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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비명소리


BY 유수처럼 2004-02-02

어젯밤에 봄날 아줌마가 나와서 누구나 몸짱이 될 수 있다고  바람을 집어 넣더라구요. 이번 방학에 두둑해진 뱃살을보다가 그렇다면 나도 이 배에 붙어 있는 백과사전 좀 선데이 서울처럼 얇게 바꿔 볼까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낮에 실컷 잔 덕분에 잠이 안와서 그렇다고 할 수가 있지요.

운동화 끈 질끈 매고 잠바에다 손을 넣고 휘파람은 안 불었지만 하여간 기분 좋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을 나오다 그만 ~~~~~!!!
눈오면 털고 들어가라고 겨울에 줄창 깔아놓는 매트의 구멍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충격이 제법 컸습니다. 앞으로 걸어오던 길이었으니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쓰러질 듯 큰 걸음으로 비틀 거리게 되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오던 터라 중심을 잡기도어려웠습니다.

몸이 앞으로 쏠린 채 휘청거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런데 세걸음 지나가면 거기는 길로 내려가는 4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단 앞에서도 비틀거림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계단 앞에까지 온 나는 계단 바로 앞에서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휙 떠 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명은 밤 공기를 타고 아파트를 쩌렁 울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죽었다'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앞은 자동차들이 빈틈없이 주차되어 있는 곳입니다. 

날아올랐으니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 꽝소리와 함께  한 발로 떨어졌습니다. 둔탁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천만 다행히 내 몸은 차 앞에서 두어걸음 비틀 거리다 멈추어 섰습니다. 넋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완전히 무술 영화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몸을 바로 잡으면서 휴 다행이다 하고 생각도 했지만 신기한 것은  비틀거리는 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지나간 것이었습니다. 

'비틀거린다 '

'넘어지면 어쩌나'

'아이구 큰일났다 왜 안 멈추지 ? '

'여기서 넘어지면 안경 다 깨진다'

아이구 계단이네

이런! 뛰어 올랐다 ..

대충 이런 생각들이었습니다.


떨어지고 나니 고요한 한 밤에 투닥 거리다 비명을 지른 걸 저 앞에서 앉아 있는 경비 아저씨가 봤을 거라는 생각이 우선 들더구만요. 무슨 일 났는 줄 알았을 겁니다. 그 생각을 하니  어찌나 우습던지 깔깔 웃었습니다.

몇 걸음 더 걷다보니 착지한 왼발에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발도 아닌 왼발로 착지를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그러나 아픈 게 대수랍니까? 이렇게 살아 있는 게 다행이지요.  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만두 집 앞에 서서 하하하 웃었습니다. 그때 누가 지나갔습니다.  한 밤중에 아무도 없는 길에서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아주마를 본  그  사람이 이 아주마 돌았나 보다 했을 걸 생각하니 더 웃겼습니다.


하루 밤이 지난 지금은 왼쪽 발이 아파 쩔룩 거리고 있고 오른 쪽 허리 께가 아파 파스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무 것도 아니지요. 만약 착지할 때 조금 삐끗 해서 복숭아 뼈에 금이라도 갔으면 몇 주간 기부스를 하고 다녀야 했을 테니까요.

그러고 나서 느낀 것은 평소에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혹시 또 크게 다쳤을 줄 누가 압니까. 그리고 또 하나 내 근육 많은 다리가 무척 고맙게 생각되었습니다.  누가 보면 발레 했냐고 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알통이 크냐고 진지하게 물어오기도 하는 이 알통 다리 말입니다.

이 타고난 알통 다리 덕분에 어렸을 때 길에 가다가 괜히 넘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 다리 아픈 걸 잘 모릅니다. 진짜 많이 걷고 나서 다리가 아파지면 '아 다리도 아플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비틀거리기만 하고 넘어지지 않은 것도 분명 이 튼튼한 다리 덕분일 터이니 고마울 수 밖에요.

어제 몸짱 아줌니 덕분에 한 밤에 무술 영화를 찍은 걸 생각하면서 또 아침부터 낄낄 거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