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글들을 읽어 보면서
저의 시집살이 하던이야기 해보렵니다..
저역시 시집살이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반쯤더흐른뒤
그것도 요즘말로 홧병이라는 병 하나달고 분가했습니다..
지독히도 어린나이에 멀안다고 고등학교졸업해서 삼년 정도 회사다니다 지금의실랑이랑 만낫습니다..
둘다어린탓도잇지만 소힘줄보다 더센고집으로 뭉친나..실랑역시 만만한고집..
신혼이라해봤자 달랑 6개월이였습니다..
나도 이유도 모른체..
맞다 시엄마말씀되로 너무어려서 맨날 쌈만 한다고 합치자고 당신맘대로 방빼고 막무가내 시집살이 햇습니다..
지금부터 나..시집살이하며 울었던자리 기억해볼랍니다
그땐 내나이어려서 아니 시엄마 젊으셔서 딸없는 울시엄마 나보고 엄마라고 부르라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라 불렀습니다..
물론 아버님은 친정아버지보다 날더 많이딸처럼 이뻐해주신분이라 아버지라불렀습니다..
시엄마 아둘넷둔 유세 대단하신분이였습니다..
울시엄마 지금도 여전이 아들 덕보려고 낳았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울이 큰형님..시집살이 엄청마니했다 했습니다....
딸만 넷 줄줄이낳앗다고 네번째딸 낳았을때는 또 기지배낳앗다고 집에도 안갔답니다...
그리고 형님한테 내가 모래밭에 혀박고죽어도 뉘덕안본다고 막말까지 했던 분이십니다..
그런 한성깔하시는 분하고 내 꽃다운 이십대초반부터 삽십대 후반까지시집살이한나..참으로 대단합니다..
시집살이 이전의나... 사고싶은거 안사면병나는그런성격이였습니다..갖고싶은거 수단방법안가리고 다가져야 직성풀립니다
고집..한고집했습니다..그러게 이십년넘게 길들여진나..
시엄마 그성질 다맟추고 살려니 홧병도날만하지.....
나 보따리 엄청스리쌓습니다..시집살이
넘 버거워서....
친정으로 보따리들고가면 울시엄마 어김없이 시이모들앞세워 친정와서 아들가진유세 엄청하고 울 친정부모님 딸가진죄로 그렇게 나 달래서보내고..
지금도 친정부모님들 생각하면 너무죄송합니다 죄많은딸이라 부모님가슴아프게한것들...
그렇게 얼마안있다 또보따리쌓고..
몇년그렇게살앗습니다..
울시엄마 늘 아들붙잡고하시는 레파토리하나있습니다..
뉘가 재보다 못난게머잇냐...
제가 어디가 좋으냐
엄만재 싥타 너만싥다고하면 엄마가 쫓아버린다구..
그때 실랑이 실타고만 했으면 우린 헤여졌을겁니다
실랑이 목숨걸고 절따라다녔거든요.
나..이런세월 살았습니다
그시절시엄마 늘 동네사람들 붙잡고하시는말씀중에..
발바닥에 기름나서 맨날 보따리들고 친정간다고 내흉보고다니신분입니다..
지금 생각해도눈물나는 그런일도있습니다..
어느날이던가 식구들 저녁식사시간입니다..
시엄마 생선 가시발라 접시에 차곡차곡 놓으시며 이거먹어라 하십니다..나그때 23살첫아이도 안낳았을 시절..
눈치없이 내가 가시발라놓은 생선 한조각 집었을때..
시엄마..
누가 너먹으라고 발라놓은줄아냐며..
울이아들먹으라고 해놓으거라며..뉘가왜먹냐고하셨을때..
집었던거 다시놓을수없어서 서러움에 눈물뚝뚝 흘렸던기억 지금도 뚜렸합니다
나..그날처럼 서럽게많이운적 지금 마흔 훌쩍넘은지금까지 없습니다..
세상에서 젤슬픈건 먹는음식가지고 치사하게 구는거같습니다..
그날이후 전생선 별로 좋아하지않습니다..
그날그말이 내겐너무 아픈상처가 되였었나봅니다
지금 세월이 이렇게 많이흘렀는데도 잊혀지지 않는거보면 말입니다
난 시집살이 하면서 내생활이란 없었습니다 난 어느것하나 내맘대로 할수잇는게없습니다..
물론실랑월급도 시엄마 차지입니다..
