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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전 당신을 만날겁니다.


BY gkqrkd1738 2003-05-09

벌써 5년전의 일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첫 아기를 만나려고 할때가 .......

첫 아이 치고 별나지 않은 아기가 있을까마는 입덧이 무지 심하던

3월의 어느날 신랑의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하더군요

타지에서 결혼을 하는 까닭에 친구들이 갈곳이 없는지라 모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어요.

그때 저는 임신 7개월

신혼이라 할 일이 없어 매일 먹고 자기만 하던 전 신랑 친구들을

반기기 위해 시장을 보러 갔습니다.

배가 부른 지라 많이 들지도 못하고 시장을 3번을 오고 갔지요

그리고 10명이 넘는 친구들 먹일 음식을 하느라 분주히 오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후 부터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였어요

저녁상을 다섯번도 더 차린 것 같아요.

새벽 2시가 넘도록 거기에 간간히 술상에 안주까지 만들어야 했어요

매일 놀기만 하던 전 무척 피곤했지만 내일이 지나고 나면 쉴수 있다

는 생각에..........

결혼을 하는 친구가 신랑의 고추 친구라 결혼식에도 같이가야 한다더

군요.

혼자서 있기 싫었던 터라 빨리 준비를 하고 신랑을 따라 나섰지요.

아침 열시에 하는 결혼식이라 10명이 넘는 장정들 술국에 반찬에

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피로연도 하고 신혼여행을 경주로 간다면서 첫날은 친구들이랑 지내

기로 했다나요 신혼부부가

신랑은 혼자두고 가기가 싫다고 또 데리고 나섭니다.

거기서 그만두지 저도 좋다고 또 따라 갔지요

경주까지가서 저녁 8시가 넘어 모두들 술도 한잔하고 늦은 저녁을 먹

으로 식당으로 갔어요.

식당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갑자기 다리가 떨려서 한발로는 설수가

없더군요.

겨우 신랑의 부축으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신랑과 저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어요

그러나 그 다음날 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며칠 쉬고 나면 낳

으려니 했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3일이 지나자 혼자서는 자리

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갈수가 없었어요

다리를 들지를 못하니 걸을 수도 없고 질질 끌고 가지만 화장실 앞

문턱에서는 어쩔수가 없더군요

더군다나 허리까지, 혼자서는 바지를 내릴수도 없을 정도로 굽혀지

지 않았어요

병원을 찾았지만 이유를 모른다는 거지요

개인 병원을 다닌 저는 의사가 임신 중독중도 아닌데 며칠사이에 이

러는 산모는 처음 보았다면서 큰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신랑과 전 산부인과만 보는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7개월이 넘은 저에

게 엑스레이등 많은 검사를 하고는 아기가 신경을 깔고 앉아서 그렇

다는 게예요.

병원에서 입원을 하라고 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전 집이 편하다

고 갔어요

그러나 신랑은 회사도 가야하고 전 혼자서는 신랑이 차려둔 밥도 먹

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래서 달이 찰수록 몸무게가 늘어야하는데도 전 8개월이 지나자 5키

로가 빠지더군요.

다시 병원을 찾은 날.

의사님은 절보더니 않되겠다고 수술을 하여햐 한다고 하더군요

아기는 만7개월만 지나면 인큐베이터 안에서 얼마든지 자랄수 있다구

요.

신랑과 전 신생아실로 가서 인큐베이터안의 아기를 보는데 이마에 주

사 바늘을 꼽고 다른 신생아들보다 너무 작은 것이 손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도저히 우리 아기를 그렇게 할수는 없었어요

내가 힘들어도 더 참아야지.

의사님께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9개월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만 9개월 정도가 되서 아기가 2.5키로가 되면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전 울면서 먹었어요

아기를 키우려고.

그날 부터 신랑의 고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울면서 먹는 나를 두고 회사 갔다가 집에오면 저녁밥에 청소에

절 씻기는 일까지

허리도 숙이지 못하는 절 세수 시키고 발씻기고 이틀에 한번씩

목욕에 머리 감기기.

머리가 무척 길었던 전 신랑이 머리를 말려주고 있을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하루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세수를하고 변기통 위에 앉아서 정성스

레 비누를 칠하고 뽀독뽀독 발을 씻기는 신랑을 머리위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들더군요.

내가 다 낳으면 꼭 신랑발을 한번 깨끗이 아주 깨끗이 씻어줘야지 하

는 생각이 드는게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예정일이 6월 27일인데 5월 21일 수술을 하기로

했어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너무 무섭더군요.

하신 분들은 아실테죠.

마취도 하지않고 수술대 위에서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숨도

제데로 못쉬겠더라구요.

그렇게 마취가 되었다가 의식이 돌아오는데 글쎄 제가 아직도 수술실

에 있지 뭐예요.

아직 배도 꿰메지 않았는데 벌써 마취가 깬겄이 였어요.

다시 마취를 할수도 없고 그냥 꿰메는데

숨을 못쉬어서 넘어가더군요.

위의 불빛이 아른아른하고 아 죽는가보다 하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히 움직이며 소독약을 목안까지 깊숙히 넣더니 훅 하고숨이 쉬어

지더군요.

그리곤 회복실로 올라가는데 정말 모든것이 귀찮더군요

너무 아프니까 산다는 것도 아기도 신랑도 모두 보기 싫더라구요

그리고 3일 밤,낮을 너무너무 많이 아팠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기가 옆에 와 있더군요.

식구들도 모두들 다녀갔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때쯤 아기만 낳으면 괜잖아

진다던 제 다리는 여전히 들리지도 않고 거기다 수술까지......

몸조리는 시어머님이 해 주신다는데 70에 가까운 시어머니꺼서

아기에 빨래에 청소에 다리도 온전치 않은 나까지 너무

서글프더군요.

하여튼 집으로 돌아와 미역국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 아기를 보는데

예쁘다기 보다는 불쌍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아무래도 난 이렇게 살아야 할것 같은데 내 혼자몸도 어쩌지 못하는

데 차라리 저 아일 낳지 않았다면 .....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랑도 아이도 그리고 부모님도 모두 불쌍했어

요.

그냥 죽고 싶은 마음 뿐인데 이런 몸도 부모라고 내가 죽으면 정말

저 아이는 어쩔까 하는 생각에 매일매일을 눈물로만 살았죠.

그런데 시간이 약인가!

아기가 백일이 지나자 혼자서 자리에서 일어날수도 화장실을 갈수도

있게 되었죠

아기가 5개월쯤이 될때까지 전 아기를 제데로 안아주지도 못했어요

다리에 무리가 간다나 5개월쯤 다리를 무척 많이 절었지요

남들은 제가 처음부터 다리를 저는 여잔줄 알고 신랑을 이상하게 쳐

다볼 정도 많이 절었어요.

신랑이 아이를 안고 옆에는 다리를 무척이나 많이 저는 여자를 데리

고 시장을 가면 아줌마들이 뒤에서 꼭 한소리하더군요.

여자가 돈이 많은가 보다고

그래도 신랑은 항상 저와 같이 다니는 것이 좋다고 꼭 같이 다녔지

요.

다행히 한달이나 빨리 낳은 아기도 잘 자라 주었고 이젠 저 또한

정상인이 되었고 너무 감사해요

가끔식 신랑 발을 꼭 한번 깨끗이 씻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신랑은 싫다고 해요.

아이에게도 더 없이 좋은 아빠고 저에게도 더 없이 좋은 신랑인

이사람을 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만날겁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다시 부부로 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언젠가는 꼭 신랑의 발을 한번 깨끗이 아주 깨끗이

씻어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