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줍잖은 글을 조금씩 쓰다보니
내 자신의 그릇은 조금밖에 안되는줄 뻔히 알면서도
환상속에 묻쳐 주제파악 못할때가 참 많다.
그래 맞다.
좋게 말해선 환상이고 나쁘게 말해선 가식이다.
집에서의 내 차림을 보면
싸구려 추리닝바지에다 몇년전에 산지 기억조차 희미한
낡은 티샤츠를 입고있다.
거지꼴이 따로 없지만 아무도 안본다는 편안함이
내 꼴을 합리화시켜주고 있다.
희망.
참 좋은말이다.
한때는 희망이란 이름으로 가슴설레이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곤했다.
더 나은 미래.
어떤게 더 나은 미래인줄도 모르면서
언제나 지금보다 더...더..를 외치며
현실에 만족할줄 몰랐다.
자고 일어나도 어제의 그 풍요가 기다리고 있었고
얼굴 찌프릴일이 없어 좋았다.
가식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냥 스리퍼만 끌고 나가도 다들
괜찮게 봐주든 시절이 분명 내게 있었다.
모든게 영원할줄 알았다.
근데 전혀 아니었다.
세상에 영원한건 없었다.
친정 부모님 찾아뵐때의 보따리는 예나 이제나
조금은 풍성하다.
달라진게 있다면 전엔 질에 치중을 했고
지금은 량에 치중을 한게 틀리지만...
정신이 온전한 엄마는
몰락한 딸자식의 처지를 어렴프시 눈치채시기에
안쓰런 눈길로 속상해 하지만
정신이 왔다갔다 하시는 아버지는
풍성한 보따리를 풀고선 좋아만하신다.
차라리 속없이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더 마음편하다.
'아부지. 이건 햄버거. 이건 후라이드 치킨요..'
'오냐 오냐'
어떤땐 모호하게 햇깔릴때도 있다.
아버지가 딸자식 형편없는 꼬락서니 인정하시지 않을려고
일부러 저러시는거 아닐까하고...
눈시울이 붉어오지만 내가 울면 나보다 더 우실
엄마를 생각하여 절대 울수가 없다.
'뭔 돈이 있다고 이렇게 많이 사왔노..너 쓸돈도
모자랄건데...'
'엄마. 나 돈 많이 있어요'
옛날에 내가 돈 많이 있다면 그리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셨는데 요새는 내가 돈많이 있다고해도
자꾸만 눈물을 지으신다.
내 연기가 서툴러서 믿지 않으시는거겠지.
딸이야 왔건말건
닭다리를 뜯어면서 먹는데 열중하신 아버지를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저러지 않으셨다.
마을에 잔치가 있으며 먹을 갈아서 사성을 써주기도 하고
카랑 카랑한 목소리로 주례를 서주시기도 했었고
언제나 말쑥한 정장 치림으로 노인회장이란 감투의
품위를 스스로 세우시기도 했는데....
'아부지 맛있어요?'
'맛있다'
'그거 누가 사온건지 알아요?'
당연하게 우리딸이 사온거란 대답을 기대했건만
들려오는 대답은 너무나 엉뚱해서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대통령 하사품이잖나'
돈키호테같은 대답이지만 웃을수가 없으니...
엄마에게는 또 가면을 써야한다.
무슨돈으로 이런 저런걸 사오냐는 물음에
그냥 돈 잘 번다는 소리로 입막음을 하고선
대화를 다른데로 돌려버린다.
추석때 선물받아서 입고있는 레이스 달린
비싼 속옷을 내돈주고 사입을 형편이나 되는듯이 큰소리치며
잘먹고 잘산다고 강조를 하지만 공허한 목소리까지
어찌 감추랴...
자꾸만 슬퍼지는 내 자신이 밉기만하다.
'내가 너땜에 눈을 못감겠다'
평소같으면 그냥 못들은채 하는 소릴
정신없이 닭다리를 먹는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그만 나도 모르게 폭팔을 해버렸다.
'왜 눈을 못감아요? 왜? 그냥 감으면 되는걸 왜 못감아?
왜 내 말을 안믿는거야? 왜..왜?'
아무래도 나도 미쳐버린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 엄마한테 이런 야멸찬
소릴 할수있을까?
