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있어서 남편과 떨어져 산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남편은 무관심한 남자...떨어져 있으니 전화 하루에 한통만이라도 꼭 해달라고 해도 남편은 그걸 잘 안지킨다.우린 결혼 한지 아직 1년도 안 되었는데...그렇다고 남편이 딴짓을 하는건 아니다..(물론 안 보니 모르겠지만)
선천적으로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보수적이고 고집도 세다.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다.결혼하고 1년가까이 그에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건 항상 냉담한 표정뿐이었다.그래서 난 섭섭하다며 매일 울고 보채고 그랬다.그러면 남편이 좀 알아줄려나 싶어서..그러나 얼마전 크게 싸움을 하고 난뒤 그는 나에게 말했다."정말 너에게 질렸어"
자다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나는 정말 정성껏 그에게 잘 해주었다.그리고 나에게도 잘 해 달라고 요구했다...하지만 문제는 그것이었다.내가 해준 만큼 그가 해주길 바랬던것...그는 그게 늘 부담스러웠던것이다.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그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나보다...그래서 이젠 그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아주려고 한다.그러면 그는 비로소 편안해 하겠지...그는 절대로 고쳐질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포기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 가을 저녁...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금...나는 너무 슬프다.
결혼전 우리 친정은 정말 시끄러웠다.부모님이 이틀이 멀다 하고 싸우셨기 때문이다.(절대 과장아님) 아빠는 무능력하셨고 엄마는 능력있고 유별났다.자식들이 전부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컸는데도 부모님들의 싸움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기만 했다.지치지도 않나보지..그러던 삼년전 어느날 아빠는 새벽에 술을 마시고 집에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자리에서 돌아가셨다.그리고 엄마는 그 보상금을 타서 원룸형 임대주택을 샀다(재태크용) 늘 가슴에 한이 맺혀있는 우리 엄마...아직도 아빠욕을 하신다..아빠가 그렇게 돌아가신건 안중에도 없다..아직도 아빠에 대해선 원망의 독설만 한다...너희 아빠때문에 내 인생이렇게 됐다고...아무리 울 엄마지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어쩜 사람이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을까...
난 생각했다..부부란 뭘까...? 저런 모습이 부부의 모습인가...? 난 결혼이 두려웠다...아무 남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자상하고 좋은 남자 만나서 오손 도손 잘 살고 싶었다..그리고 나의 자식들에게도 포근하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어쩌면 20대의 내 인생의 목표는 오직 그거 하나였던거 같다...하지만 나에게 그런 자신감을 주는 남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내가 내심 결혼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보였겠지..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남편은 사귈때도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이 없는 남자였다...하지만 근본 심성이 반듯한 남자였다.그리고 착해보였다...그래서 나는 생각했다..."지금 당장 나에게 입발린 소리 하면서 잘 해 주는 남자보다 이렇게 심지 굳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게 더 나은 거야...아직 이 남자가 여자를 잘 몰라서 그렇지 서로 대화로 풀어나가면 될거야" 눈에 뭐가 씌였는지
난 이렇게 생각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하지만 그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우린 결혼해서 거의 매일 싸우면서 살았다..남편은 타협을 모르는 아주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남자였다.난 집들이도 한번도 안 해다.남편이 데리고 올 친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직장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데려 오지 않았다.필요성 못느낀다면서..남편은 정말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내 사랑의 욕구에 부응할리가 없었다...단지 잠자리만 원할뿐...그 외에는 나에게 눈길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은 그랬다.
나는 그와의 잠자리가 싫었다..대화는 하려들지 않으면서 잠자리만 요구하다니...이 남자도 별수 없는 그저 그런 남자구나 싶었다..그리고 1년정도 지난 지금 나는 그에게서 사랑이 식는걸 느낀다..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 내가 그를 놓아주면 그도 더 편안해 할테니까...나는 정말 내 자식들한테는 행복하고 따스한 가정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그걸 할수 없다는게 가슴이 아프다...하지만 나만 참으면 포근하고 따스한 가정은 못 되더라도 집에서 시끄러운 소리는 안 나는 그저그런 평범한 가정은 꾸려나갈수 있겠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가을 저녁...그의 사랑을 포기하면서 느끼는 이 공허함...무엇으로 다시 채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