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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고 오래된책- 무지길어요


BY 보부아르 2002-10-17

두껍고 오래된 책은 거의 재미가 없고 따분해서 저는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워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과 평화.>..같은 책...

톨스토이 괴테..
어쩌다 맘먹고 한번 읽어볼라치면 도저히 읽어낼 재간이 없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과 에밀리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조금 읽어낼 수 있었지만

그런데 어쩐지 이 보부아르 전기인 "시몬드 보부아르"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몇 번 흘깃거리고 봤는데 보봐리여사가 하도
유명해서 <너무 유명>하면 이상하게 질투도 나고 멀게도 느껴지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대지를 쓴 펄벅 여사만큼이나....>
질려있었어요. 아주 안 볼려고 했는데...



그런데 어제 도서관 열람실 서가를 들어가는 입구에 이 책이 놓여 있더라구요.
그래서 <에이 한번 가져가 볼까?>하고 뽑아 왔는데
정말 벽돌 1장의 무게처럼 좀 무겁더군요.

그런데 첫 도입부터 <어린이 명작만화>처럼 귀족계급의 생활이
쉽게 쓰여져 있어서...읽기에 수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리고 사르트르도 유명하긴 한데 저는 잘 몰랐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 조차도...
그랬는데 보봐리 여사랑 수 십 년 간 <50년 동안 이군요.뜨아~~>
동거를 했던 남자이구요
바람둥이로 많은 여자들을 편력했군요.

그리고 두 사람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관계였답니다.
보봐리는 너무 빨리 어른스러워진 여성이고
사르트르는 영원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었다는군요.

그 두 사람의 스토리가 매우 상세하게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약간 알고있는 카뮈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요.
카뮈가 사르트르랑 라이벌이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군요.

그런데 카뮈가 보봐리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군요.
다른 유명 예술인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참...어이없기도(?) 독파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참 책 가운데 부분에 많은 사진들이 나와있어요.
보봐리 <여기서는 보부아르>는 여성스러우며 섬세하고
또 약간은 신경질적으로도 보이고...그래요. 차림은 머리에
터번을 두른 차림이 많고....미인에 가까운 (?) 외모라고 쳐 둡시다.


그런데 여성운동가라고 칭호가 붙어 있군요.

각설하고요......
저하고 지금 함께 읽어 보실까요?


★.<프랑수아즈>는 <시몬드 보부아르>의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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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온통 검은 색과 뒤엉켜 있었다.

평생동안 그녀는 어린 시절이 되살아날 때마다
검은 색으로 뒤덮여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검은색과 좌절을 결부시키는 첫 기억은
어머니가 입고있던 검은 드레스의 뻣뻣한 촉감이었다.


이 뻣뻣한 검은 옷 때문에 시몬은 어머니를 껴안으려 할 때마다
마치 장벽에 가로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어른들은 천장이 높은 방에서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고, 아이들은 거기에 끼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어린 그녀가 혼자서 가지고 놀던 굴렁쇠도 검은색이었다.


시몬은 어머니한테서 정식으로 소개받은 상류층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아이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다른 아이를 사귀려면 어머니가 먼저 그 아이의 어머니를 정식으로 만나야했다.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인쿠르 데지르에 입학했을 때도,
이 엄격한 절차를 먼저 밟고 나서야 함께 등록한 소녀들한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어린애가3 살만 되면 명함을 갖는 사회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도 두껍고 하얀 종이에 검은 잉크로 글씨를 박은
화려한 명함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네 살도 되기 전에 까만 벨벳 핸드백 속에서
처럼 능숙하게 명함을 꺼내어 은 쟁반 위에 올려놓는 법을 배웠다.


시몬은 언제나 예의 바른 꼬마숙녀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녀는 조숙한 행동이 훨씬 더 어른들의 관심을 끈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지만, 예의범절과 허세의 경계가
어디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눈총을 받는 사회에서 그녀는 이따금
어머니에게 무안을 주었고,
이모나 숙모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곤 했다.

이것이 바로1908년 1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난 시몬이
첫 발을 내디딘 프랑스 부르주아지 사회였다.
그 사회는 예의범절과 세련된 품위의 세계였다.


부자연스러운 예의와 품위가 보부아르 가족의 온갖 생활을 규제하고,
일반대중으로부터 그들을 갈라놓았다.
가정의 규율은 엄격하고 완고했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뿐 아니라 바깥의 사교계와 정치계에서도
절제와 보수주의가 그들의 행동을 지배했다.
부르주아 계층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집안이 맨 처음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돈을 어떻게 쓰느냐,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가 판단 기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은 결혼이었다.