내 가면에 스스로 짜증이 난거같다.
내가 처한 환경을 솔직하게 엄마에게 이야기한들
뭔 해결이 나랴.
38키로 몸무게인 엄마 가슴만 아프게 할꺼고
정말로 돌아가실때까지 내 걱정에 눈물 지새울껄
뻔히 아는데...
속는 사람이나 속이는 사람이나 서럽고 아픈건 마찬가지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찐한 연민으로 범벅이 되었었고 무거웠다.
숨바꼭질 하듯 엄마와 딸은 서로 염탐을 하며
슬픈 모녀가 되어있었다.
평소 엄마 몰래 싱크대 서랍속이나
벼개속에 잡비를 꿍셔놓고선 서울와서는
돈을 꺼내라고 전화를 하면
늙으신 내엄마는 가슴을 치셨다.
뭣하러 없는돈을...그게 가장 큰 이유였지.
이번에는 보따리를 싸는 순간까지도 허술한
틈을 안주셨다.
몰래 돈을 넣고갈까봐
내가 부억으로가면 따라 나오고
내가 안방으로 가면 또 따라나오고
도무지 몇푼 안되는 돈 살짝 넣어놓을 재간이 없었다.
그냥 주면...절대 안받으신다.
서럽게 마구 우시니까...
그러니 염탐하듯 엄마몰래 슬쩍 넣어놓고선
나중 전화를 드리곤했는데 이렇게 틈을 안주시니...
인제는 옛날처럼 거창한 희망이 없다.
더 잘살아야지하던...옛날의 그 욕심도 없다.
그냥 부모님 편하게 가셨슴 하는 희망.
그리고
나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쁘지만 않았슴하는 희망.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더 이상 뭔 큰 희망이 있으랴.
가슴벅찬 희망을 품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져있다.
난 이제 서서히 지고있는 태양일뿐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내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수없다.
사나흘의 여정으로 여행가방은 부풀데로 부풀어있었다.
이곳 저곳 친척과 지인들이 챙겨준 비닐 보따리를 풀다가
낮익은 반찬통을 발견했다.
아버지 드린다고 창란젓을 사넣었든 작은 통인데
엄마가 어느틈에 내용물을 비우시고 넣었는가보다.
프라스틱이지만 조금 비싼 타파라고
없는 딸 챙겨주신 맘으로 넣었으리라.
근데...
뚜껑을 여는 순간 얌전하게 접핀채 흘러나온 돈.
왠 돈? 이란 의문을 갖기도 전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돈...돈....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돈인데
웃음이 나지않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9만원에 다시 옆으로 한장 접은 엄마 특유의
10만원 접기가 세묶음이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아...
엄마.
왜 날 이렇게 가슴을 치게 만드는거야?
왜 이렇게 날 슬프게 만들어?
이게 뭐야?
내가 언제 엄마한테 돈 달랬어?
나 돈 잘번단 말이야....
잘먹고 잘산단 말이야...
이러면 누가 고맙다고 할줄 알어? 흑흑...
첨엔 소리없이 흐르든 눈물이 자꾸만 통곡이 되어 나왔다.
나같은 딸이 또 있을까?
난 이나이 되도록 왜 이럴까?
가슴을 치고 싶다.
아무리 손에 쥐어 드려도 안받으시기에
차창 밖으로 던지듯 했든 만원짜리 몇장을
다시 줏어 창문속으로 던져넣어시는데 어찌 다시 던질수 있으랴.
그래서 이 못난딸은 돈을 드리는걸 포기하고
그냥 왔는데....
하루종일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내 가슴속 아픔과는 다르게
아는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나가야지.
다시 내 가식이 시작되었다.
거지꼴같은 옷을 벗어던지고
얼굴에 이것저것 어줍잖은 색칠도 칠하고
내가 가진 옷중에서 제일 좋은걸 골라입고
구두신고 핸드빽까지 들고 나서니
엄마 걱정시켜주는 가난한 내 꼴은 간곳없고
밥술이나 먹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다시 연극이 시작되나보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연극인걸.
웃자. 웃자....사는건 이런거잖아.
그러니까 희망도 가져야겠지?
아아...눈물나도록 슬픈 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