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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고객?


BY 나의복숭 2003-01-23

그날
은행에 볼일이 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신세에 비례해서
점 점 높아진 은행 문턱이라 의식적으로도
잘 안갈려고 했지만...
본인이 직접 나와야한다니 서민이 용빼는 재주있나?

아침이라 그런지 번호표가 무용지물일정도로
한산했다.
내 앞의분이 볼일을 마치니 아가씨가 돌돌말린
달력과 작은 사은선물을 주며 깍듯하게 인사를한다.
신년이라 손님에게 하나씩 돌리는갑다.
마침 집에 달력이 없는데 잘 됐구만....

볼일을 마쳤다.
당연히 나한테도 달력을 줄줄알고 서있었는데
도무지 줄 생각을 않는다.
까먹은건가?
보아하니 아가씬거 같은데 나만큼 정신이 없구만...
"저어....달력 안주시나요?"
뭐 달라는데 어찌 당당할수 있는가?
좀 미안한 눈길로 멋적은 웃음을 짓고서 얘길했는데...
"손님. 달력은 우수 고객에 한해서 드립니다"
정중하지만 차거운 창구 아가씨의 음성이 귀를 때린다.
결국 난 우수고객이 아니니 받을생각말고
존말할때 그냥 집으로 가란 소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수고객...그렇구나.
난 우수고객이 아니고 별볼일없는 고객이지....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였다.
그까짓 달력하나 아무렇지 않을수 있다.
얻을려면 얼마든지 얻을수 있지만
직접 내 자신의 처지를 눈으로 목격하고나니
왜 그리 처량하고 스스로가 불쌍해 뵈이든지....
괜히 이야기해서 본전은 고사하고
형편없는 내신세 확인만 해버린꼴이다.

우수고객.
그래... 나도 옛날엔 우수고객였지.
명절이나 해가 바뀌면 선물꾸러미 받았고
은행가면 사모님 사모님 그러면서 굽신거리든데
역시 인생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구나.
그때 혹 내가 잘나서 대우받는다고 거들먹 피운적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내 꼬라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은데
돈에 따라서 사모님이 될 수도 있고 거지 손님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게 세상이치이겠지?

인제는 내 인생에서 두 번다시 우수고객은 될 수없을거 같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슬프게 한다.
아...복권이나 사볼까?
그날도 오늘같이 비 오고.....맘이 춥고 쓸쓸한 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