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자기를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기쁨을 구하기 때문이다. 자기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자들은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자는 항상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 사회 생활은 자기 기쁨을 구하는 생활이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는 생활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혼자서 자기와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을 누군가가 들을 것이며 들어야 할 대상이 있을 때 말을 한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하나가 아니라면 더 이상 말을 할 이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자기만을 위하는 자와는 말도 하기 싫고 같이 있기도 싫어진다. 이는 함께 있는 그 자체로 괴롭기 때문이다. 자기를 주장하는 자와 함께 있으면 참으로 답답한 이유가 그렇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서로 동문서답만 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무슨 사랑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육과 영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육이 영을 사랑하지 못하고 영이 육을 사랑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주신 계명 중에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사랑하라 함이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그가 영적인 자라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도 사랑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자들에게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것이 아니시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주님은 사랑을 강요하지 아니하신다.
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더라도 자기 이유로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사랑이 변해서 미움이 될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이 그렇고 친구간의 사랑이 그렇고 육신의 부모형제간의 사랑이 그렇다. 육을 입은 모든 자들은 다 자기 필요대로 사랑하다가 자기 필요에 부합치 아니하면 버리고 배반하고 미워하고 저주한다. 육으로 사랑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소유하고 싶어한다. 서로 종 삼으려 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깊이 빠질수록 자기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다. 영적인 사랑은 온전한 자유이다. 주의 영은 자유케 하시는 영이시다.
육 안에는 자유도 없고 참 사랑도 없으며 참 믿음 또한 없다. 육은 믿지 못함이 당연하고 사랑하지 못함이 당연하며 자유가 없음이 당연한 줄로 알아야 할 것이다. 육 안에서 믿음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육적인 자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은 나오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물에서는 물이 나올 것이다. 금광에 들어가고야 금을 캘 것이다. 바닷물을 말리면 소금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민물은 아무리 증발시켜도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칙은 원칙을 벗어난 것도 없고 이치에 어긋난 것도 없다. 다만 이치에 맞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오해할 뿐이다. 기적과 이적은 이치에 어긋난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불합리한 것 같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인은 소인을 보지만 소인은 대인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대인이라 하는 것이다. 나는 부자들의 부자 될 수밖에 없음을 이론으로는 알지만 그 실상을 모른다. 그들은 목이 마르기 때문에 우물을 판 것이며 거기서 생수를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특권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이 마르게 하셨고 갈증을 주셨을 뿐이시다. 목이 갈한 자는 시냇물을 찾기 마련이다. 야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조건이 좋은 환경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악 조건에 처한 자들임이 분명하다. 인생은 죽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진정 부를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게 허락된 악조건은 곧 좋은 조건이라 할 것이다. 오히려 모든 것이 풍요로우면 거기서 썩고 말 것이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로 썩지 않기 위해 시련과 연단과 고난의 쓴잔을 주셨다. 악 조건을 만드시고 거기 집어 넣으셨다. 하나님이 사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타락되지 않기 위함이다. 나를 참으로 지켜 줄 조건은 나의 마음에 드는 조건이 아니라 악조건이라고 여겨지는 환경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로 인하여 나는 정결케 되고 깨끗케 될 것이다. 나를 방해하는 자에 의해 나는 더욱 자랄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자라왔고 지금도 그렇게 자라고 있다.
유혹이 있는 것은 그것을 이기고 나오기 위함이다. 시련이 있는 것은 그것을 딛고 다시 서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는 모든 환경이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자기를 위하는 자는 만족함도 없을 것이며 무엇을 가져본들 흡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희생하고 남에게 주는 자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넘칠 것이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날마다 퍼 주고 또 퍼 주어도 그 창고가 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우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샘은 솟아나는 생명의 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