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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번 선거가 정말 두렵다


BY mee60 2002-12-13

내가 대학 다닐 때 다른 모든 집들처럼 대학생인 나와 기성세대인 아버지는 뉴스만 시작되면 으르렁거렸다. 아버지의 말씀은 딱 두 가지 줄거리로 철통 같았다.

니들이 전쟁을 알어!
해먹던 놈이 낫다니까!

그때 우리 친구들 중에는 언제나 묵은 쌀만 먹어야 하는 집이 있었다. 지하실에 쌀을 쟁여놓고 살던 그 집- 바로 전쟁의 공포가 뇌리 깊숙이 박힌 그 어머니 때문이었다. 일정량의 쌀을 확보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수가 없던 그 상처받은 심정을 요즘 젊은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날이 새면 대자보가 붙고 날이 새면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식이 유령처럼 캠퍼스를 지배했었다. 그리고 5월 광주로 실상 우리의 대학생활은 쓰리고 아팠다.

경상도 남편을 만나 경상도를 떠돌며 오만 허접쓰레기 같은 날들이 부질 없이도 가고난 뒤에 드디어 대중이가 대통령 되었다. 그러면서 이미 살점도 다 썩어문드러진 광주의 실상이 공중파를 타고 마구 날라다녔다.

난 어느 식당에서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손님들이 소리를 지른다.

저 빨갱이 새끼들, 헛소리하는 거 봐라

10년도 지났는데 경상도는 그랬다.
덜컥 그들이 돌아보아지는 건 서글픈 섬뜩함 때문이리라

대중이가 대통령이 되고보니 친정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 해먹던 놈이 낫다니까!

야당시절 못 챙긴거 다 챙기는구나!

삶이란 누구에게든 모지락시럽게 구차하다는 걸
아닌 척 살아갈 뿐이란 걸 알 나이가 된 탓일까

누구는 덜 챙겼더냐
피식 실소가 나올 뿐이다.

지금 경상도는 바다가 죽어버렸다. 그러고나니 참, 경륜이라는 것도 무시해선 안 될거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뭘 몰라서 바다를 넘겨주다니!!

그러나 나는 IMF 라는 걸 이 땅에 가져온 영삼이새끼를 아직 용서할 맘이 없다. 그러니 한나라당인지 하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옥을 가려보겠다고 달려들 맘 역시 추호도 없다. 그 찌꺼기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조차도 창피스럽다. 당하고도 모르나,쯧

이제 와서 정작 IMF를 가져온 영삼이 떨거지들이 문민정부 5년의 실책을 떠들어대는 모양도 마뜩찮다. 거기에 지난 일 홀라당 잊어버리고 달라붙는 이들을 보면 참 인간이 편리한 짐승이구나 싶다.

자갈치 아줌마 말에 난 이상하게 수긍한다.- 그래, 누가 되든 내게 돌아올 거 있겠나. 힘 있는 놈한테 붙어야 구박이나마 안 당하고 살지-그 부분이다.

난 이게 경상도식 생존철학이란 생각이 든다.
척박한 땅-경상도

내가 본 경상도는 남들이 보는 경상도와 다르다. 남들은 공업발전으로 시끌거리며 사는 경상도를 본다. 하지만 내게 경상도는 심어도 가꾸어도 작물이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 경상도다. 그들이 누천년 몸으로 갈음했을 생존의 법칙 - 있는 놈한테 붙어야..

욕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엔 눈물이 피처럼 배어있는게 보인다. 살아남아야 하는, 바람이 불고, 전쟁이 터지고, 논바닥이 갈라져도, 살아남아야 하는 밑바닥 서민의 논리를 두고 욕이 나오나.

40대가 된 지금, 나는 더이상 몇몇 인물이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리고 믿지 않는다. 아직도 울분 끝에 혁명을 꿈꾸기는 하지만 그러나 더이상 혁명을 믿지도 않는다.

독일이 통일 되던 날 - 나는 우울하게 정말 우울하게 아직 알아듣지도 못할 아이에게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만 남았구나. 달랑 우리만..

김일성이도 죽어버린 지금 아직도 그 공포 속에 살고있고 그 상처를 이용해먹으려는 이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길길이 날뛰는 부시행정부를 보는 어쩔수 없는 약소국가의 입장 이라는 것도 칼 끝처럼 아프다.

날로 비대해진 경제논리에 기대어 정몽준이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보고있는 것은 재벌 아들이 아니라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경륜(?)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쩐지 국제사회에서 띨띨하게 살고있음을 눈치챈 차선의 선택. 하지만 그가 재벌 아들이란 사실을, 꿈 속에서건 현실에서건 어떻게 잠시나마 벗을수 있을까. 그 징그러운 돈의 혓바닥을.

아무리 급한들 통일만큼 급하랴. 그러나 그 길은 탁상머리 논리나 깃발로 갈수 있을만치 너른 길이 아니다. 어찌 민주당이 그간 보여준 덜떨어진 미숙함, 오래 못 얻어먹은 조급함이 거슬리지 않으리.

아직도 세상 변한 걸 눈치 못 채는, 아니 못 채는 척 하며 구부정한 한나라당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강직이라니.. 적도 아군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지도자감의 강직이 중심 이미지라니... 내세운 사람이나 따라붙는 사람이나 순진하기를...

40이 넘고보니 나 역시 땟국이 흐른다. 그러니 더이상 정치인의 몰골을 타박할 처지가 아니다. 가면이야 어떻게 바꿔 달든 속은 같고 꼬리표야 어떻게 붙이든 어쩐지 새 대통령이 갈 길은 뻔하면서도 비좁은 길일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왜 이리 자신이 없을꼬.

앨빈 토플러는 결국 제2의 물결이 정치구조를 결정지으며 누가 올라가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었지. 어느 덧, 제3의 물결이 목전에 와 있는 지금, 수치스럽게 아직도 분단국가인 우리가 도대체 누구를 내세운다고 제대로 된 길이 열릴지

난 이번 선거가 정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