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의 여름!
50 여년 전의 배곺은 여름! 50여년 전의 그 여름은 길기도 했었다.6.25사변 다음 해인데 피난을 시골로가서 자리도 잡히지 않았는데 흉년이 들었었다.
우리는 7식구(부모,딸5,아들1)가 너무도 어렵게 살았다.
고구마가 미처여물지도 않았는데 캐다가 일주일을 삶아먹으며 끄니를 때웠다.도대체 쌀이란 것은 구경도 할 수가 없고,보리 구하기도 힘들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호밀! 호밀이란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원산지가 외국인 것 같다.모양이 길며 색은 짓은 갈색이다.아마도 수확량이 많이 나온다고 품종을 개량한 듯 싶다.
그러나 이 것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어머니가 어떻게 몇 됫박 구해오면 그걸 늘 먹으려고 멧돌에다 갈아서 죽을 쑨다.그냥 멀건 죽이다.
그땐 그 죽도 없어서 못먹었고 얼마나 맛이 있엇던지.지금은 구하기도 어렵겠고 누가 처다보지도 않을 그런 죽을 계속먹다가 인제는 건건이(반찬)도 문제다.
도대체 밭에는 아무런 채소도 없었다.동네 주변에는 아무런 나물도 없었다.그야말로 독이난 것이다.
자루하나들고 동구밖을 벗어나 4,5K를 걸어가며 담배나물이란 나물을 찾아다니며 뜯어다가 호밀죽에도 넣고 나물로도 먹었다.
그런데 인제는 그 나물도 하두많이 뜯겨서 더 이상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인제는 할 수 없이 아카시아나무잎을 연한쪽으로 따서 삶아 된장에 묻혀먹었다.문제는 여기서 발생을 했다.
그 나물을 계속먹으니 변을 볼 수가 없다.나중에는 손가락으로 파내야하는데 그 것이 가관이다.정말 토끼똥 같이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나는 여러 기억중에 잊을 수 없는 토끼똥이 내 머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지금도 생각하면 내 동생들은 보채지도 않고 환경에 적응을 잘했던 것같다.
또 하나는 그 어린나이(13살)에 우물에가서 물동이에 물을 여나르고,물지게로 저나르면서도 힘든줄 모르고 살았다.
반면에 아름다운 추억들도 자리하고있다.
그 시절엔 책가방도 없다.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서 여자들은 허리에 메고, 남자들은 어깨에 메고 학교를 다녔다.
봄이면 학교가는 길 작은 소나무밑에 피어있는 할미꽃! 뒷동산에 할미꽃을 부르며 지나고나면 양옆에 보리밭,밀밭이 풍성하고 보리밭에서 종달새가 하늘높이 치솟으며 부르는 특유의 노랫소리! 밀밭(토종)에서 밀 목아지를 몆개 따서는 손 바닥에 비벼서 껍질을 불어내고 알맹이만 입속 가득넣고 씹으며 학교를 가노라면 어느새 기가막힌 껍이된다.
집에와서는 저녁밥 짓는 아궁이 불에 풋보리목을 그을려 손 바닥에 비며먹으면 입가가 새까맣지만 그 맛은 지금의 어느 값비싼 간식에 비할바가 아니였다.
단오날이면 뒷동산에 올라 큰 소나무에 매어놓은 그네를 타고,비온 뒤에는 소쿠리하나 옆에끼고 잔 솔빝에가서 솔버섯을 따다가 찌게에 넣으면 그 쫄깃하고 향기로운 그맛! 여름 밤에 감자서리(남에 밭에서 주인몰래 캐오는 것)를 해서 쩌먹으면 그렇게 맛이있을 수가 없다.지금도 그 옛친구들이 그립다.
가을이면 벼베고난 논에가서 우렁을 잡아 된장찌게를 해먹고,벼 이삯도 줍고,겨울이면 텃밭에 묻어놓은 통배추 동치미를 위에 덮어놓은 댓잎을 걷어내고 건저다가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밤깊은 줄모르고 재잘거리던 아름다운 그시절!
몆 년후 내가 서울에서 여고를 다닐때 여름방학에 그 시골엘 가면(어머니가 그 곳에 자리를 잡고 계셨음)마당 가운데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위에서 엄마무릎을 베고 누워있으면 엄마는 부채로 모기를 쫒으며 나를 시원하게 해 주시면 나는 그만 스르르 잠이들곤 했다.
지금 이 나이에도 계절마다 그리운 추억이 떠오르지만 그 여름밤의 어머니의 무릎은 잊을 수가 없다.아!!!!!!!!!그 옛날이여---
나는 지금의 이 모든 풍요로움에도 불만스러울 때가 있지만 될 수 있는한 이 풍요로움에 감사하며 다소 불만이 있어도 수용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