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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잔 하실래요?


BY 망고야 2004-05-18

제가 어렸을때, 아버지께서 늘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습니다.






"이녀석들 언제 키워서 아빠 술친구 만들겠어?"







< 1. 그래서 일까? >



내가 초등학교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부터



우리집 냉장고의 한켠엔 저희들만을 위한



포도주가 한병씩 늘 자리잡고 있었다....



자기전에 한잔씩 마시면 몸에 좋다나?



그리고....이젠 안다...



술은 어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당신의 의지도 숨어있었음을...



이젠 나도 그정도는 알수 있는 나이가 된건가?











< 2. 술마시는거야 뭐 어때... >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술자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항상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술이 좀 들어가면



혀도 꼬이고, 했던 말 또 하고, 비틀비틀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내 어린시절 필름속의 당신 모습엔...



그런 사진이 단 한장도 없다는것....









'술먹는거 가지고는 아버지가 절대 뭐라 안한다...



마시기 전이나 마신후나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시켜라.



술먹고 실수하는것만큼 추한 모습이 사람에겐 또 없다.'









가끔 술을 마신후, 실수를 했다거나 필름이 끊어진 다음날이면,



그 말씀 그대로 한번 되뇌이고 또한 부끄러워 했었다....















< 3. 이제와 말씀드리지만.... >





제가 아버지 친구분들, 혹은 삼촌들과 술을 마실때,



가장 듣기 좋아라 했던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녀석, 지 애비 닮아서 술은 잘먹네'






였습니다.. ^^;









< 4. 술자리 족보 >



아버지와의 술자리 에피소드 하나 ..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친구이자, 나의 사장이었던 S씨...


나랑 술친구 먹은 사람이다 -_-;



물론 내가 술친구 먹자는 ;; 그런 망발은 한적 없다...



어디까지나 S 씨가 멋대로 정한 것뿐...







아니...딱 한번 있다 ;;




S씨와 나의 아버진 항상 서로 누가 형님이다고 입씨름을 하신다.


어느날 찾아온 S 씨..







"택아 형님 오셨다"



"생일도 늦는놈이 또 헛소리 지껄이며 들어오지?"



"형님 맞는 태도 하곤...야 윤성아 우째야 되겠냐?"







한참 입씨름을 하다가, 갑자기 날 걸고 넘어진 S씨...


그런데 난...왜 갑자기 그소리가 튀어 나왔던걸까..;






"사장님은 저랑 술친구잖아요..."


"...-_-;;"







S씨 = 나 < 아버지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S씬 ...


술자리의 족보상, 아버지의 아들뻘이 되어버렸다....;






< 5. 전 그때 >






당신이 술마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느 다른 어른들과 틀리게 호탕하게 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새빨개진 얼굴로 크게 웃으시는 얼굴과,


술김에 던져 주시는 만원짜리 지폐;;; 까지도요 ;;;








< 6. 소주 한잔 할래?.... >





아버지가 술을 드실때 마다 늘 나에게 건네는 말씀이시다..


형은 운전 시켜야 한다면서 -_-; (내가 면허가 없다;)


한잔도 못하게 하지만, 나에겐 항상 권하신다....





"아뇨.. 내일 일해야죠.."

"아뇨.. 속이 좀...."

"아뇨...."




그럴때마다 또 항상 하시던 말씀이



"친구들이랑은 잘 어울려 마시면서 지 애비랑은 안한단 말야"



였다..




그럴때마다 난 살짝 웃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었는데.....






< 7 . 처음 대작 하던날 >




내가 열여덞...가을 되던해..


아버지와 함께 트럭을 타고 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차창 밖으로 보이는 횟집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유독 회를 좋아하는 내가


현수막에 적힌 가을전어 개시라는 문구를 보자




"벌써 전어가 나오네..."




라고 나지막히 중얼 거렸는데 그걸 들으신 아버진


내가 회를 먹고싶어 그런말을 한걸로 아셨나보다..


