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인가?"
선거법 재판에 시달리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이 1월 20일 보좌관에게 건넨 말이다. 이날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은 1심법원에서 8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김의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비록 같은 당 동료지만 비(非) 서울대 출신으로서 김의원의 의원직 유지 판결내용을 듣고 푸념한 것이다.
이날 한 일간지에는 마침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의 발언이 실렸다. 이의원은 "돈 없고 빽없는 의원들과 전대협 출신 의원들에게 형량이 가혹하게 내려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부분이 지방대 또는 서울 비명문대 출신이거나 전대협 출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복기왕-한병도-이철우-오영식-오시덕 의원 등의 예를 말한 것이다.
'금배지 저승사자' 실명 공개이 발언은 정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검찰이나 법원에서 여당이기 때문에 더 불이익을 받는다는 역차별이 공공연하게 느껴진다"는 주장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은 데 이어 또 한번의 회오리를 예고하고 있다. 여당 의원의 역차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당 의원들 사이에 학력차별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의원측은 "지금 의원이 미국을 방문 중인데 어떻게 이런 발언이 실린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면서 문제가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는 열린우리당 과반의석 붕괴의 '1등공신'으로 손모 부장판사의 실명을 거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 부장판사인 손판사는 열린우리당 의원 4명의 2심 선거법 재판을 맡았다. 이들 중 3명에게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했다. 손판사의 2심 재판에서 유일하게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의원은 이원영 의원. 하지만 그 판결마저도 뒷말을 낳았다. 이의원이 서울대 법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서울-경기지역의 선거법 관련 2심 재판은 형사10부에서 맡는다. 이미 2심 재판을 받은 의원들 외에도 열린우리당 장경수 의원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서울고법 형사10부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장의원측은 "선거법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인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언급을 꺼렸다.
한나라당에서는 해당 부장판사의 실명 거론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나라당 법사위 소속인 한 율사의원측은 "어떻게 담당부장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역-학벌을 운운할 수 있느냐"며 불쾌해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금배지 저승사자'라는 제목으로 손부장판사의 지역-대학교 이력을 공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율사출신 한 의원은 "특정 판사를 언급하면 더욱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여당이 어떻게 노골적으로 재판부의 판결을 불신한다면서 떠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다만 선거법 재판을 다루는 형사10부에 왜 하필이면 특정지역 출신의 그 부장판사가 임명됐느냐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손부장판사에게 고위층이나 여권에서 압력성 전화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지난해 김영란 대법관의 임명과정에서 사법부의 정서가 열린우리당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올해 신임 대법관 임명을 앞두고 법원 쪽에서 선거법 재판을 통해 여권에 무언의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측은 "사법부에서 부장판사 이상의 상층 인사들은 원래 보수적인 성향으로 서열파괴를 싫어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법부의 내부 사정에 밝은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고법 부장판사 사이에 여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고법의 노모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해가 가기 전에 거물 몇명을 더 집어넣어야"라는 답글을 남긴 것으로 보도돼 파문을 일으켰다. 노부장판사는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열린우리당 신계륜 의원에게 2심에서 원심대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글은 이 판결을 내린 지 며칠 후에 올려졌다.
사법부, '국보법 폐지' 못마땅노부장판사의 이력 역시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사법부에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특히 지난해 4-15총선에서 자신들보다 어리고, 학벌도 좋지 않은 의원들이 대거 의원이 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이 사법부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여권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사법부 내부의 분위기가 국보법 폐지에 대부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의원들의 주장이 못마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대협 출신 의원들이 선거법 재판에서 불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이인영 의원의 푸념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간첩 암약 발언으로 문제가 됐던 이철우 의원은 서울고법 형사10부에서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해당 판사는 역시 '오마이뉴스'에서 실명이 거론된 손모부장판사다. 이의원은 "국보법 철폐 문제와 선거법 재판이 관련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재판 진행과정에서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의원은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되면 의원직을 사퇴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이의원은 "여당 의원이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고 항의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또 "내 사건이 영원히 판례로 남아 과연 상식이 무엇인지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원의 역차별 가능성에 대해 율사 출신 의원이나 선거법 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들 당사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여권에 대한 사법부의 비우호적인 태도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율사 출신 의원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갑)측은 "선거법 재판이 진행 중이라 어떤 식의 이야기도 할 수 없다"고 말을 잘랐다. 하지만 한 의원측은 "한쪽은 정상참작이고, 한쪽은 일벌백계라고 말하고 있다"고 슬며시 앙금을 내비쳤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달아 의원직 유지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받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중형을 선고받는 데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한 의원은 1심에서 검찰이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지만 판결에서는 구형보다 형량이 늘어났다.
역차별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 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의원직을 상실할 위험에서 벗어난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선거 유세, 유인물 허위기재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말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것이 선거법 개정의 취지였는데 오히려 말은 묶고 돈은 푸는 형국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현재 선거법 위반혐의로 1-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의원은 9명. 한나라당은 이덕모- 김석준-김태환 의원이 1-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의원은 모두 47명으로 열린우리당이 29명으로 가장 많고 한나라당이 14명,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자민련, 무소속이 각각 1명씩이다. 수치만으로는 여당의 역차별이 눈에 띈다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선거법 재판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는 점도 역차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선거법 재판을 진행 중인 한 의원측은 "한나라당에서는 법률지원단을 통해 당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판-검사 출신이 많은 한나라당이 법원의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열린우리당에서는 민주화운동을 지원한 변호사 출신이 많아 재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 지도부 "각자 알아서 하라"당의 지원 문제는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됐다. 정성호 의원은 "줄곧 당 지도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사위의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변호사 출신인 천정배 전원내대표가 '재판은 훌륭한 변호사가 하는 것이지 당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천명했다"면서 "나 역시 천전원내대표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역차별'을 언급한 송영길 의원의 변호에 참여했다는 최의원은 "선거법 재판 당사자로서는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당 차원에서 역차별 의혹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철우 의원은 "당에서 법원에 압력을 넣는 것에는 반대한다"면서 "다만 최소한 공평한 잣대를 대야 한다는 입장을 당에서 밝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역차별'이 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우선적인 권리는 국민에게서 나온다"면서 "선거법 위반이 선거 결과를 뒤바꾸지 않았다면 국민들이 선택한 후보를 통해 만들어진 입법부의 구도를 사법부가 틀어버린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의원은 "사법부가 만약 정치적인 감정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역차별 언급에 대한 한나라당의 시선은 차갑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겉으로는 사법부 독립을 표방하면서도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