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는 엄마에게 매맞을때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셨다.
1남1녀 .우리 세대때는 남매만 크는 집이 드물었다.친구네집,주위에서도
보면 4남매,오남매가 보통 인 시절. 내손을 잡고 길을 갈때도 아이를 몇을 두었냐고 누가 물을라치면 꼭 이렇게 답하셨다."본전치기 했읍니다."
엄마는 우리를 아주 엄하게 키운거 같다.누가 하나 있는 딸을 왜그렇게
무섭게 하냐고 하면 꼭 하시는 말 "하나 아니라 반쪽 이라도 할건 해야지"
하고 중고등학교때 아버지는 학교에 자주 오셨다.
왜 그렇게 자주 오셨는지 아직 못여쭈어 봤다. 오시면 꼭 용돈을 주고 가셔서 친구들과 단팥죽 사먹고,탁구 치고,하는 재미에 아버지의 그림자만 봐도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엄마 하고 싸우고 아버지가 가출을 한번 하신것인지 생각이 잘 안나지만
기차에서 쓰시는 것이라며 편지가 내앞으로 온것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 안나고 두분이 싸운거라면 무조건 아버지가 옳을것이라고 만 생각 한것같다.
여상을 나와 곧바로 대기업에 취직이 됐다. 시험은 형식적으로 본것같고
순전히 아버지 빽으로 된것같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또 수시로 회사를
들리시는걸 보았으니까. 감사실에 들려 커피 도 드시기도 했으니까.
아마 감사 빽인가 보다 했다.
쥐뿔도 실력 도 없고,인물도 없고,키도 안크고, 개코도 아닌것이 우물안의 개구리 처럼 아버지의 빽만 믿고 설친것이 지금 말로 공주병이었다.
무조건 적인 사랑 이었다.
결혼도 아버지가 신랑감을 골라주셨다. 뒷조사 다해보고..
여자도 없댄다.술도 안먹고,성격도 괜찮은것 같고, 일단 너 맘고생은 안시키겠다. 믿고 결혼 했다. 지금까지 만 24년 함께 살았다.
변함 없다.불만없다.
우리 아버지 이제 만으로 77세 가 넘으셨다.
일요일 마다 13살 짜리 손녀딸 아침거리 사들고 늦잠자는 아이 깨우러 오신다. 그때마다 나에게는 엄마 흉도 보고 멀리 사는 친척 얘기도 하고
한얘기 또하고 또하고.. 근데 나는 그냥 듣는다. 알고 있다고 말을 자르고 싶어도 못한다.서운하실까봐.
앞으로 몇년이나 더 들어 드릴수 있을까 하고..
그저 일주일에 한번 말상대 한두시간 하는걸 그걸 못할까 하고..
나도 괜히 한마디 한다.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셔야돼.
엄마는 아버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왜그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
나는 대학원 다니는 딸이 있는데도 아직 아버지에게 존대를 못한다. 어색해서. 나는 영원히 아이 이고싶다 아버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