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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미덕


BY 사랑하나 2005-02-25









    '용서의 미덕'

    조선 전기에 황희 정승이 있었다면
    조선 후기엔 번암 채제공 선생이 있다.

    채제공 선생은 영조와 정조를 모신 명재상으로
    영조 때 문과정시를 통해 승문원에 들어간 뒤,
    각종 청요직을 두루 거치며 남인의 영수로
    노론ㆍ서인에 맞서 뜻을 굽히지 않았던 분이셨다.

    도량이 넓고
    혜안이 밝으셨던 선생은 많은 일화를 남기셨다.
    선생이 평안 감사직에 발령받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이속이 달려와 채제공 선생의 조카란 사람이
    장인어른을 모시고 함께 왔다고 고했다.

    선생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독자였기에 친척이 없을 뿐더러
    더군다나 이 먼 지방에 조카가 살 리 만무했다.
    일단 들어와 보라고 하니,
    한 청년이 떡을 잔뜩 짊어지고
    장인과 함께 사랑채로 들어왔다.
    물론 모르는 얼굴이었다.

    "당숙어른,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멀리 있어 자주 못 뵈었는데
    이렇게 저희 고장에 오셨으니
    이제부터라도 매일 문안드리겠습니다."

    선생은 낯선 청년의 말에
    당황해하면서도 웃으며

    "나도 오랜만에 조카를 만나게 되어 기쁘네.
    장가가는 것도 못보고 정말 미안하네."

    그제야 청년의 장인은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잠깐 소피를 보러 오겠다며 일어났는데.
     
    방에 단 둘이 남게 되자
    청년은 땅바닥에 넙죽 절하며 사죄를 했다.

    "실은 제 성이 채가이옵니다.
    단지 같은 채가란 이유로 장인 어른께
    한양에 계신 명재상 채제공 어른이
    제 당숙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하필 저희 고장 감사로
    오실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죽을 죄를 졌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당숙인양 연극하며

    "사돈께서 떡까지 해오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으니,
    혹 어려운 일이 있으시거든
    언제든 도움을 청하십시오."라고 말하곤 돌려보냈다.

    훗날 청년은 진심을 다해 선생을 모셨고
    친척보다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는데.
    이 얘기를 들은 왕은 채제공 선생이 교화(敎化)를
    돈독히(敦)했다고 기뻐하며 창덕궁의 돈화문을
    중건하라 명했다고 전해진다.
     
    -사랑하며   살아요-












    
    

        걸린 사람만 억울한 것
         
        한 남자가 100㎞로 차를 몰다가
        교통경찰에게 과속으로 걸렸다.



        그 신사는 자기보다
        더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다른 차들을 보고
        자기만 적발된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몹시 못마땅한 눈으로 경찰관에게 대들었다.
        "아니, 다른 차들도 다 규정속도 80km를
        초과해서 달렸는데 왜 나만 잡는거요?"

        그러자 경찰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아저씨, 낚시 해봤어요?"
         
        "낚시요? 물론이죠."
         
        그러자 태연한 얼굴로 경찰관이 말했다.



        "그럼 댁은 낚시터에 있는 물고기를 몽땅 잡으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