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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리 예리한지,,, (펌글)


BY 냉철하다 2004-03-24

역사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됐다. 정말 사상 초유의 일이고 그 누구도

여기까지 올 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고 한 쪽에선 대통령을 몰아낸

야당에 대한 분노가, 다른 한 쪽에서는 그동안 미덥지 못했던 대통령을 끌어 내린데 대한

통쾌함이 교차했다.

하지만 이런 요란한 과정이나 경과 하나 하나가 나에겐 한낱 정치쇼, 그 이상으로는 보이

지 않았다. 난장판 국회와 굳은 표정으로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야당의원들.

그리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여당의원들과 노사모 회원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어지러운 시대현실이 엿보였다.

거두절미하게 본론부터 들어가자면 오늘 하루동안의 파란만장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정치

인들이 꾸며낸 정치쑈이며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들, 노대통령

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 조차 이번 탄핵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탄핵까지 간

것은 심했다는게 대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탄핵을 가장 원했던 것은 민주당도 한나라

당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이번 탄핵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결코 탄핵을 피하거나 야당과 합의

를 보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어떻게든 탄핵을 당하려 유도하는 듯한 이상

한 행보를 계속해 왔다.

야당의 탄핵사유는 진짜 별것이 아니다. 총선에 대해 중립을 지키지 못했고 선관위에 경고

까지 받았으니 사과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노대

통령은 그 한마디를 끝까지 하지않고 버티다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그 어떤 대통령이 그런 하찮은 일로 탄핵까지 얻어 맞느냔 말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

면 말이다.

탄핵을 망설이던 야당 소장파들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한, 그 전의 기자회견도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기자회견을 본 사람들은 솔직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야

당이 탄핵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데 오히려 더 약올리는 기자회견을 자처한 이유는 무엇

일까. 그냥 넓은 마음으로 야당에게 화해의 제스처만 해주면 이 모든 어지러운 정국이 잘

풀릴텐데 말이다.

내 주위 사람들 중 몇몇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 때 사과했더라도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

을 것이라며 우겨대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탄핵을 주도하며 여론은 야당에게 나쁘게 돌아

가고 있었다. 야당은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그들에게 끝

내 길을 터주지 않았다.

결국 칼을 쥔 채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야당은 칼을 휘두를 수 밖에 없었고, 칼을 맞은 노

대통령은 크게 외쳤다. 얘들이 힘없는 나를 찔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노통은 손에 총

을 쥐고 있었다. 그는 약하지 않다.

노대통령은 이번 퍼포먼스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물에 약하고 정에

끌리면 이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지난 대선때처럼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노대통령은 몇개월간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단 몇개월 잃는 대신, 총선 승리를 얻은 것이

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쫓겨났다고 난리지만 그건 겉보기만 그럴뿐이다. 헌법재판소는 앞

으로 180일 안에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도 그것이 통과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통령이 자기당 선전을 좀

했기로서니 탄핵이라니. 단지 몇개월 쉬는 정도지. 총선이 끝난 후 노통은 기세등등하게

다시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문제는 총선. 탄핵이 가결되자 정동영, 김근태 등의 열린당 의원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해

국민들의 감성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았다. 아무리 열린당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그 모습을

보고 불쌍해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 야당이 너무 했다며 손가락질을 했

다. 그리고 분노했다.

'아무리 못나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인데 너희들이 감히.. 그럼 니네는 잘하고 있냐'

이제 여기서부터 잘 짜여진 각본이 빛을 발하게 된다. KBS, MBC 등 각 방송사들은 이날

의 비극을 하루종일 보여줬고 국민들은 망연자실해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동정과 분노는

곧 열린당의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열린당의 지지도는 단숨에 40%를 웃돌고 각 야당의 지지도는 곤두박질 쳤다. 분노한 노사

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합을 호소했고 이와 비슷한 단체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다른 때 같았으면 조.중.동 같은 보수신문에서 이런 움직임에 대해 딴지를 걸었겠지만 이

번만은 달랐다. 당당한 명분이 선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올인' 전략의 마침표는 탄핵에 의한 국민감성의 자극과 친노

세력의 결집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선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직을 몇개월 빼앗기는 대신 열린당의 총선승리를 보장 받는 과

감한 빅딜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제 총선까지 큰 이면이 없는 한 열린당은 대약진을 통해 당당한 제1당이 될 것이고

그 이후 노대통령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와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

이다.

국민들은 그가 돌아오는 날, 감격에 눈시울을 붉힐 것이고 그는 다시 한 번 영웅이 될 것이

다. 일부는 오늘의 역사적 사건이 한낱 정치쑈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뒤늦게나

마 깨닫게 되겠지만 그것 역시 역사의 미미한 한 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민중들은 이렇

게나마 자신들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믿음으로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처럼 현 시대의 정치에 혐오감을과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내일은 어둡기만 하다. 뚜

렷한 선과 악이 없는 혼돈의 시대에서 대안없는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

다. 분명 양쪽이 잘못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적하면 한쪽에서는 수구꼴통 소리를 듣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갱이.개사모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대안없는 양비론이라며 냉소를 퍼

붓는다. 비판하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를 수구꼴통 기득권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고 잘난척 하지 말라고

욕부터 해댈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야당은 뭐 잘한게 있느냐고 따질지 모른다.

잘 안다. 야당을 비판하려고 했으면 지금까지 쓴 분량의 몇배를 더 써야 한다. 그들 역시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잘못을 했다면 그 누구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설사 그것이 좋은 목적을 가

지고 행한 것이라도 말이다. 이제 한바탕 국민들을 충격과 불안으로 몰고갔던 퍼포먼스가

끝나고 그들은 요구할 것이다.

자 봤지? 빨리 입장료를 내. 투표로 말이야. 특히 입장료 안내는 젊은 친구들..너희 이번에

는 꼭 내야 돼!! 안그럼 우리가 불쌍해진단 말야. 지난번 TV에서 봤잔아.

그렇다. 쑈를 봤으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입장료를 낸 다음이 궁금해진다.

분명 어느쪽이든 다른쑈가 계획되고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