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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펌] 헌재의 역사왜곡


BY 딸기맘 2004-10-25

경향펌] 헌재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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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로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서울과 수도를 동일한 개념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서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는 까닭에 서울지역이 수도인 것은 그 명칭상으로도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헌재의 이런 판단엔 역사 왜곡과 논리 비약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京=서울’은 서라벌서 비롯-


헌재는 기본적으로 서울이 수도의 개념으로 굳어진 것이 조선왕조 이후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틀린 말이다. 서울이 수도의 개념으로 굳어진 것은 신라 때부터다. 신라의 수도는 지금의 경주지역이고, 경주의 옛 명칭은 서라벌 또는 서나벌, 서벌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것이 변천하여 현재 ‘서울’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 것이며, 고등학교 국어교육만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따라서 헌재가 조선 왕조의 수도 한성으로부터 서울이라는 단어가 수도의 개념으로 굳어졌다고 판단한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며, 언어변천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서울이라는 말은 한자로 모두 京(경)으로 표기했는데, 비단 조선의 수도 한성뿐 아니라 신라의 수도 서라벌과 고려의 수도 개성을 모두 그렇게 표현했다. 京(경)이라는 글자의 원래 뜻은 ‘크다’이지만 한국인들은 이 글자를 ‘서울 경’이라고 칭하고 있고,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옥편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또한 京(경)의 뜻을 ‘서울’이라고 한 것이 신라의 천년 수도 서라벌에서 비롯되었고,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서라벌과 개성, 한성을 모두 ‘京(경)’이라고 표기한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조상들이 조선의 한성과 고려의 개성과 신라의 서라벌을 모두 ‘서울’로 불렀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헌재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도 틀린 판단을 내렸다면 역사 왜곡을 조장한 것이 되고, 모르고 내렸다면 사료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국가 대사를 농단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헌재 결정문의 오류와 논리적 비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이기 때문에 서울을 수도로 하는 것은 관습헌법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전통으로 여겨진 모든 것을 관습헌법으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예컨대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은 수천 년간 지속된 한국의 전통이다. 이것은 서울이 수도로 인식된 것보다도 훨씬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안고 있다.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도 관습헌법이라고 간주할 것인가? 또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것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우리 문화이며 전통이다. 이 역시 관습헌법이라고 간주할 것인가? 이렇게 따져보면 우리 주변은 온통 관습헌법으로 둘러싸일 것이고, 그때마다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논리비약이 빚은 관습헌법-


근본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란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행정 중심 도시를 의미한다. 때문에 국가통치 과정에서 행정적 편의와 국민의 이득을 위해 얼마든지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도 잘 증명되고 있다. 고구려가 졸본을 첫 도읍지로 삼았다가 환도성과 평양성 등으로 옮겨다녔고, 백제는 위례성에서 시작하여 한성과 웅진성, 사비성 등으로 옮겼다. 신라는 하나의 수도와 다섯 개의 소경(小京)을 뒀고, 고려도 역시 3경 제도를 썼다.


헌재의 결정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과 역사 왜곡마저 감행했으니, 마땅히 그에 대한 해명을 하고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박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