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가진 전직부부교사가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얘기였다.
잘나건 못나건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하고, 국가가 같이 노력하는 모습. 일주일에 두번 간병인을 보내주고, 개인의 장애를 개인의 차별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으로 인정하고 함께 해주는 따뜻한 나라.
자식을 위해서 모든것을 감수하고 인정하고 최선점을 찾으려는 그들의 이야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이야기.
장애인이지만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교육, 훈련시키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식이 있는 그들의 교육방식.
우리 큰놈은 어릴때부터 약하고 모든 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늦었고 적응이 조금 힘들고 공부도 많이 못한다.
이런 아들에 대해서 어떤 때는 연민을, 때론 보이지않는 신에게 원망을 보내고 화를 분출하기도, 폭팔하기도 했었다.하지만 한국의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일에 너무 바쁘고 상위권학생들에 대한 배려땜에 조금은 뒤쳐진 아이를 돌볼겨를이 없다.
어쩌다 학교를 가도 공부잘하는 학생들 엄마들로 주눅이 들곤 했다.
우리애 초등학교때 얘기다.
학부모 참관 수업때 가보니 반 전체가 단소연주를 하는데 우리애만,
단소를 부는 척하는 것이다.
나중에 물어보니, 선생님이 너땜에 자꾸 틀리니 불지 말랐단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만약 부족했다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서 연주를 하게 했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 까?
우리에는 장애아도 아니고 남보다 사회성이 좀 약하고, 공부를 조금
못 할 뿐인데 말이다.
선생께 항의하고 싶었지만, 못난 자식둔 죄라 생각하고 덮어버렸던 나자신이 생각났고, 내 아이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을 버리고 우리애가 사회에 적응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립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도 아픈 사연을 갖은 사람을 같이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도 우리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찾아 다른나라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