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위즈(dreamwiz.com)사이트의 '커뮤니티'---드림칼럼 中
"생활의 발견"이란 칼럼명에서 퍼온 글입니다.
좋은 글이 많이 수록돼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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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이라는 곳은, 우리들을 묘한 심리에 빠지게 한다.
生과 死와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는, 그동안 아주 멀게 느껴지던 죽음이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진다. 어제만해도, 출입구 쪽 병상에 누워있던 한 젊은이가
세상을 떠났다. 한 침상에 두 사람의 면회만 허락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여러명의 가족이 면회하는 모습이 목격되면
주위 사람들은 그 병상에 다가올 슬픈 의식을 눈치챈다.
병상을 둘러싸고 서서 그 가족들은, 머지않아 자기들 곁을 떠날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본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그 길로 떠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아들! 아들!"
한 어머니가, 온몸이 노랗게 변해버린 40대 아들을 붙잡고
안타깝게 불러본다. 간암에서 온 황달로, 마치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은행잎처럼 전신이 노래진 아들은 말이 없다.
'아들'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에는, 그러나 너무나 애절한
어머니의 염원이 담겨져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헤매고 있을
사랑하는 아들을, 그 어머니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불러본다.
왜 神은 저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황혼길을 걸어가는 노모가, 아직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할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빠져 울부짖게 만드는 것일까?
神이 있다면 제발 저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소서.
저 어머니로 하여금, 여윈 가슴 속에 아들을 묻지 않게 하소서.
"걱정하던 폐렴은 많이 잡혔는데, 욕창이 걱정입니다."
장중현교수가 내게 말했다. 충주건대병원에서 20일을 계시다가
이대목동병원으로 모시고 온지 보름. 내가 봐도 많이 좋아지셨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맘을 놓고 있었는데 욕창이 걱정이라니---
중풍으로 3년을 누워계셨으니 욕창이 생길만도 했다.
산넘어 산이라더니, 참 걱정이다. 곪은살을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한다지만 어머니한테 수술은 무리일 것이고, 어떻게 약으로
더 이상의 악화나 막아야 할텐데---.
"지금도 호스로 식사를 넣어드리는데, 앞으로도 입으로는
식사를 못하실거예요. 소변도 잘 못보실거구요."
유정화주치의가 선고하듯 내게 설명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을 간병하는 아주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보고
"할머니가 그래도 여기 중환자실에서는 제일 나으신데요 뭐"
하고 말했는데, 물론 거의 중태거나 식물인간상태인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는 어머니가 가장 양호한 상태이긴하지만 생각해보면
앞으로 우리가족이 겪어나가야 할 어려움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당신께서 치러야할 고통이 클 것이다.
다른 때는 안그러시더니 어제밤 면회 때는 며느리손을 잡고
놔주질 않으셨다. 다른 때같으면 집사람이 "어머니 내일 또
올께요"하면 어서 가라는 시늉을 하시더니, 어제밤엔 막무가내로
손을 잡고 안놓으시는 것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우시고 두려우시면 그려셨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죽음의 공포가 음산하게
떠돌아다니는 중환자실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누워있다는 것이
아마 당신께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으리라.
지금쯤 한적한 시골집에서 외손자 현구의 재롱을 보며
<인어아가씨>를 보시고 있을 어머니가, 고도(孤島)에 혼자 남겨진
표류자처럼 절박한 외로움 속에 놓여져 있으니---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같다*****
(떠도는 者의 노래)
아파트 현관 앞에서 나와 아내는 잠깐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엄마가 집으로는 못오시는거야?"
시골에 있는, 3년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막내여동생이
전화기 너머에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어머니가 충주에 계실 때
주치의가 "할머니는 아마 계속 중환자실에 계셔야할겁니다"라고
말했었고, 그것이 서울에서 좀 달라졌는가 하는 일말의 기대가
섞인 질문이리라. "아직 몰라. 좀더 지켜봐야지"
결론은 뻔했지만 나는 차마 막내에게 말하지 못한다.
내 생각에도 어머니가 예전처럼, 중풍으로 불편하지만 그냥저냥
집에서 생활하시는 '기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막내가 지난주에 서울에 왔다 내려가면서 하던 말이 귀를 때린다.
"이럴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좀더 잘해드릴걸."
세상의 모든 딸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 그러나 거기엔
진한 회한이 묻어있다. 3년 동안 참으로 고생많았던 막내.
중풍노인 모신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서울 사는 오빠, 올케
대신해 엄마를 모시고 살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계속 중환자실에 계셔야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니 좀더 잘해드리지 못했던게 맘에 걸리는거겠지.
"엄마가 누워서 밥을 떠먹여드려도 좋으니 제발 집으로
가실 수만 있으면 좋겠다."
막내가 울먹이듯 주절거린다.
어머니 나이 마흔에, 아들 하나 더 놓겠다는 일념으로 가진
늦둥이가 딸로 태어나 구박(?)을 받던 막내가 결국엔 어머니의
노년을 책임지고 있으니, 생각하면 가슴찡한 일이다.
집에서 옛날처럼 막내딸하고 착한 사위하고 귀여운 외손자하고
사실 수 있을까? 그 평범한 일상이, 그러나 막내에게는 지금
얼마나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어머니 당신에게도, 시골집에서의 일상이 너무도 그리울테고,
내게도 가족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 찾아가는 시골집에서의
일상이 너무나도 그립다.
어머니가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겁던 귀향길.
그 평범한 일상이 지금 왜 이리도 소중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내게 잠시 유보된 것인가, 아니면
아주 회수해가버린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 사실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것,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준다는 것, 남편이 실직하지 않았다는 것,
아내가 살림 잘 해주는 것,내집을 갖고 있다는 것, 사이좋은
이웃집이 있다는 것, 시력이 좋다는 것, 노래실력이 남한테
빠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 매일 아침 아내한테 만원짜리 한장
받아 지갑에 넣으며 용돈좀 올려달라고 말하는 것, 일요일날
아들 데리고 목욕탕갈 수 있다는 것, 친구의 결혼식장에 가서
면사포 쓴 신부를 보며 은근히 질투를 느끼는 것. 그 모든
것이 평범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소중한 일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