곧장 차를 횟집으로 돌리시는것이었다...





주문한 전어회와, 소주한병이 식탁위에 놓여졌고,


아버진 또 내게 물으셨다..




"소주 한잔 할래?"




무슨 개깡 -_-; 이 생겼을까...


앞에 놓여진 소주잔을 들어 아버지께서 주신 술잔을 받았다...


몸을 돌려 한잔 한 후, 회를 한젓가락 집어 먹을때...


아버진 티 안나게 ...


아주 가늘게 입가에 미소를 띄우셨다..





< 8 . ..... >




얼마전 ... 아버지랑 술을 마시던 중....




"아버지가...죄를 많이 짓다보니......"




평소 술을 하셔도 약한 내색은 절대 안하시던 아버지셨다..









< 9. 그래도 이젠 너희가 다 커서.. >




" 그래서 한시름 놓인다...."







< 10. 잊고 지낸 당신의 모습 >





분명 몇년 전만 하더라도, 내 기억속엔


술을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호인'이었다..


직접 강에서 잡아온 고기를 직접 손질하여 끓이는 매운탕 하며..


소주한잔 탁 털어 붓는 모습,


또 그 뒤의...


어린 나조차도 술맛땡기게 -_-; 하던 캬~ 하는 소리까지...








너무 오랫동안...잊고 지내신건 아닌가요?


그런 당신의 모습을....








< 에필로그 >




"윤성아... 가서 소주 한병만 사와라.."



주무시기전에 항상 소주 한병씩 드시고 주무시는 아버지덕에


동네 슈퍼 아줌마는 '젊은놈이 맨날 술' 이라는 표정으로 -_-; 날 곁눈질이다.






"중국이 어쩌고..미국이 저쩌고..."

"^^;"

"이승만이 어쩌고 ..박정희가 어쩌고..."

"-_-;"

"사명대사가 어쩌고.. 성철스님이 어쩌고.."

"__;;;"




한참을 듣기만 하던 나에게..문득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윤성아.. 남자는 입이 무거운것도 좋지만... 넌 너무 내성적이다..."

"......그..그게요.."

"마 자식아 그래가지고는 요새 사회생활 힘들어 임마..야바구도 할줄 알아야지"

"......."

"에이..아들놈 재미 없어서 같이 술못마시겠네...





그말을 끝으로 아버진 자리에 누워 이내 코를 고셨다 -_-


아버진 모르신다...


아들놈이 무식해서 -_-;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무슨소린지 하나도 모른다는걸.;;


그래서 듣기만 하고 있었다는걸 ;;






하지만 이런 무식한 나라도,


아버지와의 여러번의 술자리를 통해, 한가지 알게된 사실이 있다..






아버지 또한,


나와...혹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한명의 사람이고, 남자라는걸..





자식앞에서 약한모습 절대 안보이려는 아버지이시지만,


그 내면엔 슬픔도, 고통도, ...또한 외로움까지도 떠안고 살아 가신다는걸...






술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잘 몰랐던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녀석들 언제 키워서 아빠 술친구 만들겠어?"


라는 말씀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나 또한 술한잔 할수 있을정도로 컸으니까...






하지만... 그와 함께 날아가버린


아버지의 듬직한 체구와, 우리 셋이 달라 붙어도 절대 지지 않던 팔뚝과,


하얀 서리가 내려 앉아 버린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술에는 절대 지지 않을것 같았던 체력까지.....






경상도 촌놈이라 -_-; 따뜻한 말한마디 정말 못하는 나이지만...


적어도 시간이 조금더 흐른뒤에라면.. 이말정도는 가능하겠죠.


제가 먼저...




"아버지. 소주 한잔 하실래요?"



라고...




그때가 되기 전까진... 한번 바래나 봅니다..




예전의 당당하고 호탕하신 성격의 아버지로 돌아가 계시길..




난 항상 그곁에서 재미있는 술친구가 되어 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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