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사랑 / 시. 도종환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을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낮선 섬의 감탕받에 묶여 있는 시간이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 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