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12월19일 악몽같은그날은 기억조차 하기싫지만
우리가족이당한 억울한일을 공개합니다.
1년전 2001년12월19일 삼성SDI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LCD 평판사업부 김명동 반장은 오후16:00경
그룹경영전략 회의참가. 그룹장 과장 대리 반장이상이 모인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있는 63뷔페에서 회식중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부산동아대 병원으로후송. 뇌경색이 아주심각한 조금만 늦었더라면 뇌출혈로 이어질뻔한 실로 엄청난일이
우리가족에게 터졌습니다.
MRI검진 결과상 재발이되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심장마비 뇌출혈로 이어지는
아주위험한 상태라고 담당교수의 소견이었습니다.
혈관의막힌 부위가 퉁퉁부어 터질것같은 아주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도저히 믿기지않는 의사의말에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젊은나이 남편의나이는 43세 어리기만한
아들,딸을 보면서 기가막히고 억울해서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입원한지 2~3일이 지나니 남편의병은 더욱더 악화되고 오른쪽팔,다리가 완전히 마비가되고 말을할수없는 언어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침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며 힘든 병원생활은 정말 힘이들었습니다. 대화가 통하지않아 남편의 요구조건을 알아듣지못하는 저는 남편의 한가지 물음에 수십가지의 물건을 들어올려 가리켜야했고, 알아듣지못할때는 남편의 신경질은 더욱더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남편에게선 희망이란게 도저히 보이지않고
악몽같은날은 5개월이라는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시간동안 삼성SDI의 산재승인거부는 나를더욱더 힘들게만했습니다.
삼성SDI의 산재승인이 되지않자 저는 개인으로 산재요양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으로 재출해야만 했습니다.
삼성SDI와 근로복지공단의 모략으로 산재승인은 불승인되었습니다.
감원 스트레스를 주지않았다는 삼성SDI측은 무조건 산재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가장이 쓰러진 저희가족은 웃음과 대화는 사라진지 이미오래고 지금도 병원생활을 병행해야 하고 물리치료도 게속 받아야하는데도 삼성SDI의 산재승인이 되지않아 치료도못받고 원통하고 억울합니다.
남편김명동은 1983년5월에입사. 18년6개월동안 한결같은마음으로 삼성SDI에 충성했습니다.
그결과 남편의 성실한태도는 모범상주역의 선두주자였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삼성의충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몸이망가져 병이드니까 삼성SDI는 쓴물,단물 다빨아먹고,헌신짝 내버리듯 차버리는, 인간미라고는,눈씻고봐도,찾아보기힘든 정말냉정하고 냉혹한 삼성SDI의 도덕성에 이가갈리고 치가떨립니다.
도덕이념을 중요시한다는 삼성SDI는 인간적인태도는
권력속에 사라진지 이미오래된것같습니다.
살아도 산게아니고 죽을라니 도저히 억울해서 이대로는
아니다싶어 요즘삼성SDI 정문앞에 혼자 1인 시위를 하고있습니다.
1인시위를 하기위한 첫날,둘쨋날
2002년11월20일,21일 경비실에서 경비원이나와 자기내땅이라고 우리땅에 발딛지말고, 마을로내려가라고 엄포를놓았습니다.
남에땅에와서 왜방해를하느냐며 추접스럽게 사람을내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게무슨 소용이며 한겨울의 추위는
저의가족의 억울함에 비하면 하잘것없습니다.
저는오늘도 내일도 매일아침 그곳에 갈것입니다.
무조건 산재승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삼성SDI측에
분노를 토하며,미래가창창한 어린자식과 반신불구가된
남편을보면서 끈질기게 대응할것입니다.
저의가족의 억울한 마음을 온세상에 알리고싶습니다.
저를도와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