많이 하며 지낸다. 둘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과 방송인이 함께 사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리 천생연분에 찰떡궁합이라 해도 2, 30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남녀가 함께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에 당황하는 일이 수없이 많은 법이다. ‘부부학’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비결로 ‘대화’를 꼽는 것도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겨우 두어 해 경험한 것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나보다 고작 열흘 정도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이다. 둘 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남편이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사회학과 82학번, 내가 영문학과 83학번이었으니, 공통 분모가 꽤 많은 축에 드는 부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우리는 세상을 보는 방법이나 살아가는 취향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적이 많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아 혹시 이런 것들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장애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레이스를 뜨는 여자〉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미장원에서 보조 미용사로 일하는 여자와 소르본 대학에 다니는 남자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같이 생활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그 영화의 어느 한 장면. 남편의 대학 동기들이 집에 놀러와 헤겔을 논하고 돌아간 날 밤, 여자가 남자에게 주저주저하면서 변증법이 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안쓰러움이란. 둘은 분명히 아름다운 사랑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함께 사는 생활이 완성되지 않고, 결국 그 여자의 삶은 불행해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연애 시절, 김민석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 영화는 늘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연애가 아닌 결혼의 단계에서는 사랑만으로는 완성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 두 사람이 지나치게 다른 환경에 있었던 것도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것. 〈레이스를 뜨는 여자〉는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같은 시시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니 ‘변증법적 통일’이니 하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남편은 그저 서울대공원으로, 경춘국도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니 나 혼자 지레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연애가 한창 무르익던 1992년 겨울, 나는 남편에게 스키를 타러 가자는 말을 꺼내면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일부 부유층의 레포츠를 내가 어떻게…… 하는 반응을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염려와는 달리 그는 흔쾌히 친구의 분홍색 스키복을 빌려 입고 나왔다.

신혼여행을 백두산으로 가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 역시 ‘운동권은 다르구나’ 하고 움츠러들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간 경주에서 그는 마치 디스코텍에서 ‘죽치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처럼 세련되고 날렵하게 춤을 춰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뿐인가? 수감시절 옆방의 제비족 출신한테 배웠다는 지루박까지 멋들어지게 추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옛날 기억을 짚어 나가다 보니, 늘 내가 먼저 마음의 벽을 치고 그를 대했던 것 같다. ‘비운동권’인 내 쪽이 ‘운동권은 이러이러하다’ 하는 식으로 더 ‘의식화’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둘 다 바쁜 탓에 새벽에 데이트를 하던 시절. 나는 그이의 기상 시간이 늘 새벽 다섯 시인 줄 알았고,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이라고 내심 존경스러워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기 전의 남편을 보면 이처럼 잠 많고 또 천하에 바쁜 일이 없는 무사 태평한 사람이 어떻게 날마다 새벽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자기 말로는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듯 잠을 몰아서 자는 스타일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기회만 있으면 골아 떨어지고, 자동차에서는 물론이고 비행기에서도 자느라고 식사를 거르는 걸 보면 그 비싼 비행기 삯이 아까울 정도이다.

남편에게 많은 것은 잠뿐이 아니다. 남편은 겁도 무지무지하게 많다. 뉴욕에서 살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살던 허름한 아파트에 쥐가 출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우산대를 손에 쥐고는 한 주먹밖에 안 되는 쥐한테 ‘어 어, 이놈이, 이놈이……’ 하면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시위대 맨 앞줄에 섰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학생 운동 시절, 특히 교도소에 있을 때, 정말로 ‘하루 종일’ 나라 걱정만 했고 그래서 참 행복했단다. 걱정거리라야 어떻게 하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월급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을까 따위가 고작인 나는 그의 그런 생활이 상상조차 안 간다. 그런데 이제는 그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이사이에 처자식 먹여 살리는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생활인이 되어 가는 남편이 ‘안쓰럽다’는 느낌 반, ‘이제 철(?)이 드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반이다. 그래도 나라 걱정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또 그것을 직업으로 갖게 됐으니 그를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세상 만들어 보겠다고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고 지금도 그 희망으로 일하는 사람을,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이 평생의 동반자로 택했다. 결혼은 두 사람의 이상이 맞아야 한다던 데 어떻게 우리가 같이 살 수 있게 됐을까? 그저 제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 하지 않고 살다 보면 ‘민주화’하는 데 일조하리란 것이 운동에 대한 나의 아전인수격 해석이었다. 나의 그런 안전제일주의와 언젠가 세상은 좋아질 거라는 그의 한없는 낙관주의가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아닌지.


학교 정문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사람과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학교 뒷문으로 하교를 하던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두 사람은 거리감을 느끼는 일 없이 지내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겉포장만 다르지 내용물은 같다는 걸 자주 발견하게 된다. 설사 차이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이질감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서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 서 늘 새록새록 상대의 세계를 알아 가는 재미도 느끼면서.

참, ‘섹스와 대화 중 평생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남편의 대답은 ‘대화’였다.


김자영이 쓴 사랑이야기 (www.goodseoul.or.kr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