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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즐거웠던 그날의 추억여행


BY 일송정 2003-10-29

10월의 둘째 일요일, 중학교 총동문체육대회를 마치고 우리 2회 동기들은 밤늦도록 노래방과 해장국집을 돌며 회포를 풀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나서,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동창들은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어울렸다. 원래 나는 마지막 버스편으로 귀경하려고 했었으나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어려워 그날밤을 호텔에서 묵게되었다.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향하던 나는, 어제밤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해장국집(동창 원두희가 하는 '원가네식당')으로 택시를 돌렸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그냥 서울행 버스를 타기도 그렇고 해서, 아침이나 때우고 갈 요량이었다. 두희는 마침 와이프와 함께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우리 둘은 해장국을 먹으며 맥주로 해장을 했다. 해장술이라는게 언제나 그렇듯이 알싸하게 속을 풀어주며 기분을 업시킨다. 맥주를 두어병 마시자 기분이 업되었고, 나는 동창회 회계를 맡고있는 희숙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희숙이는 내 전화를 받고는 "아직 서울 안올라갔어?"라고 좀 놀라는 눈치였지만, 내가 원가네식당에 있다니까 금방 오겠단다. 이것이 중학교동창이니까 가능할테지만. 희숙이가 오고나서 얼마 있다가 연희도 왔다. 어제도 봤었지만, 단발머리의 연희는 아직 30대로 보인다. 매취순이 나오고, 맥주병이 추가되고 졸지에 또 술판이 벌어졌다. 공장장인 두희는 사무실 나가는 것도 미루고, 우리들 자리에 앉아있으니 와이프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사람좋아보이는 그녀는 남편한테 전혀 티를 내지 않는다.

 

열한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희숙이, 연희와 함께 동량면으로 향했다. 충주호를 끼고 향어와 송어를 파는 횟집들이 즐비한 곳.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방갈로에 앉아 우리는 향어회에 소주를 마시며 옛날얘기에 빠졌다. 참 옛날이라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사춘기의 문턱에서,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니며 설레는 가슴으로 이성을 바라보던 시절. 미래에 대한 가슴벅찬 설계로 한껏 부불어있던 시절.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련한 시절. 나는 그 자리에서, 중1때 서로 편지를 주고받던 '첫사랑' 김숙녀가 지금은 이혼녀가 돼 부천에서 호프집을 하고있다는 가슴아픈 얘기를 들어야했다. 얼굴 예쁘고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던 과수원집 딸 숙녀. 내 가슴에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게 했던 그녀가 불행한 모습이 돼있다는 사실은 공연히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한참 있으니 동창회장인 태성이와 총무인 광림이가 횟집으로 왔다. 충주시에서 이곳 횟집까지는 2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그들은 마다않고 왔다. 우리 다섯명은 어제에 이어 오늘 또다시 '동창회'를 열고있었다.

 

술을 마시면 2차, 3차 가는 버릇이 있는 내가 대미삼거리에 있는 통닭집(중학교 선배가 하는)으로 가자고 해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타고 충주호 연안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길옆 과수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야- 사과 먹음직스럽다"고 하니까 연희가 "차 세워"하더니 몰래 과수원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몇개의 사과를 따오는 것이 아닌가? 운전대에 앉아있는 희숙이가 "저 아줌마 큰일날 아줌마네"하면서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태성이가 사과를 우걱우걱먹으며 "훔친 사과가 맛있는 법이야"했고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대미삼거리에 도착해서 바베큐통닭집엘 들어갔으나 자리가 없다.(테이블이 두개인데 사람들이 있다) 그러자 광림이가 "그럼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지. 동성이하고 연희도 서울 올라가야 하잖아"한다. (난 목동, 연희는 천호동에 산다) 그래서 우리는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나는 연희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마침 동창 지연이가 사는 동네를 지나다가 그집으로 들어갔다.(지연이는 중학교동창인 경선이와 결혼해서 사는 동네이장임) 어제도 봤던 동창들이 들이닥치자 지연이는 좀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특유의 반가운 맞이를 한다. 마침 평상에서는 동네사람 두명이 술상을 앞에 놓고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그냥 합석했다. 술잔이 오고가고 우리는 또 추억여행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도리마을을 떠나기 위해 나와 연희가 일어선 것은 6시쯤. 땅거미가 슬슬 내리고 있었다. 동창부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연이, 경선이 부부가 우리 두사람을 배웅했다.
"연희야, 운전 잘해라. 나 딸린 처자식이 있다"
내가 그렇게 말했고, 연희는 마치 남편한테 말하듯 "알겠습니다. 회장님. 서울까지 푹 주무세요"한다.(난 중학교때 학생회장을 했다) 차가 땅거미 내리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참으로 즐거웠던 추억여행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