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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교육의 문제와 세계화


BY 블랙잭(퍼옴) 2003-08-01

컴퓨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사무실 가정 어디서나 컴퓨터가 있고, 각기 다른 용도로 모두가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가 컴퓨터를 조립할 줄 알거나, 시스템에러들을 체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현대인의 필수가 됐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는 운전방법을 알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잘 모르고 별로 흥미도 없다.

컴퓨터나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구조와 조작원리 등에 대한 숙지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 아닌가.

직장에서 맡은 일, 친구와의 약속, 가족과의 대화, 새로나온 게임프로그램의 숙지, 좋아하는 TV시청 등을 부족한 시간에 모두 해치우는 것도 대견할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최선책보다는 차선책을 택한다.

컴퓨터에 고장이 생기면, 별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동네 컴퓨터 가게에 전화를 한통 날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에 노랑물을 들이고 귀에 은귀걸이를 한 신세대풍의 아르바이트생이나, 몇일씩 머리를 안감은 듯한 가게 주인이, 자신의 게임을 방해해 불쾌하다는 등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나타나, 컴퓨터를 보는 순간 눈에 번쩍이는 인광을 풍기며 문제의 핵심을 바로 짚어주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라인부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시죠”
”네 ?”
”아, 컴퓨터가 부팅이 되지 않은 이유는 말이죠. 콘센트에 플러그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

이런 것이다. 컴퓨터/자동차/핸드폰 등등은 이미 없어서는 안되는 현대의 필수 요소이고,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지만, 특별한 관심이나 그쪽 계통으로 직업을 삼을 것이 아니라면 굳이 사용방법 이상에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마찬가지로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공식 용어로 영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영어를 잘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모두가 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겠는가.

영어나 중국어등 외국어를 잘해서 직접 그들 수준의 회화를 구사하면 좋겠지만, 컴퓨터나 자동차 기사들처럼 더 잘하는 사람들이 통역이나 번역을 해서 의미를 무리없이 전달 받을 수 있다면 세계화는 여전히 진행되는 것이고, 나는 여전히 세계화된 세상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쓸 때 그것들이 고장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 가능성에 대비해서 1000페이지가 넘는 컴퓨터 에러 슈팅 트라블이란 책을 산 다음, 멀쩡한 컴퓨터를 사형 시켜 문제 가능성을 문제 현실성으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갖은 이들이 가끔 있기는 하다.

그 때문에 동네 컴퓨터가게 총각의 빈천한 살림에 한움큼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그와의 친분을 전쟁 공훈 훈장처럼 명예롭게 마음에 건 다음, 괜히 컴퓨터가게 주인 이상실력을 넘보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는 그들을 일명 ‘매니아’라고 부른다.

매니아는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몽땅 쏟아 부으면서 컴퓨터에 살아있는 박사가 되고 그 뿌듯한 마음이 충분하다는 느낌으로 이어질 때  약간의 휴식으로서 가끔 테트리스나, 온라인 고스톱을 하며 밤을 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층들이 존재키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는 에러에 대비해, 서비스센터 전화번호나 동네 컴퓨터가게 번호를 수첩에 살짝 적어 놓으면 그만이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리니지를 삼박사일동안 즐긴다거나, 온라인 바둑을 가볍게 둔다거나, 워드프로그램으로 레포트를 쓰면 되는 것이다. 막연한 가능성에 현재의 중요성들을 팽개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국제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머릿 속에는 슈트케이스나 여행 가방을 들고 한국 전역에 외국인들이 오가고, 한국인들이 외국 구석구석을 동네 수퍼마켙 드나들듯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국제화 시대에, 수도권 하늘 아래 같이 숨쉬는 친구녀석도 강남에 살고 일산에 성남에 산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두번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인연도 없고 비즈니스 관계도 없다면 외국인을 상대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만나서 “Hello”한마디를 던지고는 수줍은 듯 도망쳐 버리는 현실을 저주하며 자신의 실력을 학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국제화 시대니만큼 지구를 하나의 나라로 본다면 옆집에 사는 순이와 지역언어로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국제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을 만나서 몇마디 수다를 위해 수년 동안을 외국어 공부에 투자하고 겨우 입력된 자기소개 정도를 유창하게 끝낸 후 꼭 다문 입으로 더 이상 특별한 질문이 없기를 두근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교환하는 그런 것들만이 국제화 속의 삶은 아닌 것이다.

