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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넘. 아들넘.


BY 나의복숭 2002-12-25

평소 아들넘하고는 참 죽이 잘 맞다고 생각했다.
나랑 세대차이로 보자면 한참이지만
그래도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왔고 별로 말썽 안부리고 자라준게
늘 대견스럽고 든든했다.

이번 선거때 좀 힘든일로 시골에 머무느라
투표를 못했다.
그래서 상경하자마자 아들에게 제일 먼저 물었든게
몇번 찍었냐는 소리였다.
평소 나랑 집 분위기가 보수적였기에
난 이넘도 그 보수에 물들여졌다고 생각했다.

"너 몇번 찍었니?"
"2번 찍었는데요
"뭐시라? 1번 아니고 2번을? 에라이 나쁜넘아"
자식은 부모 소유물이 아니라고들 한다.
이론상으로사 100번 지당한 말이다.
근데 감정상으로는 어디 그게 그런가?
부모가 뭔 말을 하면 자식은 따라줘야 한다는게
여태 동방예의지국의 모습이라 생각했기에
당연하게 어미가 1번 후보를 원하믄 아들넘도
1번 후보를 찍어주리라 생각했다.
강요는 안하지만 말이다.
옛날 투표장에 갈때마다 서방한테는
내가 찍을 후보를 꼭 찍어라고 강요와 협박을 했었다.
나중보면 엉뚱한 사람을 찍어서 그날밤 나한테 엄청
불이익을 당했지. ㅎㅎㅎ

근데 이넘도 어미가 원하는 1번아닌 2번을 찍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거다.
너무 섭섭했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인제 이넘도 서서히 자아를 내세우며
어미 둥지를 떠나가는구나.
잘났다 이넘아.

여태 어미말이라면 별로 거역을 안했든지라
더 섭섭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뭐 1번이나 2번이나 나한테 뭔 큰 의미가 있다고
이렇게 열을 내는지 내 자신도 아리송하다만.
"그래 5년동안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볼꺼야"
2번 당선된게 꼭 내 아들표때문에 그러기나 한것처럼
그날 하루는 아들을 덜덜 뽁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아들넘이 냉장고에서 케익을 꺼내온다.
"어머니. 케익 드세요"
지넘이랑 눈 마주칠대마다 "이 자슥아 너 그럴수 있니?" 하는
내 표정이 맘에 걸렸나보다.
"비싼걸 뭣하러 사왔어?"
속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익이라 야호~ 싶은데도
말은 엉뚱하게 나왔다.
"크리스마스잖아요. 옛날 기분이라도 내야지요"
아~ 옛날 기분.
그래. 너도 옛날을 생각하는구나.
그만 아들한테 미안한 맘이 쨘~하고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옛날에...옛날에...울집에 금송아지 있든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아냐.
금송아지는 물론 없고...은송아지도... 동송아지도... 없어.
그렇지만 아들이 있지....

과일이 썩여있는 케익은 맛있었다.
"음 그래 바로 이맛이야"
티비의 광고 흉내를 내는 날보고 아들은 소리내어 웃었다.
모자는 또 이렇게 애증의 사이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실수방님들
다사다난했든 한해가 이제 서서히 가고 있습니다.
올해의 안좋았든일. 속상했든일은 다 망각속에 묻어버리고
새해에는 늘 즐거운일 좋은일만 있으시길 빌께요.
늘 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의복숭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