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468

그래도 사는건.....재미있어라........


BY 나의복숭 2002-06-29

내 단골전철인 1호선이 마악 도착한거 같아서
헉헉거리며 뛰어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스르르 닫치는문.
애구 100 미터 달리기를 25초에 돌파하는 실력
어디든 표시가 나구먼....
한대 놓치면 1호선은 13분을 기다려야 하기에
성질나서 닫치는문을 탁 쳤드니 어라~
우짠일로 다시 문이 스르르 열린다.
놓칠 이도희가 아니지.
폴짝 뛰어들어갔다.
우하하....13분 벌었구먼.
무기같은 내얼굴이 씩씩거리며 치니까 전철이 놀라서
열어줬나보다. ㅎㅎㅎ
순식간에 폴짝 뛰어들어오는 내꼴이 우스운지
실실 웃는 사람도 있다만 웃는거사 본인자유지.
시간이 돈이라는데 13분 벌은게 어디람....

문옆이 경로석인데 자리가 비어있다.
원래 경로석은 앉았다하믄 나하고 너무 잘 어울릴거같아
의식적으로도 잘 안앉는데.... ㅎㅎㅎ
나보다 젊은 아줌마 한사람이 앉아있어서 나도 슬며시
엉덩이를 걸쳤다.
살짝 옆에 아줌마를 돌아봤다.
40대 중반정도의 나이에 잘묵고 잘사는 표시가
슬슬 흐르는 옷차림이랑
손에는 삐까뻔쩍한 크다란 반지알이 유난히
눈에 확~ 들어온다.
천박스럽지않고 단아한 모습이 호감가는 타잎이다.
게다가 얼굴까지 이쁘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한정거장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내리고 타고...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거 같아 슬몃 미소가
머금어진다.
내가 사는 의정부까지 갈려면 1시간이나 걸리기에
가방속에서 시집을 한권 꺼내들었다.
남보기에 좀 그럴듯해 보일려고 시집을 샀냐고?
하이구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며칠전 아는 시인 출판회를 가서 선물 받은거다.
난 사실 좀 무식해서 시속에 내포되어있는 오묘한 뜻을 완전히
이해를 못한다.
걍 사랑한다......뭐 이런투의 야시꼬리한 시는
엄청 좋아하지만....ㅎㅎㅎ
그런 이유로 시는 별로 잘 안읽지만 저자한테 사인받은 책이니
일단 이해를 하든 못하든 국어책 읽듯이 한번은
읽어줘야 예의일거 같아서 펼쳐들었지.

내가 시집을 꺼내니 내옆의 부티나고 고상해뵈이는
아줌마 역시 비싸보이는 핸드빽에서 기다렸다는듯 책을 꺼낸다.
그려...독서란 좋은거여...
경로석에서 친구삼아 책 읽는것도 나쁠거 없겠다.

근데...옴마야.
그 아줌마가 꺼내든책.
허걱~
바로 바로 내가 쓴 악처일기가 아닌가?
럴수 럴수 이럴수가...
표지가 좀 촌스러워서
색깔만 봐도 한눈에 처억 알수있는책이라 그걸보고
감동안했다믄 거짓말일꺼다..
진짜 엄청 감동 먹어버려서 얼굴의 표정관리가 안될정도다.하하.
글치만 첨보는 아줌마에게 그거 내가 쓴 책이다 말할수는 없고
그냥 눈은 내가 꺼낸 시집을 봐도 맘은 콩밭에 있어서
옆눈으로 아줌마가 든 책을 핼끔거렸다.

조금씩 읽는가보다.
중간쯤에서 펼쳐든 책을 읽어내려가든 아줌마입에
슬며시 찾아든 웃음.
나도 그녀가 보는 책장을 넘겨봤다.
아이구~
울서방 딥따 씹는 구절이다.
고개숙이는 아줌마.
킥킥 거리며 웃겠지 뭐. 안봐도 비디오다.
입이 근질거려죽겠다.

'악처부부일기네요. 재밋나요?'
결국 참지 못하고 아는척을 했다.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내가 혹여 저자란거 발설할지도 모르니
일단은 점잖게 말해야지....
'네. 엄청 재밋어요. 웃겨요.'
내 책이나 글은 오나 가나 웃긴다 소리밖에 못 듣나보다.
그래도 웃기기나 말았거나 글써서 책낸기 어디람?
그거 내가 쓴 책이라 말해주고 싶은 맘이 꿀떡같구만
참자 참어....

'혹시 책쓴 저자 알고 샀어요?'
빙빙 돌려서 물어봐야지...
'아 이분요 나의복숭이라고...인터넷에서 유명한 분예요'
엥? 내 아이디까지도 알고....유명하다고?...우히히 기분 땡이다.
'그렇군요. 저도 쬐끔 아는데...'
'아 그래요? 댁도 인터넷 하세요?'
하이구 내 꼬라지가 인터넷도 못하게 보이나보다.
이래서 어디 나올땐 동동구리모도 좀 찍어바르고
때때옷도 입어야 하는구나.
그래도 기죽을 내가 아니지...
'네 많이 해요. 재밋잖아요'
아줌마 의외인듯 날 쳐다보드니 웃는다.
하얀 잇빨이 가지런한게 이쁘긴한데
치~ 이쁘다소리 해주기 싫구먼...하는거 봐가며 이쁘다 해줘야지.ㅎㅎㅎ

'나의복숭 아줌마가 유명해요?'
이 나의 치졸함 함 보시라!
'아유 인터넷 하신다면서 이분 몰라요?
사방 팔방 안다니는데 없는데....'
애구 우째 내보다 더 내를 잘 알구먼.
근데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묘하게 헷갈린다.
'알긴 아는데...그리 유명한줄은 몰랐네요. 댁은 이분 잘 아세요?'
'그럼요. 잘 아는 언닌데요...'
어라...날 잘안다고?
아무리 봐도 난 모르는 첨보는 아줌만데...
얘길 좀 더 하고 마지막엔 나를 밝키고 사인이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책에 눈길을 주드니 갑자기
내릴역이 되었는지 잘가란 인사도 없이 후닥닥 내려버린다.
순간적이고 눈깜짝할 사이도없이 문이 닫치고...
창문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어줬다.
메롱~ 이닷.

기분좋은날이다. 하하
요런거 쓰면 지자랑한다고 눈쌀 찌프릴라나 몰겠다.
그래도 괜찮다. 뭐.
벌볼일없는 내가 책도 내고 유명하단 소리까지 듣는데
그 정도사 참아야지.
내가 언제 우아하고 고상한 아줌마였나 뭐.
머리 든거 없어서 그렇다해도 할말없다.
실제 머리가 텅 비어있으니까.
맨날 요렇게 생각하며 천하태평 소리만 하고 낄낄거리니
살이 이리 찌는가보다.
그래도 사는건....재미있어라......


피에수: 앗 나의 실수방님들.
건강하게 잘 계시죠?
늘 저의 글 열심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먼센스 7월호에 제가 나왔거든요.
우습게도 저의 소개를 성칼럼니스터로 해놓았드군요.ㅎㅎㅎ
혹여 우체국이나 은행같은데 가셔서 우먼센스 7월호가 있으면
함 봐주셔요.
얼굴이 무기인 제 사진이 3장이나 나왔어요
피도 안되고 살도 안되는 제 수다랑 함께요.
아컴에 글쓴다 소리도 했거든요.
그럼 늘 건강하시고 즐겁게 사셔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나의복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