컴퓨터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나, 컴퓨터가 돌아가는게 마냥 재밌고 신기한 사람은 그것에 통달하면 된다.

자동차라면 일반인은 메이커가 만들어 놓은 차량을 운전을 연습해서 편리하게 몰고 다니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외국어라면 전문가가 통역을 하고 번역을 한 자료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재능을 더 크게 발휘하면 된다.

국제화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중이지만, 그것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며, 컴퓨터 문제를 전문가가 해결하듯, 언어적인 문제를 외국어 전문가가 해결함으로서 세계는 잘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인생에서 어느분야를 택하는냐 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분해 결합 못한다고, 자동차 수리를 못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동차가 필수라고 해서, 모든이가 자동차 수리공이 되야한다고 외치면서 유아원부터 개인과외 선생을 구하고 수백만원짜리 견학코스를 못보내 안달하는 나라가 있다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 보아야 할 것인가.

‘체험 지구촌 현장’의 특이한 부족을 바라보는 느낌과 별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말 대신에 ‘외국어’라는 말만 대신 들어간다면 그것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다.

영어 중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국제화시대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통번역을 하면 그것을 통해 핵심이 되는 내용에 다가서면 되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의 첫째가는 인터넷 사용국가이고 그것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네트워크의 전문가나 홈페이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전문성의 교환을 통해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그것은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외국어, 특히 영어에 있어서 만큼은 국민모두가 영어라는 기계의 부품구조에서부터 조립, 수리 등을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영어가 필수라는 것과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은 등호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 외국어 교육 문제점의 뿌리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인과 더불어 보내는 자신이 무역업종에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외국어의 필요를 절감하고 실력부족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뭔가 음모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보내는 나는, 과연 일상에서 외국어의 필요를 느낄 절절한 이유가 있는가.

현실적으로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책장에 수십권의 영어서적을 꽂아 놓고 매달 영어 학원이나 과외를 거르지 않는다면 외국어에 있어서만큼은 나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빅브라더가 배후에 존재하는 셈이다.

한꺼풀만 벗겨보면 외국어의 필요성은 일상 현실과는 관련이 거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취직이라는 관계속에서의 문제일 뿐이고 밥그릇이라는 현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확대 되어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직업 현장에서의 외국어는 전 국민이 매달려야 할 정도로 그렇게 필요한 것이고 어떤 교수가 제기하듯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야 할 정도의 절박함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상사나 무역업종에 종사하더라도 사실 실무자가 아니라면 외국어를 별로 사용할 일이 없고 잘 할 필요도 없으며 실무자라고 하더라도 특수한 직종이나 직위가 아니라면 그다지 사용할 일이 많지도 않다.

또한 일에 따라서는 현지인 수준의 능숙한 언어실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작문실력이면 충분한 경우도 많다고 보아야 한다.

면접을 자주 다녀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외국과는 아무런 교역관계가 없는 회사마저도 토익 800점 900점 이상 우대나 필수를 내거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물론 회사가 커지고 국제적인 비젼을 갖는 것에 문제를 삼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현실성을 벗어난 비젼을 대해 우리는 ‘공상’이나 ‘망상’이라는 용어를 따로 준비하고 있다.

회사가 올바로 사업을 전개하고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젼과 단계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며 그 수준에 적절한 사람들을 식구로 맞아 들이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현재 회사의 규모에 대한 주제파악이나, 앞으로 외국과의 사업 가능성이 오년 후일지 십년 후일지 아니면 국내시장을 지속적으로 타겟으로 삼을지 방향도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직원 채용시 무조건 토익 800점 이상을 필수조건으로 내걸고 오히려 지금 수준의 회사에서 진짜로 필요로 하는 스킬은 “생활 하면서 배워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기업풍토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면,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는 학습자의 노력이나 능력을 탓하기 이전에, 외국어 특기자를 맹목적으로 우대하는 한국 기업풍토에서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축구에 재능이 있는 이가 있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이가 있듯이 외국어능력 또한 하나의 재능으로서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때까지 근 20년을 외국어 학습에 쏟아 문장 몇 개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노력부족이나 IQ문제를 따질 일이 아니다.

축구의 스킬이 시대적 필요성으로 대두된다고 해서 전국민을 축구선수로 키우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외국어 또한 학교의 교육 방식 문제나 학원 수준의 문제이기 이전에 모두를 외국어 학자로 만들려는 환경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가 당장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포멧을 따라 초등학교 수준의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아는 직원 열명보다는 그래픽을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전문가 한사람이 소중하고, 그저 그런 수준의 외국어 능력자 10명 보다는 단 한명이라도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

외국어 실력이 토익이나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쟁취하는 것으로 전락했다는 현실을 놓고 볼 때, 900점 이상의 토익점수를 가진것과 자신의 생각을 외국인과 적절한 표현으로 구사하는 것과는 사실 실제적인 관련이 별로 없다고 하겠다.

