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는 원래 없다. 무게란 중력의 작용이다. 지구가 끌어 당기는 중력의 작용이 없다면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모든 중력의 작용은 서로 끌어 당기고 미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이 만유 인력이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중간지대를 무중력 상태라 한다. 거기는 무게가 전혀 없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구 중심으로 흐른다 해야 할 것이다. 모든 물질은 다 자기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물이 무중력 상태에서는 단지 구일뿐이다. 물도 자기 안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나 물이 지구의 중력 장용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구 중심으로 흘러갈 뿐이다. 사람이 아래라고 하는 것은 지구 중심을 말한다. 중력은 작용 반작용일 뿐이며 여기서 무게가 나온 것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자기 몸의 무겁고 가벼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옳다 그르다, 의롭다 혹은 불의 하다고 하는 것들은 그 기준이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와 불의와 옳고 그름은 그 기준이 사람이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의롭고 불의하고를 말씀하시는 것이시지 사람의 어떤 것을 의라 하고 불의하다 하지 않으신다. 의라는 기준이 없이 어찌 불의 하다는 개념이 있겠는가? 분명히 불의는 의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가 있고 불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만 존재하신다. 원래는 의로운 사람도 불의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있다면 누가 보기에 의롭고 불의하냐 하는 것이다.
누가 어디에 쓰기에 합당하고 합당치 아니할 뿐인 것이다. 주인의 쓰기에 합당하다면 그 그릇은 주인에 의해 깨끗이 씻김을 받아서 깨끗케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인의 쓰기에 합당치 아니하다면 그 그릇은 스스로 깨끗한 척 하지만 주인은 그 그릇을 방치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더러워 질 것이다. 주인에게 쓰이지 못하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주인이 그릇을 쓰지 않을 때는 그 그릇이 더럽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이다. 건축자가 건축재료를 구할 때에 건축자의 의도대로 쓰기에 합당하면 좋은 것이다. 괴목을 수집하는 자들이 좋아하는 것과 집을 짓기 위해 수집하는 재료가 같을 리 없을 것이다. 별난 건축자는 괴목들을 이용하여 건축 재료로 쓸 것이다. 괴목을 수집하는 자들은 건축주가 쓰기에 합당치 아니하여 버린 것들 즉 건축의 재료로 쓰고 남은 뿌리부분을 좋은 재료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로 쓰셨으며 모퉁이 돌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세상이 버린 아들을 교회의 반석으로 쓰셨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상상치 못한 곳에 있으시다. 사람이 알면 사단이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일을 아무도 모르게 역사 하신다. 이는 그의 주권 적인 행사에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시다. 그분은 주권을 가장 귀히 여기신다. 그분은 그의 이름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그분은 그의 명예에 그의 모든 것을 걸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 자신 이외에 그 어떤 것과도 맹세하지 아니하신다. 그분은 그의 영광을 위해 이것도 하시고 저것도 하신다. 그의 이름은 만유의 생명이시며 그의 이름만이 만유의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분 자신을 보존하심이 모든 존재의 지키심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의 명예는 곧 나의 명예이며 우리 온 가족의 명예이며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인 것이다. 그 아버지가 영광스러우면 그 자식들은 아버지로 인하여 영광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며 아버지는 자기 이름을 귀중히 여기시는 것이시다. 자기가 잘 되려 함이 곧 아버지를 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지키려 하신 것이 아니시라 아버지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셨다. 그는 아버지만 온전하게 지켜지시기를 원하셨다. 그는 아버지의 주권만 세우셨다.
우리나라의 풍속에 명당 자리를 찾아 조상을 모신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속이 아니라 성경에도 있다. 성경에서 가나안 땅. 시내 산, 예루살렘, 등등 이스라엘의 모든 지명에는 다 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성경을 육의 생각으로 풀면 그 땅이 거룩한 땅인 줄로 알고 거기 자리를 서로 먼저 잡으려 할 것이고 이것이 혈과 육에 대한 땅 싸움이며 오늘날 중동전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사단과의 싸움이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땅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우리의 영원히 거할 가나안 땅은 땅이 아닌 그리스도이시다. 신랑과 신부가 영원히 거할 집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거기는 아버지 집이며 아버지 품이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시며 영원히 돌이켜야 할 집이시다. 모든 자들은 지금 자기 아버지께로서 와서 아버지께로 가고 있다.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갈 것이고 하늘로서 난 것은 하늘로 갈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이란 자기 아버지를 잃고 방황하는 것이다. 본향을 찾지 못하고 광야에 떠도는 생활이 방황하는 종교 생활인 것이다. 종교 생활은 종교 생활로 그칠 것이 아니다. 영원한 가나안 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가기 위한 노정이며 과정일 뿐이다. 거기 안주한 자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불행이다. 아버지를 찾은 것이 행복이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행복 그 자체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만난 자들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