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가 업종을 바꿔 개업을 한다기에 인사차 시댁이 있는 도시로 갔습니다.
벌써 3년 째 백수생활을 하는 남편, 그렇다고 제가 탄탄한 직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상태.
퇴근을 하고 부지런히 서둘렀지만 퇴근시간과 맞물려 거의 2시간 걸려 시댁에 도착했습니다. 시누와 같은 도시이므로 시부모님을 뵙고 시누에게 갈 생각이었죠.
고령의 시아버지. 저는 평소 이분을 무진장 좋아했습니다.
정말 시 아버지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분을 아무 사심없이 좋아했습니다.
그런 분이 약주를 한 잔 하시고
"하나만 묻자, 너는 이 집안을 위해 살겠다고 결혼했냐? 아님 ㅇㅇ(남편이름)이 하나만 위해서 결혼했냐? "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분들은 지금 내가 몹시도 불만족스러우신 거야.
그런 생각만 했지요.
지난 12월에는 막내 동서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윗동서 셋 앉혀놓고 막내 동서는
"모두 자기 생각만 하고 사는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
한 마디로 며느리 노릇 혼자 하는 게 억울해 죽겠어. 그러니 너네들도 똑바로 해.
그런 얘기였지요.
다른 두 동서는 막내 동서의 그런 행동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저는 많이 자존심 상하고 속상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며느리들끼리 따로 무슨 얘기했는데?"
물었지만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던 거지요.
요즘은 돈이 사람노릇을 합니다.
돈이 없다보니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찾아 뵐 때마다 용돈도 드리지 못하고
겨우 수박 한 덩이 사가거나, 복날이니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하고 몇 푼 쥐어드리는 게 고작.
그러다 보니 시부모님과 다른 동서들 사이에서 저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동서의 말을 들었을 때도 속으로만
"내가 사람 노릇을 못해서 참는다. 내가 사람 노릇만 했어도 너 같이 시건방진 건 박살냈다."]
하고 말았는데 시부 말씀을 듣고 보니 시댁에 다시는 가고 싶지도 않고 만나서 얼굴 맞대고 싶지도 않네요.
이게 뭔가 싶네요.
나를 온전히 희생시키기 위해, 그래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시집을 온 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해져야 하는데 다른 이들 생각은 그게 아니더군요.
저, 백수인 남편과의 사이도 그렇고 일하는 것도 많이 힘든데,
내가 힘든 것과는 상관없이 온 몸 부서져라 시댁 위해 모두를 받쳐야 한다는 이 달갑잖은 명제가 정나미 떨어지게 만드네요.
생각 같아서는 잘난 남편과 보란듯이 헤어지고 싶지만, 그래서 그들 마음에 드는 동서와 며느리 얻어서 잘 살라고 하고 싶지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