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는 오늘 열두 번도 더 너를 비웃고 싶었다.
나도 몰래 비웃음이 몸 밖으로 배어나와
어쩌면 너도 알아챌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만약 그랬더라도 넌 절대 내색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건 그 어떤 배려도, 예의도 아니며
단순히 너의 욕구충족을 위해 아직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너의 그 두려울 것 없는 이기심은
나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계산된 것이니?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더 이상 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너의 질긴 욕망은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가장 허약한 부분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넌
마치 인질의 목에 칼날을 대고 있는
잔인한 범인의 모습으로 내 곁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언젠가 나는 네게 느끼는 역겨움이 극에 달해
일주일을 넘게 전화기를 꺼놓은 적이 있었지.
그때 네가 벌인 그 잔인한 짓을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오늘도 널 비웃음과 구역질을 참으며
근 3시간에 걸쳐 너의 그 끊어질 듯 높은 하이 톤의 수다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넌 지독한 자기주의이며 또한 두말할 것 없는 이중인격자이다.
나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여자라는 족속은..."이라는 의미에
한치도 틀림이 없는 너의 그 속물근성에 치가 떨린다.
그러면서도 넌 다른 속물들한테 더더욱 치를 떨며 자신을 포장하지.
너의 가면은 대체 몇 겹이나 되는 거니.
남들 앞에선 대범한 척, 사려깊은 척, 형이상학적인 척을
너무도 잘해 나는 네가 전직 연극배우가 아닌가 의심을 한다.
네가 나를 매번 끌고 다니는 이유를 나는 안다.
난 너를 돋보이게 하는 존재.
혹은 너의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는 증거물일 뿐이다.
물론 나또한 나라는 존재에 관해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범주보다 나은 뭔가를
가지고 있는 괜찮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그 점에서는 솔직할 수 밖에 없어 슬프다.
내 생과 함께 해온 나의 가족과
친구들과 그냥 그렇고 그런 주위 사람들이
혹여라도 내가 착각하지 못하도록 증거를 들이댈 테니까 .
너의 가면벗은 얼굴을 알게 된 그 날,
난 너에게 한 가지만 부탁했었지.
남들의 창에는 어떤 존재로 널 투영하든지
이제부터라도 내 앞에서는 제발 가식을 벗어달라고.
하지만 넌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더 교묘하게 진실보다 진실같은 탈을 만들어 내어
나를 괴롭혀 왔다.
우정이라는 이름만큼 괴로운 인간관계가 없다는
참담한 깨달음을 안겨준 너.
네 요부같은 웃음에 눈이 멀었다가
너를 떠나가는 남자들에게서 너는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본다고
한탄을 한다. 남자란 동물이 죄다 끔찍하다고
며칠을 울고 취하고 자해를 한다.
그러나 누군가 너의 레이다망에 슬쩍이라도 나타날치라면
바로 요부같은 웃음을 달고 어떻게해서라도 건수를 만들어 낸다.
한 시간을 만나고 오면 그후에 나는 다섯 시간 이상을 고문당해야 한다.
너의 촉수는 무섭게도 예민해서
내가 그 어떤 핑계를 대고 도망을 가도 널 피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너는
나의 피난처를 짓밟는다.
오늘까지 벌써 며칠째인가?
너의 새로운 남자가 나는 밉다.
왜 그토록 많은 의심의 여지를 주어
나에게 이런 고통의 시간을 주는가.
친구야.
나는 매일 사악한 징조를 키우며
너에게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친다.
친구야.
이렇게 역겨운 관계를 과연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것
제발 그 사실에 겸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