일단 이 고상한 사회에 들어가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추방당할 염려는 없었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집안에서 은밀하게 벌을 줄 수는 있지만,
겉으로는 체면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 집안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 결과 지위도 잃어버린
시몬의 아버지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시몬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다.
보부아르 집안은 그녀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하게 둘러 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친척들은 시몬이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


프랑수아즈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명한 얼굴에 짙은 갈색 눈과 숱 많은 밤색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늘 어둡고 시무룩했다.
이제 스무살이 다된 그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는그녀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별로 없었고 젊은 남자와 사귈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좋은 짝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사업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뒤에야
갑자기 딸의 결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브라쇠르 집안과 보부아르 집안을 모두 알고있는 친구가
중매에 나선 결과, 조르주드 보부아르가
프랑수아즈 브라쇠르의 가장 유력한 신랑감으로 떠올랐다.

브라쇠르 집안에서는 조르주가 비록 재산은 그들보다 적지만
사회적 지위는 더 높고 장래도 유망하다고 생각했다.
두 집안의 어른들은 1906년 여름에 중립지대인 울가트 휴양지에서
맞선을 보기로 결정했다.
프랑수아즈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따라갔고,
조르주는 결혼할 나이가 된데다 프랑수아즈의 여러 조건---돈이 많고,
나이가 어린걸 보면 숫처녀인게 확실하고,
신앙심이 깊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맞선을 보았다.


이런 여자라면 현모양처로서 손색이 없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젊은 여자가 막대한 지참금을 갖고 온다는 점이었다.
맞선을 본지 몇 주일만에 조르주드 보부아르는 프랑수아즈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프랑수아즈는 결혼준비를 하면서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푸른 눈을 가진 약혼자에게 매혹되었고,
그들의 결혼에는 비록 금전 거래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맺어졌다.


그들은 1906년 12월 21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몽파르나스가 103번지에 있는 크고 우아한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프랑수아즈의 아버지는 아직 지참금을 내놓지 않았지만,
그녀와 조르주는 언젠가는 그것을 받게 될 거라고 믿었다.


에르네스트 나르시스는 메이리냑에서 일하던 수줍은 소녀
루이즈 세르마디라를 아들 내외의 하녀로 보내주었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파리생활이 시작되자,
프랑수아즈는 집안 일을 꾸려 나가고 이질적인 사회 속에서
남편의 지위에 걸 맞는 아내로서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그녀를 이끌어 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은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사교계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조르주는 그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프랑수아즈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그토록 충실하게 날마다 일하러나가는데도
왜 부자가 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르주는 아내한테 좀 더 교양을 쌓아야한다면서
문학과 연극을 배우라고 요구했다.
그는 고상한 취미를 아내에게 가르치고,
유행에 따라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 법과
집안을 세련되게 꾸미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총명했고 남편의 가르침을 좋아했지만,
이런 일을 하려면 돈이 들었다.


지참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들은 아파트를 꾸미느라 큰돈을 지출했다.
프랑수아즈는 남편을 사랑했다.
남편이 원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신혼시절에는 남편과 열렬한 육체관계를 가졌고,
결혼생활의 인습적인 구조가 허물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이런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수녀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는 믿음을 그녀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생활에서 여자의 공식지위는 종속적이지만
여자의 영향력은 남자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수아즈는 평생동안 남편에게 복종했고,
불만이 있어도 하녀 루이즈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한테도 내색하지 않았다.
불만을 참느라 그녀는 감정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에,
느닷없이 난폭하게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의 우울한 표정과 갑작스러운 역정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의지가 강하고 도도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가 번득이는 눈으로 노려보면 누구나 기가 죽었다. 거만하다는 비난이 평생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따뜻한 마음씨와 동정심이 부족한 차가운 여자로 보였다.
푸랑수아즈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어머니 레옹틴과 똑 같았다.
그녀는 검소한 생활을 꾸리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조르주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그는 흑단으로 만든 육중한 가구와 빨간 바탕에 검은 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카페트를 사들였다.

그들의 아파트는 생제르맹 가에 있는 아버지의 아파트만큼이나
호화롭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조르주는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연극과 문학을 좋아했다.
연극 때문에 그는 자주 외출했고,
문학에 대한 애정 때문에 집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
조르주는 또한 아내를 교육시켜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신식 남편이었다.
그는 아내도 자기와 똑 같은 취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수아즈는 남편의 이런 배려를 고맙게 생각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망설임이 있었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취미는 교회가 금지하는
쾌락의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모양처로서 집안을 꾸려나가려면 취미 따위에
시간을 뺏길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 스무 살 난 여자는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 찬
결혼생활 속에 내던져졌지만,
그 어느 것도 체념하고 받아들일만한 시간여유를 갖지 못했다.

