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출범하여 한달여가 되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정부가 출범하면 언론에서는 통상6개월정도의 정부-언론간 밀월기간을 준다.
그러나조선일보는 추후그들에게 다가올 언론개혁의 칼끝을 염두에 두고 공격이 최선의 수비인듯 연일 정부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재벌, 그다음의 개혁의 대상이 누구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위기의식에 몰린 조선일보는 연일 초강경 공격을 퍼붓고 있으나 조선일보에게 올해는 그 오욕의 역사 가운데 가장 힘든 한해가 될 것 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수구 언론 세력들의 올 일년의 예후는 「언론개혁운동」에 대한 그들의 자세에 따라 달려있도록 돼 있다.
조선일보의 올해 운신(運身)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인터넷의 확대로 인해 기존 신문지들의 초법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고 신문 구독자수가 계속 감소하는 여건에서출발한다,
현재의 안티조선운동과 젊은 네티즌의 증가로 인한 국민적 의식의 진보 추세가 조선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지금 일반 시민들이 조선일보를 보는 시각은 「늙어빠진 신문」의 모습이며, 빈번한 오보와 그에 따른 소송에 기가 죽어있는 패배자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아래 peach 48 님 글도 일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조선일보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 이 '찌라시'를 일방적으로 매도만은 못하게 되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 전체를 대비 하여 보았을때 이 조선일보는그야말로 찌라시 임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일보는언론개혁의 1차 목표이다.
왜 조선이냐고?
그것은 이 찌라시가 보여준 그동안의 행적에서 모두 나타나 있고 이제 조선일보는 기로에 처해 있다.
조선일보가 기득권 옹호를 벗어난 진정한 서민의 대변자가 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적 열망에 대해 받아들이고 스스로 각성하여 거듭나는 것만이 '안티조선'의 거친 물살을 가라앉히고 안그래도 더러운 조선일보 역사에 다시 먹칠하지 않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또 조선일보는 현재까지도 자신 스스로를 가리켜 '민족지'라 이야기해왔는데, 이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이다.
식민기간 친일 행적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탄생 자체부터도 총독부 언론 정책의 한 일환이었다.
세계사에 있어 식민통치사상 가장 악랄했다는 일제가 민간언론의 재 창간을 허가한 배경에는 그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
(조선일보 초기 진보적 성향의 편집진들이 있을때는 어느정도 민족지의 모습을 지향 하였다.그러나 총독부가 조선일보를페간시키고 그후 장사꾼 방 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조선일보는 친일 기관지가 된다)
조선인들에게 언로를 열어준다는 미명하에 당시 지하신문 형태로 암약하던민족진영의 언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를 정책에 참고할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컨대 아궁이가 터지기 전에 굴뚝을 만들어 연기를 내빼자는 것이다.
재 창간 배경도 문제지만 창간 주체도 문제다.
방응모,조진태, 예종석, 유문환, 최강 등 대부분 '대정(大正)실업친목회' 회원들이 발기인이 되어 조선일보를 설립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대정실업친목회라는 단체는 당시 조선내 대표적 친일기업들의 친목단체였으며, 조선일보 초대 사장을 지낸 조진태, 초대 부사장겸 발행인을 지낸 예종석 역시 대표적인 친일파들이다.
조선일보가 창간기념일 때마다 유독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수치스런 대목 때문 아닐까?
독립운동가는 '범인'이고, 일왕은 '천황폐하'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가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밀명을 받고 일왕이 탄마차에 폭탄을 던진 사건은 일왕에 대한 한인 최초의 쾌거였다.
이를 결코 가벼이 방치할 수 없었던 조선일보, 마침내 기사 하나를 작성했으니 그 제목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
1932년 1월 10일자 - "천황폐하 황행 도중 / 노부에 돌연 폭탄 투척 / 8일 오전 동경 경시청전에서 / 어료차 별무이상 / 범인은 경성출생 이봉창 / 현장에서 체포".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굴욕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민족정론지'라는 개념이 바로 이런 걸 의미했던가.
참으로 웃지 못할 또 하나의 희극은 블라디보스톡 방송과 중국의 언론 등 이웃 나라 매체들은 - 조선인의 애국적 기개 등을 높이 사며 - 이 사건을 매우 긍정적으로 다뤄줬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언론들도 우리 민족의 투쟁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마당에 '천황폐하'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니, 이런 신문이 어디 있는가?
(정운현,"조선일보와 사주 방응모의 친일행각"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설립자 방응모의 친일행각,
조선일보 설립자 방응모가 자매지'조광'에 직접 쓴 친일논설로는 42년 2월호에 쓴 '타도 동양의 원구자'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방응모는 일본을 가리켜 평화의 사도로 묘사한다.
아울러 일본의 대동아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조선민중은 물자를 절약하고, 저축을 더욱 강화해야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한편 44년 8월호에서 '조광'은 "국어(일본어)를 상용합시다"라는 권두언을 통해 대만의 일어 해독자는 전체 인구의 6할에 달하는데, 왜 조선민중은 이보다 훨씬 뒤떨어지자며 야단치듯 훈계하고 있다.
더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선일보측은 방응모를 가리켜 "암흑기의 민족에게 언론의 횃불을 밝혀 민족의 길을 비춘 선구자"로 칭송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운현,"조선일보와 사주 방응모의 친일행각"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자..이제 마지막으로 친일의 극치를 보자.
조선일보 자매지 [조광] 1940년 10월호
"일한양국은 양국의 행복과 동양 영원의 평화를 위하여 양국 병합의 조약을 체결... 데라우찌 총독은 조선통치의 대본을 정하여 창업의 토대를 쌓은 위대한 공적을 남겼거니와....30년 동안 7대에 이르는 총독들은 그 시대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특색있는 정책을 실시하여 그 결과는 오늘날과 같은 문화조선 을 건설하였다.
2천3백 반도 민중은 한결같이 내선일체를 실천해 황국신민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사려 깊은 시정(한일합방) 30주년을 맞이하여 각각 자기의 시국인식을 반성하고 시국의 장래를 투명하게 관찰하여 일층 각오를 굳게 하고 또 일단의 노력을 더하여 그 영예를 선양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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