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2003-07-14 16:22:30, Hit : 439, Vote : 12)
"쥐새끼"와 희망 돼지
굿모닝 시티 사건이 일파만파가 되었습니다. 청와대, 여당인 민주당, 제 1야당인 한나라당이 한꺼번에 긴장하는 모습에 우리 국민들도 걱정되고 긴장됩니다. 아마 안전 지대에 있는 정치 세력이란, 돈을 받고 싶어도 받을 권력이 없는 자민련과 아예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민주노동당 뿐인 듯 합니다.
정치 자금 스캔달에 한 두 번 당해 본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아니고, 그 액수 규모도 사실 어찌보면 “껌값”입니다. 그런데 이번 건이 특별히 우리들의 가슴에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면, 몇 백억의 숫자 앞에 고작 3억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 순식간에 쪼그라든 “희망돼지”의 초라한 모습 때문일 듯 합니다.
내가 낸 꼬깃꼬깃 배추잎 몇 장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었구나 하는 생각에, “노무현 당선자” 이름이 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살았던 지난 겨울은 따뜻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정말 국가 보조와 희망돼지 모금액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재벌이건 누구에게건 “빚이 없다”라는 노대통령의 말에 우리들은 정말로 뿌듯했습니다.그런데…
그래서 지금 인터넷 게시판에 옴팡 상처 받은 마음으로 독설과 악담을 퍼붓는 분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 독설과 악담은 또 독설과 악담으로 화답받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까지야 아니겠지만, 최소한 정치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제 크게 한나라당, 노무현과 신당 세력, 반노 비노 세력 등으로 세 쪽이 나고 있는 형국인 듯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망각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민족”입니다. 무슨 기념식 때마다 정치가들의 입에 발려 나오는 그 추상적이고 애매한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구심력을 가지고 같이 생존하면서 인간된 삶을 안팎으로 구현하는, 그야말로 “홍익인간”을 펼칠 구체적 통합의 단위로서의 민족 즉 우리 전체 말입니다. 이렇게 민족으로 똘똘 뭉쳐 최선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탁상공론이기는커녕 지금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로 다가와 있는 지금입니다. 그러니 잠깐만, 머리를 식히면서 좀 큰 시야에서 지금 대한민국을 보고자 합니다. 지금같이 몇 백억 몇 십억 하는 골치아픈 숫자가 오고갈 때에는 한 10분만 “고담준론”에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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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당시 미국의 한 정보기관원은 “한국인들은 쥐새끼와 비슷해서 결코 뭉칠 줄을 모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행간에 숨은 뜻은, “그러니 적당히 판만 짜면 이리저리 분열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다”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만약 민족 전체의 운명이 좌우되는 중대한 국면에서 정말 우리들이 그렇게 사분오열되는 고질적 행태를 보여왔다면 그 “쥐새끼”라는 비유는 심각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은자의 나라” 한반도가 심각한 지정학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입니다. 이미 중국이 무릎을 꿇었고 일본은 아예 양놈들과 한패가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립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라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수구파는 문을 닫아 대처하자고 하고 개화파는 문을 열어 대처하자고 하다가 급기야 서로를 주적으로 몰아 죽고 죽입니다. 보다못한 동학 농민들이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고 주체로 나서려하자, 이번에는 임금이라는 자가 한나라도 아니고 아예 청나라 일본 모두의 군대를 불러들여 그걸 짓밟아 버립니다. 그리고 곧이어 청나라 일본의 전쟁으로 나라가 쑥밭이 되고, 위정자들은 친러파 친미파 기타 등등으로 갈라져 이리저리 잇권을 챙깁니다. 그 와중에서 왕비가 일본 깡패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임금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 주제에 “이게 바로 以夷制夷”라고 흰소리를 합니다. 다시 민족 주체를 세우기를 촉구하는 독립협회가 나오자 그 갈라져 싸우던 위정자들 임금이 한편으로 뭉쳐 또 박살을 냅니다. 그 댓가를 우리 민중들이 36년간 피눈물로 치러야 했습니다.