토익점수는 이미 취직에 성공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언어능력을 평가하는 변별력은 고득점 취득을 위한 강의라는 편법에 의해 ‘부숴진 방화벽’으로 전락해 버린지가 오래 전이다.


올바른 외국어 교육방향과 국제화

사회가 종교를 최우선으로 삼든 과학을 핵심가치로 삼든,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구성원의 다양성 비율은 비슷비슷 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인간이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각각의 개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제라고 보았을 때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제시하는 한둘의 방향을 우열로 나누어 구성원을 몰아간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는 ‘독재’의 변형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동네 구석구석에 들어선 외국어학원을 오가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에 정진한다면 모든이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수준에 과연 도달 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국민 모두를 20년 동안 그림 공부를 시킨다면 모든 이는 화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비율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외국어에 대해 열등감을 벗어날 정도의 실력을 갖지 않으면 문제를 파헤치기도 쉽지 않고 말하는 자격에 있어서도 논란이 빚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들으면 말이 되는 이보영의 120분 영어회화’, 정찬용의‘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안박사 토익’등등등,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은 사실 영어 정규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타고난 언어능력으로 외국어를 습득할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능력과 개성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들은 ‘언어에 대한 재능과 취미 부족’을 ‘노력 부족’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모든 이들을 방법만 제대로 갖추면 자기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 하다.

그들 책의 진지한 제목을 보았을 때 상술에 의한 입발림이라고 폄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자신이 최고의 기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테크닉한 몇몇 부분을 절대적 가치인냥 침소봉대하고 누구나 자신의 바이블을 선택하면 영어의 지존이 될수 있다는 입발림마저 간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지존들이 활동하는 배경에서 언론과 학자 학교 학원들은 사람들의 불안심리에 편승해 외국어의 중대성이나 위대성에 대한 인기몰이나 이익몰이의 터를 멋지고 공고하게 치장하면서 썩은 뼈대를 덮어 두기에 급급하다.

외국어를 무슨 국제화의 바이블인냥 선전하는 것을 보면 사이비 종교의 말세론을 펼치는 이들보다 침이 더 멀리 튀는 것 같다.

외국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학원이 세워지기는 하지만, 이제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학원이 거대한 세력이 되어 교육계, 매스컴과 손을 나란히 잡고 불안한 학생 학부모의 심장을 자극하며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에 ‘할렐루야’를 외쳐대고 있다.

사방에서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외국어 목사들이 스스로 각색한 외국어 바이블들을 들고, 학원이라는 이름의 예배당을 세워 종말 대신 세계화 부적응의 불안을 자극하며 신도 증식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각자의 능력은 모두 가치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조화롭게 인정하고 키워갈 생각을 해야지 한두가지의 재능을 우열로 정해 놓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밥줄과 연관이 있는 기업뿐 아니라 매스컴, 교육기관 모두에서 너도 나도 핵심기준인냥 외쳐 댄다면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역량에 집중할 수 없는 탓에 기본적으로 손실이 생기게 된다.

또한 사회라는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라 거부한다거나 잘못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이나 재능 부족을 탓하게 됨으로서 개개인의 열등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차원에서 사회는 개개인의 적으로서 군림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시된 학습방법을 잘 따르는가에 있다기 보다는, 언어에 대한 재능과 취미가 있는가의 여부에 있고 환상 섞인 시대조류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열등감을 유발하지 않는가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라면 개개인의 다양성에 대해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지 언어를 못한다는 것에 열등의식을 느끼게끔 학교 기업 매스컴 등이 손잡고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개성이 존중되는 민주사회라는 입발림을 해서야 되겠는가.

공교육의 외국어 교육 문제를 성토하기 이전에, 신격화된 외국어 능력의 실체를 그 필요성과 전문성 수준에 맞게 현실로 끌어 내리고 사회의 주인이 되는 구성원이 외국어로 인해 열등감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종 종교의 사이비성을 벗겨내어 외국어에 대한 사회의 집단 불안감을 해결함으로서 좀 더 현실적이고 풍요로운 국제화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서프라이즈에서 BlackJack님의 글을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