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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읽어야 할 영남의 현실입니다(펌)


BY mee60 2003-01-07

이름: 노혜경
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3/1/5(일)

[위클리솔 기고글]증오의 재생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제 목 증오의 재생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작성자 노혜경 작성일 2003-01-05 오후 10:13:37


[위클리솔 기고글] 증오의 재생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마음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위클리솔에서 [부산에서 노사모 활동의 체험과 호남의 노무현 압도적 지지에 대한 입장]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영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전술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책과 비전을 매개로 한 경쟁선거였지만, 영남에서의 선거는 달랐다. 부산 노사모가 이번 선거에서 경험한 것은 단순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전쟁이었고, 비록 승리는 했지만 전투의 상처는 아직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피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할 말이 없다. 호남은 좋은 쪽을 선택할 안목을 가졌고 내 고향은 그렇지 못했다고 할밖에. 선거가 끝난 뒤 영남 사람들은 애써 호남의 95%를 거론하며 양비론을 펼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80%에 불과한데 거기는 95%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현장을 발로 뛰며 부산의 바닥민심을 경험한 부산 노사모 사람들은 그런 말들을 전혀 인정하지 못한다. 표가 집결한 이유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결에서 문제는 호남이 아니라 영남이다.

지역감정의 커밍아웃 : 영남패권주의

이번 선거가 낳은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물론 노무현 당선이다. 노무현 정부라는 미래가 우리에게 제공되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가 냉전적 사고로부터 완벽하게 탈피하고 헌법정신에 기초한 평등주의 사상이 활짝 꽃피는 그런 나라로의 도약을 시작했다는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밝은 만큼 어둠의 골도 깊어서, 영남지역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는 노무현 반대표는 앞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고민해온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임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지역감정이라는 두루뭉수리한 가치중립적이거나 양비론적인 언어로 호도해 온 바의 그 부정적 에네르기가 실은 영남의 패권주의적 정서라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알다시피 영남패권주의에 맞서 세 번이나 낙선한 정치인이다. 노무현의 도전이 부산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누군가가 노하우 사이트에 올린 [공터의 노무현]이란 동영상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4.13 총선때의 어떤 순간을 담은 그 동영상의, 명색이 국회의원 후보자가, 그것도 재선의원이 유세를 하는데 단 한 사람의 청중도 없는 그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칼바람같은 섬뜩함을 주기에 족하다.

그러나 바로 그 선거에서 노무현은 낙선했지만 35%를 넘는 득표를 했다. 반면에 이번 선거 기간중 노무현은 이회창 후보보다 훨씬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선거슬로건 자체가 아예 [부산의 아들]이었으며 부산시민들도 그런 노무현에 대해 자랑스러워함이 역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29.9%를 얻었다. 부산노사모의 대표일꾼인 미키 루크(아이디)는 개표결과가 나온 뒤 밤새도록 숨어서 술을 퍼마셨다고 한다. 그러한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낙관한 것은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결과는 어딘가 무서운 데가 있다. 선거가 끝난 다음 영남에서 노무현 당선을 축하하는 분위기보다 호남의 95%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는 것도 무섭다. 이러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지식층과 기층민중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도 퍼져 있다.

누가 내 고향을 볼모로 잡았는가

부산노사모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선거기간 내내 지독하다못해 파렴치의 경지에 이른 흑색선전들과 싸우느라 온가슴이 찢어지고 멍이 들 지경에 이르렀다. 선거가 끝난 지 이미 몇 주나 흘렀음에도, 그리고 승리의 기쁨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처는 참 오래 갈 것 같다. 한나라당은 당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을 아예 영남지역의 패권주의를 부추기는 것으로 잡았고,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소위 조중동은 이를 부추기고 유포시키기는 일에 언론의 본분도 잊고 매달렸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노무현에게 전이시키기 위한 갖은 책략과 호남 혐오증을 유발하기 위한 거짓말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대중이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쳐도, 도대체 왜 증오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이유도 없다. '사랑'을 슬로건으로 삼은 [부산의 아들]이 '증오'를 슬로건으로 삼은 [김대중 양자/알고 보니 호남사람]에 지고 만 것이다. 이회창의 낙선은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자신의 방법으로 삼은 데 따른 심판이라고 어떤 신부님이 말했는데 옳은 말이다.

물론 호남 95%를 비난하는 목소리들 가운데는 지자체 선거에서 10% 이상의 득표율을 보였던 민주노동당이 겨우 1%대의 고전을 면치 못한 것에 대하여 서운해 하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비판은 일부의 감정과잉을 제외한다면 다음 총선을 겨냥한 사전 작업의 의미가 있는 것임을 감안할 때, 호남의 95%를 부정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결국 영남패권주의자들과 그 맹목적 동조자들이라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조선일보라는 말의 생산기구와 한나라당이라는 조직이 있다.