해방 직후 일본 총독부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조선의 일본인들의 재산과 신변을 보호하면서 철수할 것인가였습니다. 최대의 위험은 조선인들이 하나로 뭉쳐 지난 36년간의 원한을 풀겠다고 나설 가능성입니다. 각종 모략이야말로 일본인들의 특기 중 하나입니다 – 군대에는 아예 “모략과”라는 부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모략과”가 짠 작전은 대충 이랬다고 합니다. 좌익과 우익을 모두 지원하여 싸움을 붙인다. 그리고 좌우합작이나 민족 전선 이런 것으로 조선인의 역량을 하나로 집결하려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각종 흑색 선전 마타도어를 통해 무력화시킨다. 또 서로 그렇게 싸울 수 있도록 각 세력에 자금과 테러 기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당시 일본인들이 벌이는 모략이라는 것은 명분이나 정도와는 거리가 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열한 것들입니다. 미인계, 테러, 거짓 정보 살포, 뇌물, 또 그 뇌물을 이용한 폭로와 협박 등등.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방 직후의 치안과 정부 수립을 준비하던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이끌던 몽양 여운형 선생은 해방 며칠 후인 8월 18일 밤 테러를 당해 중상을 입습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당시까지 치안과 행정권을 쥐고 있던 일본인들이 여운형 선생을 테러할 이유는 없으니, 이는 필시 조선인들이 한 짓입니다. 도대체 누가 한 테러일까요. 또 무슨 명분일까요. 좌익일까요 우익일까요. 노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미군정도 일본인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한반도 남단을 뜻대로 요리하는 작업에 이용합니다. 미군정청의 정보과였던 G-2는 이승만 김구 산하의 테러 조직 백의사(白衣社)에서 시작하여 남로당의 핵심에 이르도록 두루 공작의 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구체적 활동이 어땠는지는 다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후 몇 년간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 최악의 증오와 반목을 겪어야 했으며 급기야 동족 상잔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음모이론이라고요? “38선을 베고 쓰러질” 각오로 그 사태를 막아보려던 여운형 김구 선생 같은 애국자들은 정말로 정체모를 흉탄으로 거꾸러지고 말았습니다. 케네디의 암살이 “음모”였는지는 몰라도, 이 두 분의 죽음은 정말로 “쥐새끼”같은 분단 세력의 음모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이후 더 이상 한반도에서 “민족”이라는 말은 서로를 끌어안고 홍익인간을 이룬다는 아름다운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이 말은 같은 동포들 중 일부를 “민족의 원수”로 몰아부쳐 서로 죽이고 반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의 분단에 이해를 갖는 세계적 냉전 세력은 아주 손쉽게 그 의사를 한반도에 관철시키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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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제네바 협정 그리고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으로 평화가 안정되는 듯 보이던 한반도는 2002년 다시 지정학적 구조 변동의 물결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전과 다른 색다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원래 이럴 때마다 한반도 전역을 누비던 “쥐새끼”들의 물결 대신, 촛불과 희망돼지의 노란 물결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냉전과 분단의 존속을 원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당혹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쥐새끼”는 조선의 민족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원래 지정학적인 요충지에 있는 나라는 다 그렇게 사분오열되어 정권이 들어서도 “호구”같은 게 들어서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월드컵 4강 신화를 거치며 “꿈은 이루어진다” 어쩌고 하면서 간덩이가 부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언감생심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 체제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촛불 시위 때 범대위 등등의 파동에서 볼 수 있듯, 분명히 그 물결 안에는 여러 색다른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호남의 한을 풀고자 하던 이도, 노무현의 주름살이 좋았던 이도, 화끈한 부산 싸나이도, 인터넷 정치의 희망을 가진 이도, 골수 운동권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보통 때 같았으면 개와 고양이처럼 싸웠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입니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가 급박해지는 시점에서 이들이 여늬 때처럼 “쥐새끼”로 흩어져 싸우는 대신 한반도의 탈냉전과 평화를 외치면서 뭉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는 정몽준이 사퇴하고 난 선거 당일에 정점에 달했습니다. 단순히 뭉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컴배트를 먹은 바퀴벌레”처럼, 옆 사람들에게도 컴배트를 먹여 냉전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따로 찍을 곳이 있던 민노당 지지자들의 상당수조차 피눈물을 뿌려가며 그 대열에 합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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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미국 언론, 보수적 일본 언론, 그리고 한나라당은 대선 직후 낭패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당선자와 한 목소리로 미국의 “맞춤 봉쇄”에 대해 정면으로 면박을 주는 대담성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 하나로 뭉쳐지던 탈냉전 세력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대북 송금 특검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거치면서 진보 평화 세력과의 사이에도 반목이 생깁니다. 미국 방문 이후 일본 방문 이후에도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로 또 갈등과 반목이 생겼습니다.
