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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생일날 아침에 아내가 보내온 이메일에는...


BY 上善若水 2003-05-27

나 늙으면 이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고향닮은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운동 시킬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 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할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해서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볼거야.
그래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솟아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거야.

나 늙으면 이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웃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 모자 두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매고
이른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 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좀 잘해.

생일 축하해. 사랑해.

아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