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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후보들을 대하는 이상한 잣대 (펌)


BY cimano 2002-10-05

개혁후보들을 대하는 이상한 잣대


지금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중에서 개혁후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과 권영길이다. 그런데 이들 두 후보를 대하는 세간의 평가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불합리한 통념과 왜곡된 기준에 의하여 증폭이 되고 있다. 단순히 거대 언론의 장난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뿌리가 깊다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 관하여 여러분들과 논의를 할까 한다.

개혁후보들에 대한 세간의 불합리한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의 근원이 정상적인 구조와 소통과정 속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큰 문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근원을 형성하는 근저에 심각한 자기 부정과 패배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진보에 대한 신념의 부족과 기득권 세력의 광범위한 이미지 조작 속에서 개혁후보들이 당해야 하는 이중의 곤란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서 착잡한 일이다.

최초의 기준은 사회 발전에 대한 신념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이는 개혁후보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면서 확신의 정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원칙한 결론 도착증에 빠져서, 이회창의 집권만 막아내는 것이 제일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명분있는 발전은 수렁을 헤메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구성원의 창발성과 책임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은 성공에 대한 신념이다. 노무현과 권영길에게 보여지는 유권자의 미심쩍은 반응은 실제 사회 발전에 대한 확신의 부족에 불과하다. 유권자가 변화의 원동력임을 망각하고, 다른 외부적 변수가 변화의 동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부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개혁후보에게 가해지는 또다른 정치적 테러는 극단적인 현상주의이다. 아무리 정치가 당위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할 지라도, 무분별한 현상주의는 발전의 자양분을 도태시켜 버릴 뿐이다. 유권자들이 개혁후보들을 대하는 이상 심리 중의 하나가 바로 "뜻은 좋은데, 설마 그렇게 되겠어?"와 같은 회의감이다. 너무나 몰염치한 구태 정치에 몰입된 나머지, 당위마저도 의심을 하는 잘못된 풍토가 합리적 개혁세력의 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잇는 것이다.

실지 노무현과 권영길은 기존의 정치 코드로는 수용이 되지 않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기존의 구태 정치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그들을 인식하려니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정치의 현상은 온존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의 이상 심리는 세력 중심적인 사고이다. 실지 수많은 패배의식이 몸에 배인 한국의 사회 구조에서 숫자의 마력은 기대 이상으로 크게 작용한다. 소수의 편에 서면 웬지 손해를 보는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의 심리적 프로세스이다. 평소에는 패거리 정치를 질타하면서도, 편가르기의 공간에서는 보수적인 다수가 되어야 안정적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 배반적 인지상정이 되고 있다. 이런 심리는 참으로 고약하다 못해 이중적이다.

노무현과 권영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온정을 중시하는 후보이다. 이들에게 있어 개혁과 소수자 보호는 정체성과도 잇닿아 있는 사안이다. 언제는 한국 사회의 소금이라고 칭송하지만, 집권의 안정성에는 못 미친다는 흰소리를 늘어 놓는 유권자들의 이중 심리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변화를 원한다며 정몽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참 변화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거나, 입으로만 변화를 말하는 멍청이이다.

이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유권자들은 엄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기 부정과 심리적 패배주의가 아닌, 무엇을(What) 어떻게(How) 변화시킬 것이가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개혁을 수용할 수 없는 국민이라면 그 시기를 늦출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막대한 비용 역시 온전하게 유권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그 크기만큼 대접받는 법이 아닌가.

시쳇말로 개혁은 개혁을 인식하는 소수의 인식과 분투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한국은 개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 더 버텨보고 때늦은 후회 속에서 자책할 것인가. 2002년 10월, 찬 서리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