개혁 신당 논의가 진행되면서, “동교동”과 “신주류”의 갈등은 거의 전쟁 상태에 가깝게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호남 홀대론”이 맞물렸고, 거기에 대북 송금 특검 문제가 또 엮이면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과 신주류의 갈등은 또 다시 해묵은 영 호남의 지역 대결 구도를 완전히 재생시키고 말았습니다.
몇 번에 걸친 대규모 노사 쟁의와 부동산 경제 등의 문제로 계급 계층간의 반목도 갈수록 심해집니다.
그 와중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작년에 정말로 민족사 차원에서 오랫만에 나타난, 탈냉전, 통일, 평화 번영을 향한 우리 “민족”의 통합된 역량이 다시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통적인 국제 정치 이론에 “균형추”(free wheeler)라는 것이 있습니다. 강대 세력들이 팽팽하게 맞선 사이에 낀 작은 나라가 그 작은 힘에도 불구하고 세력 균형의 향방을 결정 짓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강대국들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성가신 경우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이걸 그냥 콱 밟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기에 끌려다닐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나라나 이 균형추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성원들은 내부적으로 단단하게 통합이 되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대국들의 사분오열 작전에 휘말려서 또 다시 “호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은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동북아에서 가장 미약한 나라들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무기력하게 강대국들에게 끌려다닐 숙명에 지배당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뭉치고 하나되기에 따라, 그야말로 “네 푼 짜리 힘으로 천근을 들 수도(四兩拔千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희망은 정말로 요원하기만 해 보입니다. 한나라당, 노무현과 개혁 신당, 동교동의 구주류, 진보 세력의 네 진영간의 친소(親疎) 관계를 한번 거리로 재어 그려봅니다. 분명히 지난 대선 즈음에서 우리는 한나라당을 한편으로 하여 다른 쪽에서 엮여있는 일군의 “개혁 진영”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똑같은 거리가 아닐까요? 反노를 외치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는 얼마전 아예 노무현을 탄핵하자고 하던 이도 있었고, 지금은 이 대선 자금 건을 끝까지 한번 파보자고 목소리를 올리기도 합니다. 또 노무현의 개혁 신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박상천 정균환 등을 최병렬 이재오보다 호감을 갖고 대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민노당 지지자들이 대북 송금, “희망돼지 사기 사건”, 한나라당 부정부패 사이에 다른 잣대로 대응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전면적인 “만인의 만인을 향한 반목”사태가 벌어지니, 그 “개혁 세력”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멋적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진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다는 음모 이론 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남한이 독자적 균형추의 역할과 멀어져가는 사태 진전은, 분명히 주변의 강대국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바람직한 상황일 것은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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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짧고 범상한 저는 이 자초지종의 시시비비와 그 경중을 모두 가려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서로 간에 그러한 악감정과 결별의 이유들이 쌓일대로 쌓여온 상황이므로, 무슨 아이들 훈계하듯이 “싸우지말고 친하게 지내라”는 말로 풀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물론입니다. 또 그들이 각각 내세운 이유가 가벼운 것들도 아닙니다. 대북 정책의 과정에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낡은 지역주의 정치 세력을 일소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대미 외교에서 자존심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며 대선 자금의 공정성을 일점 의혹없이 밝히는 일에 이르면 또 닐러 무삼하겠습니까.
그런데 구한말에도 해방 직후에도 그렇게 싸울 이유들은 많았습니다. 아니 그 당시의 싸우던 문제들은 오늘의 싸움 제목들은 소꿉 장난 같은 것들로 보일 정도로 심각하고 중차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희생되어버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덮치는 격랑을 헤쳐나갈 “민족”의 조각배에 올라탄 우리들은 그 배의 바닥을 뜯어내어 서로를 후려치는 무기로 썼으며, 그 결과는 모조리 그 후손들이 감당해야 했다는 것 말입니다.
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반도에 작전과 음모를 펼치고 있는지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동물들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난이 오는 것을 미리 아는 혜안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러한 본능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역사”라는 새로운 본능을 개발했습니다. 지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2003년의 한반도의 우리가 50년전 100년전에 보았던 그 “쥐새끼”로 다시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데자 뷔(déjà vu)의 느낌도 본능일 듯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통합을 이끌어낼 묘안이나 구체적 방안 같은 것을 제시할 수가 없으므로, “고담준론”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하지만 “쥐새끼”는 결코 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지금 풀이 죽어 고개 숙인 저 희망 돼지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고 힘을 내어서 다시 한반도 전체에 우글거려보자고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