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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둘째 일요일, 중학교 총동문체육대회를 마치고 우리 2회 동기들은 밤늦도록 노래방과 해장국집을 돌며 회포를 풀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나서,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동창들은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어울렸다. 원래 나는 마지막 버스편으로 귀경하려고 했었으나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어려워 그날밤을 호텔에서 묵게되었다.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향하던 나는, 어제밤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해장국집(동창 원두희가 하는 '원가네식당')으로 택시를 돌렸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그냥 서울행 버스를 타기도 그렇고 해서, 아침이나 때우고 갈 요량이었다. 두희는 마침 와이프와 함께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열한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희숙이, 연희와 함께 동량면으로 향했다. 충주호를 끼고 향어와 송어를 파는 횟집들이 즐비한 곳.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방갈로에 앉아 우리는 향어회에 소주를 마시며 옛날얘기에 빠졌다. 참 옛날이라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사춘기의 문턱에서,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니며 설레는 가슴으로 이성을 바라보던 시절. 미래에 대한 가슴벅찬 설계로 한껏 부불어있던 시절.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련한 시절. 나는 그 자리에서, 중1때 서로 편지를 주고받던 '첫사랑' 김숙녀가 지금은 이혼녀가 돼 부천에서 호프집을 하고있다는 가슴아픈 얘기를 들어야했다. 얼굴 예쁘고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던 과수원집 딸 숙녀. 내 가슴에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게 했던 그녀가 불행한 모습이 돼있다는 사실은 공연히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술을 마시면 2차, 3차 가는 버릇이 있는 내가 대미삼거리에 있는 통닭집(중학교 선배가 하는)으로 가자고 해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타고 충주호 연안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길옆 과수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야- 사과 먹음직스럽다"고 하니까 연희가 "차 세워"하더니 몰래 과수원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몇개의 사과를 따오는 것이 아닌가? 운전대에 앉아있는 희숙이가 "저 아줌마 큰일날 아줌마네"하면서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태성이가 사과를 우걱우걱먹으며 "훔친 사과가 맛있는 법이야"했고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도리마을을 떠나기 위해 나와 연희가 일어선 것은 6시쯤. 땅거미가 슬슬 내리고 있었다. 동창부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연이, 경선이 부부가 우리 두사람을 배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