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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해서 일제시대는 70년동안 지속되었다.


BY 낙장불입 2005-03-01

1.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제가 대학교 1학년때의 일입니다. 그 때가 대략 1985년 5월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약간의 경사(傾斜)가 있는 학교 진입로를 걸어 오르다가 우연히 바닥을 보니,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는 라커(래커;lacquer)로 쓴 글씨가  있었습니다.

지난 12년간 반공 교육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던 저에게는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빨갱이 소굴(그 때 어른들께서는 대학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에 들어왔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전두환 각하께서 무슨 잘못을 그리도 많이 하셨길래 저 난리들인가? 그리고 '살인마'라니... 광주에서 무장공비와 고정간첩들 몇 명 죽인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쏘공도 읽어 보았고, 전태일의 슬픈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저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는 그 구호가 이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2. 전두환은 처음부터 살인마였는가?

그러나 제가 더욱 분노했던 것은 언론계와 교육계와 사회의 유력자들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서, 그러한 진실을 새까맣게 위장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고정간첩", 또는 "무장공비"라는 말로 매도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은 철저하게 감추어 졌고, 어린이로부터 어른들까지 감쪽같이 속고 있었던 것이지요.

국민들 수준을 얼마나 X같이 알았으면 그러한 짓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서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라는 말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제 주변 어른들께서는 제가 전두환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저더러 "빨갱이 물이 단단히 들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졸지에 저는 "빨갱이" 신세가 되어 버렸던 것이지요.

세월이 흘러서 5공비리와 광주 청문회가 열렸고, 삼청교육대와 광주 학살의 진실이 밝혀지고, 노태우와 전두환의 수천억 비자금이 드러나자, 비로소 이 땅의 어르신들도 전두환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전두환은 처음부터 살인마라고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과 광주의 진실은 세월이 밝혀 준 것입니다. 아니, 수 없이 고문 당하고, 매 맞고, 투옥되고, 간첩으로 몰려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름 없는 민주투사들의 피값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3. 삼일절 아침을 맞이하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전두환은 악당이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신 빈 자리를 훌륭하게 대신하여, 나라를 구하신 "구국의 영웅"이었다고 생각들을 했었지요.

또한 "나랏님"이신 전두환 각하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역적질"이라고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처음부터 전두환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시더군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처음부터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나랏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이죠.
지금도 "일본이 철도도 놓아 주었고, 조선을 개화시켜 주었고,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초석을 쌓아 주었다"가고 찌질거리는 서울대 이모 교수 같은 덜 떨어진 인간도 있는데, 1900년대 초반 일제 강점기때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삼일절」을 생각해 봅니다.

삼일절은 잠자던 우리 민족의 영혼을 깨운 날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을 수탈하던 원수이며,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민족 구성원 전체가 "자각"하게 된 그 날이 바로 삼일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일절이 중요한 것이며, 「삼일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누가 우리 나라 최고의 국경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신다면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삼일절"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광복절」도 의미가 있는 날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광복절은 미국의 승전 기념일이자 일본의 패전 기념일의 의미가 더 큽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들이 땅을 쳤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

우리의 용맹스런 독립군들은 8월 15일 이후에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출격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고, 만약 8월 15일 천황의 항복이 조금 늦어졌다면 우리 나라는 "승전국"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다면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과 분단의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엄밀하게 말하자면, 일제시대는 70년 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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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중앙일보. 199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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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삼일절」의 의미가 어떻고, 「삼일정신」이 어떻고 삼일절마다 연설을 해 대던 박정희가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하고서 폼을 잡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왜색 문화 추방」을 외쳐대며 수 많은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박정희가 엔카를 잘 부르는 가수를 이른 바 「대연회」에 초빙하여 "음악감상"을 즐겼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요?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하더라도 우리들의 교복은 "일본식"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쓰이던 각종 구령들과 학교 체제도 일본식이었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전통도 일본식이었습니다.

지난 번 읽은 "다강(多强)체제 하에서의 빈번한 칼부림에 지긋지긋해 하던 섬나라 일본 민중들이 선호하게 된 일강(一强)체제" 하에서의 「상명하복」과 "기합과 구타를 동원한 통제"  말입니다.

그러한 일본식 방법이 우리나라 사회 어느 곳에서나 용인되었던 것입니다. 군대와 학교는 물론, 동네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와 사찰에서도 말이지요.

이러한 일본식 문화는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했던 이승만 정권과 그 자신이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70여년을 징그럽게도 유지해 왔던 것이고, 「타도 일본」을 외치며 「쪽바리」라는 비아냥으로 일본 자체를 혐오하던 우리 민중들도 정작 일본의 문화적인 힘과 소니를 앞세운 기술력과 경제력 앞에서 주눅 들기 십상이었으며, 일종의 「경외심」마저 들었던 사람까지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5. 먼 훗날에

먼 훗날에(혹은 가까운 장래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후손들은 "친일파가 대통령 노릇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 하게 될 것이며, "그 후로도 오랜동안 박정희는 존경하는 인물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어쨌든 역사는 살아서 꿈틀거리니까요.

어쩌면 그 때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민중들이 처음부터 박정희를 친일파요, 남로당 빨갱이 출신이요,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요, 냉혈한(冷血漢)이요, 독재자였다고 판단했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삼일절 경축사가 나오고 있네요. 박통 진리교 신도들이여, 최소한 노대통령은 삼일절 경축 식장에서 연설하던 몸으로 청와대에 가서 일본군 장교복장을 하고 만족스럽게 도취해 있지는 않을테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발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삽시다.

최근 우리 민족은 지난 날의 아픈 역사들을 "한류"로 승화하여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이미 아시아 각국에는 그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화「태극기 휘날리며」가  전쟁을 미화한「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내용 면에서 더 좋다는 평론이 미국 본토의 평론가들에게서 나오고 있으며, 영화 「실미도」는 군부독재시절의 아픈 추억을 「예술」로 승화시킨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육계, 문화계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관료주의의 폐해는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지만, 정치개혁과 과거사 청산에 힘입어서 10년 내에 모두 정리가 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기미년 3월 1일 정오 류관순 열사와 민중들의 힘있는 함성을 오늘 목 놓아 불러 봅니다.

" 대한 독립 만세 !! "