나..
봉투만 봤습니다...
그래도 얼마 탓다고 나먼저 봉투몰래보여주던실랑이나 나나 지금생각해보면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난 용돈도 없습니다..이유는 엄마가 다 사주는데 돈이왜필요하냐 이겁니다..
시엄마경제력이 아버님이여서그랬었나봅니다 처음몇년동안 우리는 얻혀사는 입장이라그랬나봅니다
그렇게 죽은듯이살며 아이들 점점 커가고 유치원엄마들 자모때 만나면 부러웠습니다..네식구만 사는 그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든 다 갈수잇고 할수잇는 그런 자유스러움이 부러웠습니다..
아침 늦게일어나도 눈치볼 시부모안계신 그엄마들이..
매일 시엄마 따뜻한 점심상 차려드려야하는나.....
눈치보여 친구도 마음놓고 만나러갈수없는나....
사고싶은것하나 맘놓고못사는나....
어쩌다 이웃아기엄마들하고 친하게 지내고싶어서 울이집놀러오라하면 그엄마들 다 실타합니다..
시엄마계셔서 부담스러운가봅니다..
그시절의나.....왜그렇게 살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는것만이 미덕이아닌거같습니다..
나..시엄마한테 잘못한거 책 잡힐짓한거 하나없는데말입니다..
죄라면..적응할수없는 시집살이 버거워서 안살려고 보따리쌓던죄밖에없는데
그렇게 참고 삭힌 세월들이 삼십대 후반에분가할수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하늘이 도우셨나봅니다..
나너무 바보같이살아서 하늘이 돌보아주신것같습니다..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먹은것이 체하였는줄알고 이병원 저병원 다녓습니다..
나중에 숨을 쉴수가 없는 날이왔습니다..
큰병원에서 온몸 구석구석 다 검사했습니다..
아무이상없답니다..
근데 난 숨을 못쉽니다 보름넘게 아무것도 못먹엇습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뿌연 연기같은것이올라오며 목을 조이는것같아 숨을 목쉽니다..
죽을것만같았습니다..
누가 그랬답니다 실랑보구 신경 정신과가서 검진받아보라고..
병명이나왔습니다..
내병명은..
홧병이랍니다..
너무 참고만살아서 그렇다합니다..내일 꼭 시엄마 모시고오라합니다..
고마우신 의사 선생님....며느리 아직나이어리고 아이들도어리니 분가시켜주라고말하시네요..
아이들 새엄마란 사람밑에 자라지않게하려면 환경을 바꾸어주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우신 의사선생님이십니다
지금도 시엄마동네가면 그병원 꼭한번 일부러라도 처다보곤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분가할수있었네요..
내생애 이런봄날은 안올줄알았는데..
그래서 시엄마보다 젊은내가먼저죽을것만같았는데..
살다보니 이런 기막히게 좋은날도왔습니다
너무좋아 어떤말로도 표현할수없습니다
울시엄마 평소 나한테 난 죽어도 너랑 살꺼라하면서....
죽을때까지 이아들하고살거라면서 ....
죽어서 귀신이되더라도 너 따라다닌다하면서....
그런대단한분이셨는데..
날 놓아주셨네요..
그냥 조용이 분가하진 안았지만..
분가하는전날까지..울시엄마 아들붙잡고 목놓아 우셨습니다...
엄마배신했다하십니다...
그날나..
마음속으로 울이 시엄마같은 시어머니 안될거라고맹세햇습니다.....
누가그러던데요...흉보면서 닮아가는거라고...
하지만나..
울시엄마같은 제2의 시엄마 안될겁니다 맹세코.....
나 울던자리 ......울이아들이 사랑하는아내에게 그런자리 안말들어줄겁니다...
어떤이유로든 분가한 지금 칠년지나가는시간.....
난 내게 이런 자유없을줄알았었는데.....
내게도 이런 우리네식구만살수있는 날들이왔네요..
지나간 일 들쳐서 머하겠습니까..
지나간시간이야 다시올수없는시간들이니 아쉬울수밖에요..
그래서난..
오늘 이시간 하루하루가 넘 소중하고 아깝습니다..
지나간 내 슬픈 이십대... 그리고삼십대 .....
이세상에서 그무엇으로도 보상받을순없지만.....
늘 신혼같은기분으로그시절 못다한많은것들
지금가족들한테 더 잘하며 사랑하며 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