승자의 미덕이 포용이라면, 패자의 미덕은 승복이다. 그러나 저 영남패권주의자들은 도무지 승복이란 것을 모른다. 언제나 모든 것은 남의 탓이지 자신의 잘못은 없다. 겉보기엔 대단해 보이는 95%라는 수치를 문제삼기 위해서는 영남이 이회창 후보에게 준 80% 가까운 몰표 또한 검토해 보아야 하는 것이 공정하다. 이 수치는 비영남권 출신 영남 거주자를 뺀 거의 대부분의 영남사람들에 해당하는, 100% 가까운 수치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호남의 지역감정이 발생한 이유가 단순히 정치권력이 영남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외면한다. 집요하고 잔인한 호남왕따 현상, 80년 5월 광주의 처참함, 개발독재의 희생양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난과 멸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하나됨으로써 극복하려는 감정과, 그런 그들에 대한 멸시와 미움으로 뭉친 영남인들의 감정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를 그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방어적 집결을 같은 것이라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호남의 95%는 바로 2004년 총선때만 가도 결코 재현되지 않을 마지막 집결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움에 쉬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볼모로 잡아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패권주의자들과 그 추종자들의 수가 물론 저 80% 모두는 아니다. 그러나 영남의 목소리를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독점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로 던진 표가 모여 몇 %라는 수치를 이룰 따름이라는 상식이 철저히 부정되고,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이유로 어느 후보를 지지하거나 어느 후보를 반대한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 나쁜 것은, 이런 단순화가, 호남이 노무현에 대한 선호투표를 한 것에 반해 영남은 호남과 김대중에 대한 반대투표를 한 것으로 해석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로 인해 대단히 의미 심장한 긍정적 변화가 정치 문화 사회의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데, 영남지역만은 변화의 뒤편에서 더욱 완고해지려고 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의미와 호남 95%의 의미를 영남인들이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한, 영남은 오래도록 21세기 첫 정부를 선출하는 선거의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증오였다고 하는 멍에를 지고 가야만 한다.

영남이여, 강자의 무지에서 벗어나자

영남이 이토록 완고한 것은 지난 몇십 년간 부산과 영남이 처한 '무지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남은 박정희 시대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상층부를 지속적으로 보충해온 지역이다. 현대, 대우, 삼성, 엘지 등 재벌 그룹들이 영남권을 기반으로 급성장했고,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진학한 사람들을 주로 사원으로 채용했으며, 고위직 공무원의 주된 출신지도 영남이 태반이었다. 성골이니 진골이니 하는 말들이 술자리에서는 공공연한 농담이었던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이런 기득권의 공고화로 말미암아 영남 사람들은 일종의 강자의 무지라 부름직한 어떤 맹목의 심리를 지니게 되었다. 애써서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적 승자의 자리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무디게끔 만들기도 했다. 영남패권주의를 공고히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정치인들과 조중동 족벌 언론의 합작은 이들을 더더욱 정치맹의 자리로 몰고 갔다. 호남이 20세기 초반 유럽의 유태인이었다면, 영남은 21세기 초반의 미국인에 비유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나는 아프간 침공에 대해 90% 이상의 미국인이 찬성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 일이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약소국들에 대하여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한 행위들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약자가 강자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알아야 하는 데 비해 강자들은 일부러 약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익힐 필요가 없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들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이런 무지가 바로 폭력의 근원임을 강자는 모른다. 반미도, 친미도 아닌 혐미의 감정 한편에는 정의를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느끼는 강자의 잔인함을 저 16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서까지 발견해야 하는 공포가, 다른 한편에는 타자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에서 오는 무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그들의 복된 환경에 대한 혐오감이 있다. 테러는 물론 죄악이지만, 테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미국에 저항할 길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절망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90% 미국인들의 텅빈 머리와 닫힌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느꼈던가. 같은 감정을 내가 살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서 느껴야 하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슬픔이다.

우리 부산 노사모는 노무현에 대해 자랑하고 싶었고 자랑했다. 그러나 부산사람들은 노무현에 대해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에 대한 부산과 영남의 대접은, 노무현에 대한 통념과 노무현이 제공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없음이 낳은 자연스러운 무지의 결과일 뿐이다.

마음의 전쟁은 계속된다

부산 노사모는 처음부터 그런 슬픔을 모태로 탄생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노무현의 4.13 총선에서의 낙선에 분노를 느꼈을 때 우리는 분노뿐 아니라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함께 느꼈다. 비록 노무현이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지만, 영남인들의 투표행태에서 드러나는 패권주의적 경향을 잘 해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안정적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지역을, 평균적인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전자개표 조작설을 어지간한 지식층까지도 진지하게 믿는 지역, 북한에 대한 식량과 중유의 지원이 북한 군대를 살찌우기 때문에 굶게 해야 한다는 말을 비난당하지 않고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남게 해서는 안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노사모는 지금 해체냐 변화냐 발전이냐 라는 존재문제로 진통중이지만, 부산의 노사모 회원들에겐 노사모라는 이름이 있든 없든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까지가 호남차별주의와의 전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영남패권주의와의 전쟁이다. 다만 호남의 95%가 이제는 호남 사람들의 문제라면, 영남의 80%는 온국민의 문제인 것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