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매직으로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아래 반듯하고 동그란 글씨로 (내 생일)이라고 일주일전에 써놓았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인데 아침밥상에서도 아무말없이 출근한 남편.
하긴 무얼 바라겠는가. 오늘 하루쯤 술 안마시고 들어오길 바랄뿐이지.
남편 퇴근시간에 맞추어 수놓인 하얀 식탁보로 바꾸어 덮었다.
그리고 아파트 뒷산에 올라 개망초를 많이 꺾었다.
무엇으로 꺾었느냐하며는 멋도 없게..가위로..ㅡ.ㅡ;
슈퍼에 가서 초코파이 한통을 샀다. 그리고 포도주 한병도 ..
접시에 초코파이를 케익처럼 쌓아 올리고 가운데 양초를 세우고 뒷산에서 꺾은 개망초를 빈병에 꽂아 놓았다.
등에 업힌 아이가 꽃병에 손을 뻗히며 잡으로 한다.
"안돼. 오늘 엄마 생일이야. 아빠오면 함께 우리 축하해..하자..
음..그럼 한송이만 줄까?" 아가에게 꽃가지 하나 빼어주고 베란다에 서서 남편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내생일인지 알기나 하는줄 몰라.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저렇게 크게 써놓은 글씨를 못봤을리가 있으려고..혹 선물이라도..키키.)
남편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 덜떨어진 여자는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착한 아기는 마침 잠자고 있었고 초에 불을 달리고 방과 거실에 스위치를 모두 내리고 현관문은 따놓고 오디오를 틀어놓고 작은방에 숨어있었다.
이쯤되면 남편이 좋아하겠지. 들어서다가 "아하.. 오늘이 우리 마누라 생일이였구나."하겠지..
숨죽여 작은방에 있자니 남편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스위치가 올려져 거실이 환해지며 거칠은 욕설이 들렸다.
가슴이 벌컥 내려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와 "지금 왔어? 놀랐지? 히히. 오늘이 내 생일이야. 그래서 자기하고 함께 축하하려고.."웃어보이느라 애를 썼지만 자꾸만 입술끝이 딸려 올라간다.
"생일? 생일은 무슨 얼어죽을.. 너 그러다가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게 환장했자너."하고 초코파이를 웅켜들더니 바닥에 팽개친다.
"자기 오는거 보고 촛불 달린거야. 화내지마."
"그래서 네가 지금 잘했다는거야?" 하고는 들고 있던 양복을 바닥에 집어던진다.
잠들었던 아기가 큰소리에 놀라 깨어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고개를 돌려 아기를 째려본다.
행여 저 못된성질도 아기에게 해를 입힐까 보아 얼른 들쳐 업고 식탁위에 올려진 포도주와 초코파이를 치우고 화병을 치우면서 망촛대에게 미안했다.
괜히 잘라왔지. 그냥 들꽃으로 잘 있는걸. 오가는사람 보게나 할껄..
휴지통에 집어넣는데 화가 나고 아득한 절망에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또한번 저런짓 했다가는 그땐 가만 안둬!"한다.
나는 "...........응"했다.
대답을 안했다가는 무슨변을 당할지 몰라서..
그때 내 나이가 스물 아홉살이였다.
결혼해서 세번째 맞는 생일이였는데 후로 지금 내나이 마흔두살이 되도록 생일은 언급을 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몇번의 노력은 해보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마음다치는 일만 주어져 행여 남편이 알까 싶어 아이들이 "엄마 생일이지?'하면 쉬~쉬~ 하기 까지했다.
올해 내 생일에 처음으로 남편이 전화를 했다.
"당신 생일이지? 내 꽃 보내려고 하는데 집에 있어.."했는데
"생일? 내게 생일이 있었나. 꽃은 사양하겠는데... 축하해준다면 마음은 받아둘께."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외식을 하자 했다.
"집에서 먹어.. 맛있는것 많이 했어. 술이나 한병 사가지고 와.."하는 내말에
남편은 "술? 술은 무슨 백해 무익한걸.."하고 식탁에 앉아 밥 두그릇을 비웠다.
백해무익한 술을 먹고 .........술을 먹고.....
술을 먹고..집에 들어와 지난 세월 행패 부린 생각을 하면.....
참으로..참으로....휴우..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