결혼 1주년 기념을 지내자마자
그녀는 첫아이를 낳았고,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의무와 책임이
그녀를 또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p56
<어린 소녀작가 보부아르>
시몬이 열 살인가 열 한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린 두 딸한테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너희들은 평생 시집을 못 갈지도 몰라.
지참금이 한푼도 없으니 말이다."
이말은 어린 시몬한테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말뜻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결혼하지 못하는 것을 조금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때 아버지가 덧붙인 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너희들은 평생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직업훈련도 받아야한다."
집안의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수입도 변변치 못한데다 걸핏하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p149

카스토르<★시몬 보부아르의 별칭입니다...tomato> 가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아직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검은 옷 대신 회색 비단 옷을 골랐다.

그 드레스는 옷감이 얇고 스타일이 너무 천박해서,
일상복으로 입기보다는 파티복으로 더 어울렸다.
그녀는 같은 색깔의 싸구려 구두를 사서,
그녀자신의 표현대로 '우스꽝스럽고 흉측한' 옷차림을 마무리했다.
이 싸구려 구두는 금방 닳아서 신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이런 값비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패션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특히<마리 클레르>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패션에 관한
그녀의 성경이 되었다.
이 잡지에서 그녀는 전등과 전등갓에 손수건을 늘어 뜨려
싼값으로 방을 치장하는 법과 광대뼈에 볼연지를 바르는 법을 배웠고,
값싼 모조품 스카프와 인조보석을 살 수 있는 곳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 엉덩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감추려고 헐렁한 스커트 위에 기다란 블라우스를
걸쳐 입기 시작했다.


이 차림은 활동하기가 편했기 때문에,
그녀는 유행에 무관심해진 뒤에도 이런 스타일을 선택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효과는 그녀가 원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의 색깔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옷이 더러워지거나 얼룩이 묻을 때까지
그 옷만 줄곧 입고 다녔다.
블라우스 단추가 떨어져나가고 스커트 단이 뜯어져 있을 때도 많았다.
그녀는 평생동안 납작한 구두를 좋아했는데,
한 번 구두를 사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었다.
그녀는 옷에 관심이 많았고 멋져 보이고 싶어했지만,

멋진 옷차림을 유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럴 능력도 전혀 없었다.
그녀는 물건을 쉽게 바꿀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외모에 무관심한 여자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p278


"시몬드 보부아르는 회고록을 쓸 당시
카뮈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고록에서 카뮈를 다룬 부분은 사실여부가 의심스럽다.
보부아르와 카뮈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보부아르의 편견을 염두에 둔다면,
그녀의 논평은 대단히 흥미롭다."
매카시의 경고는 그럴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
보부아르는 카뮈를 '대단한 매력'을 가진
'단순하고 쾌활한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내가 그에게서 가장 좋아한 점은
자기 개인의 활동과 기쁨과 우정에 몰두해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사물을 공정하게 즐길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만나본 카뮈는
자신의 복잡한 성격을 단순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기려고
애쓰는 인물이었다.
카뮈는 자신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지나칠 정도로
신랄하게 내뱉곤 했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그 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보부아르에게는 카뮈의 말없는 자신감이
극단적인 자만심을 감추기 위한 가면으로 보였다.
그녀는 카뮈를 사르트르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생각했고,
그가 '마치 군계일학처럼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조그맣고 못생긴 사르트르가 그 그늘에 가릴까봐 두려워했다.


게다가 보부아르는 자기를 바라보는
카뮈의 눈초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카뮈는 보부아르를 정중하게 대하기는 커녕
관심을 기울일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힐끗 쳐다보고는 무시해버렸다.

보부아르는 1982년에 이렇게 말했다.
"카뮈는 지적인 여자를 참지 못했어요.
지적인 여자와 함께 있으면 불쾌감을느꼈기때문에,
조롱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렸죠.
카뮈는 나를 따돌리고 사르트르하고만 대화를 나누었고,
내가 억지로 대화에 끼여 들 때만 나한테 말을 걸었어요.
하지만 나한테 말을 걸때의 말투는 좋게 표현하면
냉소적인 조롱이었고, 모욕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무례했어요."


카뮈에 대한 그녀의 평가도 그에 못지 않게 가혹하다.
"카뮈는 지극히 단순한 정신을 갖고 있어서,
정치와 윤리와 철학에 대한 견해도 단순하기 짝이 없었어요.
글을 잘 썼는지 모르지만,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어요.
카뮈와 사르트르의 차이점은 사르트르가 진정한 철학자인 반면
카뮈는 순수한 언론인이었다는 거예요.
작가적 자질도 약간은 갖고 있는 언론인이었죠.
사르트르와 카뮈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카뮈한테서는 어떤 충격도 받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아무도 카뮈의 글을 읽지 않아요.
카뮈의 작품은 너무 피상적이고 빤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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