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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BY 로리 2002-09-20

한가위
      가위 칼럼/ 두가 랬음 좋겠습니다◈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 길을 걸어 열 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30여 년 전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추석'이라는 시다. 이젠 뇌세포의 기억장치까지 마모된 불혹을 훌쩍 넘어선 고갯길에서 되돌아보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는 다만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주마등으로 스쳐갈 뿐이다. 가슴속을 헤집는 서럽도록 절절한 이 그리움과 노스텔지어는 분명 모태로의 회귀본능일 게다. 실개천 휘돌아나가는 황톳길에 아슴한 기적이 울고, 문풍지를 울리는 대 바람 소리, 그리고 또 고향과 어머니. 추석빔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대추와 밤밖에 달리 없는 산골 마을, 그 대추와 밤을 보자기에 싸 머리에 이고 멀고 먼 길을 걸어 닷새만에 돌아오는 새벽 장을 보러 가려는 어머니의 치마끈을 붙들고 철없는 막내딸 이쁜이는 단맛이 울어나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어댄다. '송편 같은 반달이 사립문 위에 돋고,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가는' 추석전야의 고향풍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다. 두 손에 잡힐 만큼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머니보다 나였다. 아침이면 불끈 쥔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며 '이제 몇 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홉 밤' '여덟 밤'을 앵무새처럼 속삭여주곤 했다. 마침내 마지막 손가락이 요술처럼 펼쳐질 고대하던 그 날, 추석 전야에는 분명 먼 곳에 사시는 작은아버지랑 삼촌이 울긋불긋 예쁘게 포장된 능금 한 바구니와 명절날이나 맛볼 수 있는 돼지고기 몇 근 끊어 양손에 쥐고 실려온 기적소리와 함께 힘차게 고갯길을 넘고있을 것이었다. 어쩌다 마중을 나가 선물보따리를 받아들고 동구 밖을 들어서면 아이들은 때 절은 옷소매로 콧물을 훔치며 개선장군과도 같은 의기양양한 내 모습 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떼지 않았다. 차례를 마친 후의 성묘 길은 넘치는 포만감 그 자체였다. 잘 차려입은 추석빔에 밤이나 대추, 곶감으로 배가 부른 주머니를 몇 번씩 확인하며 색동풍선에 뿔 나팔을 들고 황금물결 출렁이는 벌판을 지나 산을 오를 때는 세상 모두가 내 것이었다. 높고 푸른 하늘이랑, 풍요로움이 가득한 벌판, 아니 모든 것들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듯 신비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던 한가위가, 가진 것 없이도 자꾸만 배가 부르던 그런 한가위가 목전에 다가왔다. '어머님,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몸부림과 절규가 현수막에 매달려 바람으로 윙윙거리던 몇 년 전 이맘때의 우울한 거리풍경이 정물로 되살아나는 그런 시간이다. 그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마당에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의 재앙으로 시련과 좌절의 아픔 속에서 한숨 짓는 민초들의 근심어린 순박한 모습이 또 필자를 서럽게 한다. 그런데 또 추석이란다. 명절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분명 개인의 자유요 가치판단에 달려있다. 허나 그 자유라는 이름과 자의적 판단이 방임이나 방종으로 변절해서는 안 된다. 콘도의 차례 상이나 명절날 나들이는 이쯤 해서 접었음 싶다. 웃고 있는 화려한 내 모습 뒤엔 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함께 하고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아픔을 같이 나누는 마음, 아니 보름달 같은 밝은 웃음 하나면 더불어 사는 우리의 미래는 희망과 풍요로움으로 넘치리라. 이번 한가위만큼은 서서 가는 귀향열차라도 몸을 맡기자. 상처 난 고향의 흙들을 어루만지며 마주치는 얼굴마다 눈인사라도 보내자. 그래서 하 많은 날을 근심으로 지새운 깊게 패인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위로 환하고 둥근 대 보름달이 뜰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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